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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판관判官

나무 동자 - 12. 농을 풀다(解笼)

 
그래, 이것은 션챠오의 농이구나.
스는 생각했다.
 
샤챠오가 이 집이 익숙하며 어렸을 때 살았던 것과 비슷하다고 했던 이유가 있었다. 또 샤챠오가 이곳에서 발생한 일들이 어렸을 때 꿈에서 보았던 것 같다고 생각했을 만했다.
 
이 노인이 션챠오였고, 그는 줄곧 알아보지 못했다.
 
어쩌면 그에게 이목구비가 없으며 윤곽이 모호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그의 기억 속의 션챠오가 여러 해 전에 멈춰 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는 션챠오가 늙은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렇게 다리를 끌고 허약한 목소리의 노인을 당시의 과피모를 쓴 수려한 소년과 연관 지을 수 없었다.
 
옷장 속에서 문득 움직임이 들렸다스는 정신을 차리고 안에서 들려오는 낮은 부름 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는데, 누군가를 놀라게 할까봐 겁내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다음 순간, 장 문이 누군가에게 밀려 열렸고 그 폭신한 인형은 이미 한 쪽에 쓰러져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를 대신하여 어느 마르고 작은 남학생이 서 있었다—— 그것은 샤챠오 자신이었다.
 
그의 몸은 비어 있어 방 안의 오래된 전등에 창백하게 비춰져 마치 고요한 시간 속의 윤곽 같았다. 그는 망연하게 노인의 뒤에 서서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싶었지만 차마 손을 대지 못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예요?" 그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침대 가에 앉은 노인의 동작이 멈추었고, 천을 쥔 손가락이 천천히 쥐어졌다.
 
그 순간, 농 안의 시간은 얼어붙은 듯했다. 아무도 그가 이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농주처럼 갑자기 놀라 깨어나 날뛰기 시작할 수도 있었다.
 
"할아버지, 저 샤챠오예요." 남학생은 마침내 노인의 어깨를 두드리고 가볍게 흔들었다.
 
십 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그는 어렸을 때의 일들을 잊었고, 어렸을 때는 아무리 해도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배웠다.
그는 응석을 부릴 때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할 줄도 배웠다.
 
그는 노인의 어깨의 천을 쥐고 코 끝이 붉어졌다. 그는 노인을 흔들며 잠긴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했다. "할아버지, 저 샤챠오에요. 저를 보세요."
 
노인의 윤곽이 갑자기 떨려 물방울이 호수에 떨어진 것 같았다. 뒤이어 가느다란 검은색의 연기가 그의 몸에서 피어 올랐다.  
이것은…… 농주가 깬 것이다.
 
거의 모든 농주는 깨어나는 순간 공격성을 지닌다. 그의 이번 생의 모든 숨겨두었던 원한과 질투, 모든 안타까움과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전부 그 순간 터져나오는 것으로, 발산이자 해탈이기도 했다.
그리고 농을 푸는 사람은, 반드시 그들을 도와 모든 것을 받아내고 그가 사라지는 것을 도와야 했다.
  
검은 기운이 나타나는 순간스는 이미 거울에서 몸을 빼내었다.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은 아직 거울 속의 흰 안개를 지닌 채 노인에게로 곧장 향했다.
 
심장과 눈은 영상의 기관이니 그가 그저 그것들에 닿기만 하면 모든 것을 이어 받을 수 있고, 이 농은 완전히 와해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에 멈추었다. 
  
그는 노인의 영상을 쥐는 순간 문득 손을 거두고  옷깃을 가다듬고 몸을 세웠다.
샤챠오는 코맹맹이 소리를 하고 애원했다. "할아버지, 고개 좀 돌려보세요, 저 좀 보세요."
 
사방으로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는 가볍고 부드러워지기 시작하여 희미하고 조용히 허공에 떠 있었다. 노인은 수건을 내려놓고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마침내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마침내 이목구비와 모습이 드러났다. 노쇠하고 온화하며, 눈꼬리와 입매에는 모두 깊은 주름이 있었는데 자주 웃는 사람에게 생길 법한 것이었다
분명 션챠오였다. 
 
