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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미언靡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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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 쓰레기는 죽어 마땅하다 모추안이 내게 가져다 준 것은 일상복이었는데 향기로운 나무 냄새가 났다. 막 녹나무 상자에서 꺼낸 것 같았다.그의 키가 나보다 큰 탓에 바지 길이가 길어 끝을 조금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스웨터도 마찬가지로 무척 넉넉하여 넥라인이 조금 넓었으나 다행히도 겉에 외투를 걸쳐 가릴 수 있었다.옷 말고도 그는 수건 한 장과 양말 한 켤레를 가져다 주었는데 이 두 가지 물건은 포장조차도 뜯지 않은 새 것이었다.속옷 말고 그가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주었으니, 실로 꼼꼼하다고 할 수 있었다.옷을 갈아입고 난 더러운 옷을 자루에 담은 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욕실을 나섰다. 빈가가 매일 먹는 것은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준비하는 잿밥이었다. 리양이 돌아오니 1인분이 더 추가되는데 네 명이 먹기에 반찬은 충분..
제10장 - 신의 깃털 부두는 작아서 조금 연식이 된 나무 배 한 척만 정박해 있었다. 사람들은 배를 둘러싸고 무엇을 상의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모추안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마침 나를 보았고, 멈칫한 뒤 빠른 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여기서 뭐하는 거야?" 그는 눈썹을 찌푸렸고 어조에서는 나의 출현을 배척하는 것 같은 짜증이 드러났다."그냥 돌아다니는 거야." 나는 그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그는 바로 나를 가로막더니 간단명료하게 세 자를 뱉어냈다. "돌아가."나는 화가 나서 웃음이 다 나왔다. "너 사람하고 개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 나는 사람이지 네 개가 아니야. 네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시선은 공중에서 교차하고 마치 부딪치는 격렬한 불꽃이 보일 것 같았다. 이 일촉즉발의 순간에 누군가 내 이..
제9장 - 이곳은 네 향락장이 아니야 동풍절의 열기는 저녁까지 이어졌다.보통 태양이 떨어지는 여덟 시 무렵이면 펑거는 진작 만물이 고요해지며 길가에는 행인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마을에서 가장 큰 광장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서로 잔을 채웠다.나지막한 탁자가 모닥불을 둘러싸는 형태로 배열되어 있는데 탁자에는 몸을 덥힐 술 말고도 건과일과 해바라기씨가 있었다. 층록인들은 탁자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 사람은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실 사람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이 잔은 바이인을 위해 짠을 하자, 오늘 우리 하인들의 면을 제대로 세워줬으니까!" 옌추원은 말하고 궈주와 함께 술잔을 들고 내게 권했다.나는 한 손으로 품 속의 개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는 급히 탁자의 잔을 찾았다."별 말을 다, 별 것도 아닌데." 가볍게..
제8장 - 마음이 고요하면 손이 안정된다 뒤에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던 탓에 나는 오래 머물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입구와 출구는 두 곳으로 서로 달랐는데 앞쪽에 큰 입구가 있고 뒤쪽으로 작은 출구가 있었다. 문 밖으로 나가면 긴 오솔길이 구불구불 산 아래로 이어졌다.큰 나뭇가지가 머리 위를 가리고 겨울 아침의 차가운 안개는 가지 사이에 영롱한 얼음과 서리가 되어 태양빛에 비추어지면 산길에 빛이 흘렀다.죽을 먹으며 나는 천천히 산 아래로 내려갔다. 일정한 거리마다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큰 자루가 있었다. 아주 세심하게 준비되어 있다고 할 수 있었다.충분히 배불리 먹고 마시자 나는 휴대폰을 꺼내어 옌추원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었다.옌추원은 일찍 궈주와 함께 산을 내려갔고 지금은 마을 서쪽의 공터에서 양궁 경기를 구경하고 있었다."……내..
