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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판관判官

망천로 - 16. 밤길(夜路)

이 입놀림은 충분히 어색했다.
원스는 당연히 남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생각은 없었고, 그저 시에원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텅 빈 강정이어서 그의 입놀림을 알아 듣지 못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속 빈 강정이 말했다. "방금 음식도 건드리지 않았으면서 이걸 먹어?"
원스 "……."
넌 왜 그렇게 똑똑하지…….
 
그는 능구렁이 같은 성격도 아니었기에 한 순간 말을 돌리지 못하고 그저 얼굴을 굳힌 채 시에원과 대치하며 눈빛으로 적군을 물리치려 했다.
  
하지만 적군은 물러나지 않고 도리어 진격했다. "언제 이렇게 변했어?"
원스는 투항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시에원이 그 이상이라고 느꼈다.
  
"좀 됐어." 그가 말했다.
  
사실 아주 오래 전, 그는 정상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정상 상태는 오래 유지되었고 그가 저번에 무상문에서 나온 이후로 천천히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션챠오는 눈을 뜨고 그가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 특히 단 음식을 좋아하는 것에서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게 변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이 과정은 점차적으로 진행되어 그는 준비 할 시간이 있었고,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도 않았다.
 
이번에 다시 무상문에서 나오자 그는 재고를 쌓아 둘 시간도 없었고, 상태는 더욱 좋지 않아 마침내 감출 수가 없게 되었다.
 
자, 음식 본인에게 발각 되지 않았나.
음식은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알게 된 지 오래 되지 않았지만, 시에원은 늘 하하 웃는 모습이어서 이렇듯 미간을 찌푸린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원스는 조금 그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 미루어 보아 누군가가 자신을 먹을 것으로 여긴다면 놀라거나 배척하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기분이 좋지는 않을 터였다.
 
원스는 그것은 별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조금 담담해졌다.
그는 시선을 돌리고 복도 바깥을 바라보았다. 라오마오가 벽에 붙어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는데, 재촉을 하고 싶어도 감히 그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네 점원이 널 기다려." 원스는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시에원이 입을 열기 전 먼저 나가버렸다.
 
"나왔네."
"드디어 나왔네."
쌍둥이 아가씨는 반복재생기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들은 언제 자리를 바꾼 것인지 각각 양쪽으로 샤챠오를 가운데 끼고 있었다.
샤챠오는 젓가락을 쥐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원스를 바라보았고, 나약하고 기댈 곳 없다는 모습이었다. "원 형."
 
"더 먹어."
"그래, 더 먹어."
아가씨 두 명은 냄비를 가리키며 원스에게 말했다.
 
"됐어, 배불러." 원스가 말했다.
"배불러요?" 샤챠오가 놀라더니 원스의 뜻을 이해하고 목을 빼더니 복도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 자세는 원스가 서생의 정기를 빨아먹는 요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분명 행동거지와 기질을 보면 시에원이야말로 더욱 요괴 같았다.
 
"다 먹었어?" 원스는 그의 등을 두드리고 덤덤하게 말했다. "다 먹었으면 가자."
 
"이렇게 가?"
"아니면 가지 말고 가게에 있으면서 우리를 도와줘."
아가씨 두 명은 또 샤챠오를 놀리기 시작했고, 샤챠오는 황급하게 나오더니 입으로는 "감사, 감사합니다, 너무 맛있게 먹었어요." 하곤 몸은 성실하게 원스의 뒤에 움츠러 들더니 그의 형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쌍둥이는 조금 미쳐 있었는데, 방금까지는 재잘재잘 시끄럽게 굴다가 이번에는 또 조용해졌다.
그 중 한 명이 국자를 떠서 마시더니 입맛을 다시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가 많이 변했어. 나는 우리 솜씨가 안 좋아진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맛은 분명히 진짜 좋은데, 그가 왜 지금은 하나도 먹지 않을까?"
 
라오마오 역시 한숨을 쉬었다. 그는 키가 작고 뱃가죽은 둥글어 불룩 내민 것이 털이 빠진 구관조 같았다. "말했잖아, 사장님이 그 날 그를 찾았을 때 영상을 잃어버린 걸 알았다고. 영상이 없으니 조금 변화가 있겠지."
 
"영상을 어떻게 잃어버릴 수가 있어?"
"그걸 어찌 알겠어." 라오마오는 또 한숨을 쉬었다. "우리들이 봉해지고 얼마나 하늘과 태양을 보지 못하다가 이제야 나왔는데."
 
"혹시 그 때——"
라오마오는 "쯧" 하고 그녀의 말을 끊고 쉿 하는 표시를 했다. 마치 그녀의 말 속의 그 때가 금기인 듯했다.
 