"할아버지……." 샤챠오는 붉어진 눈을 하고 션챠오의 어깨를 붙잡았다.
"샤오챠오小樵." 션챠오는 작게 그를 부르고, 나지막하게 웃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허약하고 노쇠했다. "내 전 사람도 나를 샤오챠오小桥라고 불렀단다."
 
"봐라, 나하고 너는 인연이 있지."
 
샤챠오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필사적으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는 겁이 날 때는 늘 과장되게 소리를 쳤고, 말은 운다고 했지만 사실 눈물이 많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눈물을 뚝뚝 끊임 없이 떨어트리고 있을 때는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션챠오는 그저 그를 바라보곤 샤챠오의 손을 두드렸다. 
 
농 안의 풍경은 빠르게 변하여, 90년 대의 낮은 옷장과 판 유리, 책장과 침대는 옅어지고 방 안의 향 재 냄새가 흐릿해졌다.
 
마치 지루하지 않은 꿈이 끝에 다달아 전부 흩어지며 그들만이 자욱한 안개 속에 서있는 것 같았다.
 
션챠오는 스를 보고 쓰게 웃으며 불렀다. " ."
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고, 어떻게 답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가 말했다. "이게 네 농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저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션챠오가 말했다. "저는 제가 깨끗하게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시선을 떨어트리자 눈꺼풀의 주름이 드리워지며 노쇠한 눈을 무겁게 내리 눌렀다.
다시 한참이 지나고, 그는 그제서야 웃으며 말했다. "진정으로 연연하지 않고 거리끼는 것이 없기는 정말 어렵군요, 그래도 아쉽고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뭘 내려놓지 못해?" 스가 물었다.
 
션챠오는 샤챠오의 숙인 고개를 보고 말했다. "늘 생각했었거든요, 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해야 할지 아닐지. 이전에는 속이자고 생각했어요, 평생을 속여서 평범한 사람으로 생로병사를 겪게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후에는 또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요. 만약 제가 그에게 알려주지 않고 제가 없어졌을 때 그가 어쩌다 알게 되면, 그러면 어떡해야 합니까? 그렇게 고민하고 반복하며 그 오랜 시간을 생각했지만 통쾌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어요."
 
"제 탓입니다." 션챠오가 말했다. "제가 그에게 가르쳐준 것이 너무 적어서, 이 아이는 겁이 나면 우는 것만 배우고 어리숙하지요. 다른 감정은 모르니, 요령이 통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말을 듣자 스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가 션 가에 들어서고부터 션챠오가 이미 떠난 것을 알고도 시종 샤챠오가 슬픔으로 우는 것을 보지 못했고, 샤챠오가 슬퍼한다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농담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으며 방을 임대하기도 하여 마치 생사를 알지 못하고 이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 바로 이 순간까지는…….
 
그는 샤챠오의 붉어진 눈을 보고 션챠오에게 말했다. "지금은 알 거야."
 
살아서는 가르치지 못했던 것을 이런 식으로 가르치다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션챠오는 오랫동안 생각했으나, 그저 마음만 아플 뿐이었다.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욕심이 있지요." 그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이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내려놓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요."
스는 인내심 있는 청자처럼 물었다. "또 뭐가 있어?"
 
"이전에는 이 아이가 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많이 클 필요도 없고, 성년이 되는 18살이면 된다고요. 하지만 정말 18살이 되자 또 몇 년 더 보고 싶어졌어요, 그가 더 성숙해지고 더 대단해져셔, 누군가를 돌보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고, 가정을 이루기를요."
 
"…… 이 몇 년 간 너무 많이 변해서 90년 대와는 차이가 크지요 형이 오시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적응할지 알 수 없었고요. 번거로운 일에 마주할 수도 있고, 잘 지내시지 못하실까 싶기도 했지요."
  
"그리고 샤오챠오의 이 성격도 걱정이었죠 형이 좋아하실지도요. 만약 다툼이라도 생기면 아무도 와서 조정해주지 못할 텐데." 션챠오는 말할 때 여전히 자애롭고 온화한 모습이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니, 저는 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형은 화가 나면 입을 다물고 샤오챠오는 바보 같아서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으니 나중에 속이 상하면 안 좋잖아요."
 
