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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미언靡言

제9장 - 이곳은 네 향락장이 아니야

 

동풍절의 열기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보통 태양이 떨어지는 여덟 시 무렵이면 펑거는 진작 만물이 고요해지며 길가에는 행인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마을에서 가장 큰 광장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서로 잔을 채웠다.

나지막한 탁자가 모닥불을 둘러싸는 형태로 배열되어 있는데 탁자에는 몸을 덥힐 술 말고도 건과일과 해바라기씨가 있었다. 층록인들은 탁자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 사람은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실 사람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잔은 바이인을 위해 짠을 하자, 오늘 우리 하인들의 면을 제대로 세워줬으니까!" 옌추원은 말하고 궈주와 함께 술잔을 들고 내게 권했다.

나는 한 손으로 품 속의 개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는 급히 탁자의 잔을 찾았다.

"별 말을 다, 별 것도 아닌데." 가볍게 술을 머금었고 내 시선은 저도 모르게 가장 윗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로 향했다.

모추안은 고개를 기울이고 옆에 있던 니에펑과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때때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그의 앉은 자세는 여전히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언관의 위용을 유지한 채 등허리를 곧게 펴고 있었다.

어쩌면 내 눈빛을 느낀 것인지, 그는 말을 하며 정확히 내 쪽을 바라봐왔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멀리 모닥불을 사이에 둔 채 입술을 끌어올리고 그를 향해 손 안의 잔을 들어보였다.

이전에 수없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는 무시를 선택하여 그대로 시선을 돌려 나를 전혀 보지 못한 척을 했다.

나는 진작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 그가 정말로 내가 생각했던 대로 움직였을 때 결코 화가 나지 않고 되려 우스웠다.

"맞다, '라젤로'가 무슨 뜻이야?" 나는 그릇을 탁자에 내려놓고 이곳에 있는 두 민속학 전문가에게 물었다.

옌추원은 어리둥절했다. "라젤로? 너 아침에 신전에 갔어? 이 세 글자는 일종의 축복이야. 말 그대로의 뜻은 '신이 승리하리라'라는 뜻이고."

"응, 갔어. 왜 모…… 빈가가 축복할 때 이 말을 하는 건데?" 나는 계속 물었다.

"그건 현지의 산신 문화와 관계가 있어요." 궈주는 땅콩을 까며 말했다. "층록 사람들은 창란설산이 산신의 영지이고 자신들은 산신의 백성이라고 생각해요. 착암숭이 평화롭게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산신이 귀신을 몰아내고 재앙과의 관계를 끊어냈기 때문이라는 거죠. '라젤로'는 기쁜 소식인 동시에 신에 대한 찬양인 거예요."

신에 대한 찬양이라, 내가 추측한 것과 비슷한 뜻이다.

모를 때는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오히려 별 느낌이 없었다.

"측백나무는 층록인에게 있어 가장 청결한 나무야. 측백나무를 담근 물이 당연히 제일 깨끗한 물인 거지." 옌추원은 말하며 자신의 오른손을 뻗어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펼쳤다. "두 손가락으로 정수를 찍어 이마에 대고 엄지로 미간 위쪽을 스치며 동시에 '라젤로'라고 하는 거야. 이게 바로 동풍절에 빈가가 축복을 내리는 의식이지."

"재밌……." 나는 말을 멈췄다. 잠깐, 이거 내가 경험한 축복하고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아침에는 먹는 걸 받느라 바빴고 모추안이 어떻게 앞쪽에 있던 사람을 축복했는지 주의 깊게 보지 않아 다들 그런 것인 줄 알았다. 지금 보니 모추안 이 녀석은 나만 특별하게 했던 것 같았다.

뭐하는 거야? 내가 신에게 불경하다고 벌하는 거야?

"얘기하고 있어, 나 한 대 피우고 올게." 나는 품 속의 이전을 궈주에게 넘겨주었는데, 막 일어나자마자 등 뒤에서 묵직한 몸이 달려들었다.

"형제, 너 진짜 대단하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상대가 어깨에 걸친 손을 피했다.

다가온 사람은 머리가 길고 이십 대 초반으로 이목구비가 단정했다. 나는 상대가 나와 양궁 경기에 참가한 동료인 것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내 이름은 쿤홍투야. 이름이 뭐야?" 그는 날 향해 손을 내밀었지만 악수가 아니라 하이파이브를 하려는 것 같았다.

이런 길거리 인사법은 나도 몇 년간 보지 못했다.

"바이인." 하지만 결국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손을 맞잡자 쿤홍투는 선량하게 기대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 웃었다. "이번에는 고마웠어. 같이 술 마실래?"