제7장 - 여기서 음식 먹지 마 "이것들을 다 바꾸려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대충 계산했다. 정원에는 적어도 이십 여 개의 화분이 쌓여있었다."나 혼자서는 이 많은 걸 다 바꿀 수 없으니 오늘 일단 절반을 끝내고 나머지는 내일 다시 해야지." 언관의 복장은 보기는 좋지만 일을 하기는 불편했다. 모추안은 말하며 플라스틱 화분을 한쪽에 두고 익숙하게 옷을 벗어 양쪽 팔을 허리춤에 묶고 안쪽의 좁은 소매의 흰 옷을 드러내었다.그는 타고나길 옷 맵시가 좋아 어깨가 넓어서 이렇게 묶으면 허리는 좁고 다리는 길어 보여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보다 몸이 좋았다."그러면…… 내가 도와줄까?" 나는 코를 만지작거리며 나서서 일을 맡았다.모추안의 동작이 멈추더니 그는 바닥을 바라보며 조금 망설였다. "그러면 좀 미안한데."나는 이미 외투를 벗기 시작..
제6장 - 내가 경박한지 그가 어떻게 알아? 만약 내가 경박하다면 이 세상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없을 것이다.내가 몸을 돌려 모추안에게 따지려 들 때, 문 밖에서 갑자기 상심에 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까무잡잡한 피부의 노부인이 젊은 남녀 한 쌍에게 부축을 받으며 허약하게 안으로 들어왔다.모추안은 바로 일어나 탁자를 돌아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빈가! 빈가!!" 그 노부인의 걸음은 원래도 힘이 없었는데 모추안을 보자 어디에서 그런 기운이 난 것인지 양쪽의 부축에서 벗어나 비틀거리며 그의 옷자락을 쥐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노부인은 센 억양으로 자신이 이 고비를 넘기기 힘드니 죽기 전에 산군에게 그녀를 대신하여 집을 떠난 딸을 찾아달라고 말했다."천천히 말하세요." 모추안은 그녀의 팔을 부축하여 그녀를 천천히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
제5장 - 아무도 어울리지 않아 개똥을 처리한 뒤 비누로 앞뒤와 손톱 틈까지도 닦아내어 손이 쪼글쪼글해지고 손바닥의 작고 가는 상처까지 창백해지고 나서야 나는 손을 털고 앞마당으로 되돌아왔다.이전은 대전의 기둥에 잘 묶여 있었고 모추안과 깨진 화분은 이미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물건을 망가뜨리고 그냥 갈 수는 없는 노릇인데…….나는 잠시 망설이다 발을 옮겨 대전으로 들어갔다.흰 옷을 입은 신자는 신상 옆 낮은 탁자에 앉아 있었고 책상에는 저번처럼 필묵과 종이, 벼루가 놓여 있었다."그 화분 얼마야? 내가 배상할게."모추안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필요 없어. 얼마 되지도 않아."대전은 비교적 어두워서 낮이라도 불을 켜야 했다. 하지만 너무 현대화된 것으로 신전의 신성함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인지 불빛이 있어도 촛불과 같은 오렌지 빛..
제4장 - 우리 모두 교양있게 개를 기르자 "얼른 일어나, 바이인! 해가 중천에 떴어!"나는 어렵사리 꿈에서 깨었고 눈에 들어온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연구원의 커튼은 얇은 홑겹이어서 차광이 좋지 못해 햇볕이 스며 눈을 자극해 아팠다."벌써 아홉 시인데 언제까지 자려고? 너 먹으라고 둔 아침밥도 차가워졌겠다!" 방 밖의 옌추원은 계속 소리치고 있어 한여름의 매미 울음소리보다 더 시끄러웠다.나는 얼굴을 비비고 잠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일어난다, 일어나. 부르지 마!" 이를 닦고 세수한 뒤 아침을 먹자 옌추원은 이전을 데리고 같이 마을을 돌아다닐 것인지 물어봤다.어제 늦게 도착하고 사슴왕묘에서 돌아온 뒤 저녁을 먹어 다른 곳은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기왕 왔으니 연구원의 작은 방 안에 박혀서 돌아다니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라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