쌍둥이는 말을 듣고 더는 말하지 않았으며, 목소리를 더욱 낮추었다. "그래서 사장님이 이사 가려고 하는 건 그를 도와 영상을 찾아주려는 거야?"
라오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영상을 찾는 건 얼마 안 걸릴 텐데. 그 다음은?"
"다음? 다음엔 가야지." 라오마오는 손을 털었고, 몇 살인지 알 수 없는 꽁생원 같았다. "사장님의 일도 거의 끝났으니, 원래 떠나기 전에 잠시 와서 그를 보려는 것 아니었어?"
 
쌍둥이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결국에는 탄식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거야?"
라오마오는 "무슨 꿈을 꾸는 거냐"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매달리지 않고 가로막지 않는 거 몰라? 수행한 게 그거잖아. 만약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건……."
 
그가 잔소리를 하는데, 문득 쌍둥이가 그를 향해 눈짓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멍해져 고개를 돌렸고, 시에원이 그의 뒤에 서서 길고 보기 좋은 눈동자를 반 쯤 내려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라오마오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날개를 퍼덕거릴 뻔했다.
다행히 시에원은 비록 그가 했던 헛소리들을 들었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묵인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평가하기가 귀찮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난잡한 식탁 위를 훑어보더니 "많이 먹은 사람이 정리해라."고 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라오마오는 억울한 듯 "네." 했다.
 
***
 
서병원의 1층의 가게 안은 반이 불이 꺼져 있었고, 그저 진열대 안의 전시등만이 남아 있었다.
원스가 내려왔을 때 여성 한 명이 얇은 트렌치 코트를 입고 그곳에 서 있었다. 몸에는 젖은 흔적이 뚜렷했다. 아마 올 때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 낭패스럽게 젖은 듯했다.
 
그녀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고 원스와 샤챠오를 보았을 때 멍해졌다.
샤챠오는 그녀보다 더욱 멍해졌다. "어? 당신은."
 
원스는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그녀가 익숙하다고만 생각했다. 샤챠오가 "장 아주머니"라고 부르고 나서야 그는 이 사람이 션챠오의 조문을 왔었다는 것을 떠올렸고, 이름은 장비링이라고 했던 것 같았다.
원래는 션챠오를 매장하던 날 그녀도 가려 했으나 뒤에 잠시 일이 생겨 늦어지는 바람에 가지 못했다.
 
원스는 그녀의 명부도의 위치에 대해 인상이 무척 깊었는데, 그에게서 내려온 맥이 뒤에서 첫 번째였고 장비링이 두 번째였기 때문이다.
난형난제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여길 왔니?" 장비링은 그들 둘을 보게 되자 의외라고 생각했다.
"왜 왔냐면——" 샤챠오는 이전 변명을 존중하며 말했다. "물건을 좀 사려고요, 치, 친구의 가게를 둘러보고 그 김에 밥도 먹고요."
 
"친구?" 장비링은 더욱 의외였다. "네가 말하는 친구가 누구인데?"
"어……. 여기 사장님이요." 샤챠오가 뻔뻔스럽게 말했다.
  
같이 농에 들어가고, 같이 저녁밥을 먹었고 앞으로 같이 살게 될 테니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샤챠오는 시에원을 친구로 정의하는 것이 마음이 좀 켕겼다.
 
"시에원을 알아?" 장비링이 말했다.
샤챠오는 그저 "네." 할 뿐이었다.
원스가 덧붙였다. "안 지 얼마 안 됩니다."
 
"아아." 장비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이전에 여기 왔을 때 너희를 못 봐서."
"아주머니도 시에원을 아세요?"
 
샤챠오는 말을 마치고 나서야 자신이 멍청한 소리를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장비링과 시에원은 비록 성은 다르더라도 장씨 집안의 방계인 셈이니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처한 환경이 비슷했다. 하나는 제명 되었고 하나는 순위가 가장 아래이니 둘 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이들이라 서로 잘 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샤챠오는 금방 그들이 서로 잘 지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에원이 아래층으로 내려온 후 장비링이 그와 말하는 태도는 전혀 친숙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먼저 안부를 나누고 주제에 들어갔다.
"물건 가지러 왔어요?" 시에원이 말했다. "그러면 라오마오에게 찾으라고 해야겠는데."
"아니." 장비링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다 중요한 것도 아니고, 별 거 아니야. 원래 비가 내리는 걸 보고 마침 이쪽을 지나가는 길이라 뭐 도와줄 게 있나 보러 온 거야. 손님이 있으면 오래 안 있을게. 계속 이야기 해, 나는 다음에 시간이 있으면 다시 올 테니까."
 