"그래."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아쿤, 내가 온지 벌써 몇 년인데 어째 넌 나한테 술 한 번 대접한 적이 없어?" 궈주는 두 손을 따뜻한 개의 배 밑에 깔고 웃는 얼굴로 쿤홍투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어떻게 여자한테 아무렇게나 술을 살 수 있어?" 쿤훙투는 옌추원 일행과 잘 아는 듯 말하며 아예 자리에 앉아버렸다.

 

나는 상대적으로 빈 구석을 찾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차가운 공기가 매운 담배 연기와 함께 폐부로 밀려들었다. 등 뒤에는 소란스러운 노랫소리가, 앞쪽으로는 어둡고 적막한 오래된 마을이 있었다. 거대한 분리감은 순간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어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담배를 쥔 손이 무의식중에 입술에 닿았고 머릿속에는 곧장 낮에 모추안에게 축복을 받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차가운 손끝이 입술을 눌렀고, 조금만 더 있었다면 안까지 들어갔을 것이다…….

호흡이 단박에 흐트러졌다. 나는 연기에 사레가 들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기침을 했다.

쿤훙투가 찾아왔을 때 나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바이인…… 괜찮아?" 그는 내 팔을 잡고 나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나는 손을 흔들고 힘을 빌려 일어났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눈가가 축축했다.

"아니야, 그냥 사레가 들려서." 나는 얼굴을 닦았다.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제야 그는 왜 나를 찾아온 것인지 떠올린 듯 나를 끌고 광장으로 갔다. "빈가가 우리에게 상을 주려고 해. 너 데리고 같이 상 받으러 가려고 했지, 빨리. 곧 우리 차례야!"

나는 얼떨결에 그에게 끌려 모닥불 곁으로 갔고 멈추었을 때는 제대로 서지 못해 균형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다행히도 그가 곁에서 제때 나를 붙잡아 여러 사람 앞에서 추태를 부리지 않을 수 있었다.

"천천히 가, 빈가가 날아간대?" 나는 우뚝 서서 웃는 듯 아닌 듯 불평했다.

쿤홍투는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빈가가 우리를 기다리게 해선 안 되지."

관료주의 같으니. 나는 마음 속으로 냉소했다.

양궁 외에도 오후에는 경마와 씨름 같은 경기가 있었는데 일등을 한 팀은 빈가에게 직접 상을 받을 수 있다. 나와 쿤홍투는 끝에 섰고 앞쪽에는 아직 십여 명이 있었다.

"형님, 옌 선생님이 형님이 보석 디자이너라던데." 나와 쿤홍투는 둘 다 내향적인 사람은 아니어서 말 몇 마디를 나눈 뒤 친해져서 형동생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내 목에 있는 이 밀랍이 얼마짜리일 것 같아?"

밀랍과 호박은 사실 같은 물건이다. 말하자면 둘 다 수지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한동안 이 물건의 가치가 치솟았고 시장에서 품질이 들쭉날쭉하여 좋은 것은 적어도 진짜 수지화석이고 나쁜 놈들은 인공 수지를 진품인 양 팔았다. 보통 사람들은 감별할 수가 없다.

나는 보석 디자이너지 보석 감정사도 아닌데 이 밀랍이 어떤 물건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모두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하는 법이다.

나는 그의 가슴의 조약돌 모양의 황갈색 밀랍을 쥐고 자세히 살피고 말했다. "이거는 좋은 물건이네, 가격은 금전으로 평가할 수가 없겠어."

이 말은 그야말로 그의 마음에 쏙 들어서, 그는 감격하여 내 손을 쥐었다. 심지어 "형님"소리도 없었다. "형, 역시 도시 사람들이 보는 눈이 있다니까, 난 이게 값이 나갈 줄 알았어!"

줄이 앞으로 몇 걸음 이동했다. 나는 그의 가슴을 두드리고 딱 맞는 조언을 했다. "팔지 마. 후대에 물려줘. 가보처럼 물려주라고." 백팔십 년을 물려주면 오래 된 밀랍이 된다.

그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고 얼굴에는 흥분인지 아니면 모닥불에 익었는지 붉은 노을 두 덩이가 떠올랐다.

말을 하고 있으니 곧 양궁 팀이 상을 받을 때가 되었다. 메달은 평범한 금은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조각 메달로 보리색의 염주로 꿰어 있어 현지의 특색이 있었다.

선수들이 메달을 받을 때마다 모추안은 상냥하게 "잘했습니다, 산군이 자랑스러워 하십니다." 같은 말을 했다.