그는 말하면서 또 웃기 시작했다. 마치 그 아쉽고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 괴롭지는 않은 것 같았다.
 
"……." 션챠오가 말했다. "이십 여 년을 보지 못했는데  형과 차를 한 잔 할 시간도 없군요. 저번에 떠날 때 말했었는데."
훗날에 기회가 없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샤챠오와 스를 자세히 살폈다. 마치 느리게 그들의 모습을 기억하려는 것 같았다. 그 후 그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됐습니다."
결국 말하자면 다 소소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 생에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보내 준 이들도 많았다. 장수하여 모든 일이 원만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스에게 말했다. "오늘을 버틸 수는 있겠지만 내일은 아니겠지요. 결국 형께서 절 보내주셔야겠습니다."
  
"마시지 못한 차는…… 다음에 인연이 닿으면 마시지요." 션챠오가 말했다.
스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는 손을 뻗었고, 손가락이 노인의 이마에 닿았다.
그 순간 피어올랐던 모든 검은 연기가 갑자기 순환하기 시작했다. 분명 형태와 모습이 없는데 가장자리가 샤챠오의 손등을 스칠 때 가느다란 상처를 남겨 신경을 따라 심장으로 아픔이 전해졌다.
 
이런 것들이 션챠오의 몸에서 뽑혀 나와 스 쪽으로 모여 들었고 촘촘하게 그의 주변을 감쌌다.
스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손가락은 여전히 션챠오에 닿은 채 무겁게 눈을 감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불어와 거의 서 있지 못할 정도로 흔들렸다.
그 연기는 광풍에 부딪힌 후 마침내 고요해지더니 천천히 옅어졌다.
 
스의 이마 앞의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려 가라 앉았고, 그의 혈색 없는 피부가 돋보여 이전보다 더욱 창백했다.
 
샤챠오의 통곡은 여전히 소리가 없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션챠오의 손을 쥐었는데, 손바닥이 점차 허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은 연기가 완전히 흩어졌을 때 그가 붙잡고 있던 사람은 농과 함께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사라지기 직전, 그는 션챠오가 마지막으로 따스하게 덧붙이는 것을 들었다. "날이 추우면 옷을 두껍게 입고, 덥다고 얼음을 많이 먹지 마. 잘 지내야 해, ."
 
농이 사라진 후 현실의 광경이 드러났다.
그들은 여전히 대형 버스에 앉아 있었고 등 뒤의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모든 것이 이전과 같았다.
 
션챠오가 묻힐 곳은 뒤로는 산을 접하고 앞으로는 물이 있는 곳으로 아래쪽에는 많은 꽃나무와 밭이 있었다.
샤챠오는 유골함을 묘 안에 두고 친구와 이웃들은 풍습에 따라 대추와 약과를 넣었다.
 
상복과 두건을 태우고 석판이 눌렸고, 이번은 끝에 다다른 셈이었다.
 
산을 내려갈 때 샤챠오의 목에서는 끝내 오열이 터졌고, 마침내 잠기고 작은 울음 소리가 먼지 쌓인 지 오래 된 녹슨 캔처럼 벌어진 약간의 틈 사이로 나왔다. 그는 걷고 서다를 반복했고, 만약 누군가 밀어준 것이 아니라면 영원히 산을 내려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가 발을 떼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려 할 때, 뒤에서 따르던 스가 문득 손을 들어 그의 뒤통수를 두드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보지 마."
돌아보지 마.
그가 깨끗하게 와서 깨끗하게 떠나게 해.
 
산기슭의 꽃나무가 어떤 것인지 바람이 불자 온 땅으로 떨어졌다.   
스는 날리는 꽃잎에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 문득 이 장면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았다. 마르고 얇은 손바닥은 따스한 촉감을 지녔고, 가볍게 그의 뒤통수를 두드리며 그를 앞으로 한 걸음 밀곤 달래듯 말했다. : 돌아보지 마라.
 
그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시에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느즈막하게 좁고 긴 길 위에서 손을 뻗어 떨어지는 꽃 한 송이를 받았다.
 
 
 
 
 
 
 
할아버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