그녀는 숄더백을 위로 치켜 올리고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녀는 바쁘게 움직이며 눈 깜짝 할 사이에 종적을 감추어 부를 겨를도 없었다.
 
이 일은 사람들을 영문을 알 수 없게 만들었고, 라오마오가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내려오고 나서야 그들은 정신을 차렸다.
 
원스는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고, 그는 "우리도 갈게."라고 말한 뒤 문가로 가서 그 검은 우산을 집어들려 했다.
선반 위는 텅텅 비어 축축한 물기만이 남아 있었다.
 
원스는 멍해졌다. "우산은?"
샤챠오가 그를 따라 말했다. "맞아요, 우산은요?"
 
그는 쌍둥이에게 놀라 그 우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애당초 그걸 가지고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지고 돌아가지 않는 것과 없어져 버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 우산은 원래부터 충분히 이상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자 그는 더욱 모골이 송연해졌다.
 
문 밖에 문득 한바탕 바람이 불어와 흩날리는 빗물이 비스듬이 날아 들어와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무엇인가 거기에 붙어 가볍게 불어드는 것 같았다.
 
샤챠오는 벌벌 떨었고 소름이 돋아 조건반사적으로 원스의 팔을 붙잡았다.
  
원스는 그를 털어내 버리려다 곁눈질로 격자무늬 우산이 옆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거 가져가." 시에원의 목소리가 울렸다.
원스는 우산을 받고 고개를 돌렸고, 시에원이 자기 스스로도 하나를 쥐며 말하는 것을 보았다. "가자, 배웅해 줄게."
 
"필요 없어." 원스가 말했다.
"필요해." 문가의 바람은 조금 차가워 그는 외투를 입고 깃을 세우더니 주먹을 가볍게 쥐고 기침하며 말했다. "이쪽 밤길 걸어본 적 없지. 한 번 가보면 알 거야."
 
원스 "……나 겁 없어."
"알아." 시에원은 장갑을 낀 손으로 코 끝을 눌렀고 어둠 아래에서 눈꼬리가 접혔다. "그렇게 강조할 필요 없어, 눈이 있으면 아니까. 하지만 그 같은 이런——"
 
그는 샤챠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두 명은 필요가 없어, 조를 짜야지."
"……."
원스는 속으로 내 조에 약골을 데려다 머릿수를 채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큰 바람에 병이라도 나면 어쩌란 말인가?
 
시에원은 이미 그의 어깨를 받치고 버티지 말고 우산을 펴라는 표시를 했다.
 
원스는 사실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너 내가 뭘 음식으로 삼는 줄 알면서 무섭지 않아?" 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 말은 조금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아 입을 열지 않았다.
 
서병원 바깥의 거리는 사실 좀 이상했다. 어쩌면 장사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인지 저녁 8시가 되지 않았는데도 양쪽의 점포는 모두 닫혀 있었다.
 
그 가게의 전면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얼마나 오래 청소를 하지 않은 것인지 창에는 두꺼운 먼지가 쌓여 있어 비가 내리자 물자국을 남기며 흘러 마치 긁힌 얼굴 같았다.
 
가게 안의 물건들은 흐릿하여 윤곽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떨 때는 눈을 깜짝 하는 사이에 누군가 칠흑 같은 가게 속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거리 전체에는 가로등이 켜져 있지 않았고 서병원만이 약간 불을 밝히고 있었는데, 멀리 등 뒤에 떨어져 비에 휩싸여 안개가 자욱한 모습이 조금 낡아보였다.
 
이곳은 차를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망천로와 이 길의 교차로까지 걸어가야 했다.
 
샤챠오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 걷는 내내 감히 말을 하지 못했다. 이 거리에서 말을 하면 메아리가 쳐서 언뜻 들으면 누군가 뒤를 따라오며 한숨을 쉬는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저 원스가 가면 가는 대로 뒤를 쫓으며 발소리만 나도록 존재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길가의 쓰레기통 부근에서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원스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길고양이 같은 것이 목이 쉰 소리로 울며 담장을 넘어 망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모퉁이를 돌면 망천로." 시에원의 목소리는 빗속에서 잘 들리지 않았다.
"응." 원스가 대답했다.
 
그는 시에원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을 느꼈다. 손가락은 실수로 그의 목덜미의 피부를 건드렸다. 몸이 좋지 않은 탓인지 촉감이 깜짝 놀랄 정도로 차가웠다.
 
다시 일 초가 지나고 그는 문득 깨달았다. 시에원은 장갑을 끼고 있었기에 이런 촉감이 드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
그러면 그를 건드린 것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