"저건 신전의 측백나무의 씨로 만든 염주야, 지니고 있으면 재해를 없애고 액운을 해소할 수 있어. 형, 저것도 가보가 될 수 있어." 쿤홍투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진심으로 그를 놀렸다. "못 전해줘, 나 묶었거든."

쿤홍투는 멍한 표정을 하더니 입을 열어 무언가 물어보려 했으나, 벌써 그가 상을 받을 때였다.

그는 얼른 고개를 돌려 몇 걸음 나아가더니 양 손을 심장 쪽에 교차하고 공손하게 모추안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빈가." 그는 층록어로 말했다.

모추안은 그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습니다."

쿤홍투는 170대 초반으로 키가 작아 모추안을 볼 때는 살짝 고개를 들어야 했다.

"저는 영원히 빈가와 산군의 추종자입니다." 그의 어조는 확고하고 힘이 있어 천편일률적인 말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바람 같았다.

쿤홍투는 상을 받고 즐겁게 떠났고 나는 뒤이어 모추안의 앞에 섰다.

불빛이 비추자 평소 얼음 조각을 깎아놓은 것 같던 사람의 얼굴에도 따뜻한 빛이 물들었다. 니에펑의 손에서 마지막 메달을 받은 모추안은 묵묵히 내게 걸어주었고 코끝이 박달나무 향으로 가득했다.

"고맙……."

"여긴 네 향락장이 아니야, 바이인."

내가 막 감사의 말을 하려던 찰나 모추안은 몸을 숙여 내 귓가에 다가와 선명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우리 둘만이 들을 수 있는 말을 했다.

나는 제자리에 얼어붙었고 다만 한 순간에 그의 말 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 망할 동성애자야, 이 정토를 더럽히지 마라. 고 말하고 있었다.

가슴이 심하게 기복했다. 들이마시는 것은 싸늘하게 차가운 바람이었고 뱉어내는 것은 타는 듯 뜨거운 분노였다.

모추안은 두 손을 모으고 내 앞에서 물러났다. 하는 말이 거침이 없는 만큼 태도는 담담하기 그지 없었다.

흔들리는 불꽃이 그의 얼굴과 몸에 애매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 이상한 것이라 이전에는 이 불꽃이 그를 따스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되려 그에게 불을 붙여 이 썩은 불꽃과 함께 재가 되어 날려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몸을 돌려 걸어갔다.

가슴 앞의 메달이 흔들려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그것을 잡아당겨 등 뒤의 모닥불에 던져버리려고 하다, 막상 하려니 조금 아쉬워 결국에는 손으로 꾹 쥐고 말았다. 손가락의 관절이 은근하게 아팠다.

나에게 미움을 받은 것은 그 표리부동한 가짜 성인이고 이 메달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인데 왜 내가 메달에게 화풀이를 하겠는가?

더는 있을 수가 없어 나는 옌추원 일행에게 말하고 혼자 연구원으로 돌아갔다.

그 후 며칠, 나는 모추안을 보지 못했고 심지어 별로 밖을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당연히 그의 뜬금없는 경고 때문은 아니었다. 실은 황푸러우가 달달 볶아대어 나는 머리를 박고 창작에 전념하여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디자인이 아주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나의 한계였다. 나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고 옌추원에게 근처에 둘러볼 만한 관광지가 없는지 물어보았다.

"바즈해라고 있는데 먼 곳의 설산이 거꾸로 비치는 걸 볼 수 있어서 인터넷에서 꽤 유명해. 근데 좀 멀긴 해, 펑거에서 50~60km 정도 떨어져 있어."

나는 남는 게 시간이니 50~60km가 무슨 상관인가. 5, 600km도 아니고.

옌추원에게 차키를 받아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났다.

바즈해는 바다라고 불리지만 바다가 아닌 거대한 내륙의 호수였다. 날이 따뜻할 때는 층록인들은 자기 집 소와 말을 데려와 방목했고 물새도 이곳에서 쉬어가며 번식하지만 지금은 날이 추워 다소 황량해 보였다.

나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꽂은 채 혼자 호숫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비교적 넓은 탓인지 바람이 무척 셌다. 바즈해는 진짜 바다처럼 파도가 잇달아 해안을 때렸다.

멀리서 작은 부두가 보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검은색 일색 가운데 흰 그림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나는 발걸음이 느려졌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잠시 후 이전보다도 더욱 빨리 걸었다.

이곳은 펑거에서 멀지는 않지만 절대 가까운 편은 아닌데, 무슨 악연으로 이렇게 모추안을 만나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