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해련이 이 작은 섬에서 4일을 머문 뒤, 마음 속의 그 위화감은 점차 강렬해졌다—— 여요호의 소란스러움과도, 독벌호의 야만과도 달리 페크나 직속인 이들의 훈련은 너무 철저했다. 설령 페크나가 분명 훈련에 기대어 윤해의 패권을 차지했다고 해도, 이렇듯 과도하게 잡힌 체계는 티수의 해군에서도 보기 드문 것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무인도에는 자유의 기운이 없었다.
다행히 아무리 엄격한 장소라고 해도 파고 들 틈은 있었다. 나흘 간 해련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는 여요호의 유능한 일꾼 역할을 하며 가능한 한 순찰조의 행동 규칙을 파악했고, 그 김에 페크나 세력의 상황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여요호의 백이십 여 명을 더하면, 섬에는 현재 대략 오백 여 명이 머물고 있는데 모두 페크나의 심복과 주력이었다. 여요호와 나란히 정박한 거대 주선인 해신호 외에도 섬에는 남서 방향으로 대략 일고여덟 대의 쌍돛대 약탈선이 정박해 있었다—— 이런 배들은 작고 가볍고 빠르며 화력은 충분하여 별 방비가 없는 상선을 파괴하기엔 충분했고 또한 군함의 공격 범위에서 가볍게 벗어날 수 있어 페크나가 박랑상을 습격하고 각 해군을을 괴롭히는 주력이었다.
모든 약탈선마다 선장이 한 명씩 있었는데 모두 해신호의 일등항해사의 배치에 따랐다. 이 일등항해사의 본명은 알 수 없었고 별명은 그림자라고 했는데, 동주 사내였다. 며칠 전에 동주인 몇 명을 보았던 탓에 해련은 저도 모르게 그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그가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었던 점은 하나 더 있었는데, 해련이 이 사람에 대해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었다. 페크나의 부하 중에는 솜씨가 괜찮은 이들이 많았는데 명면상의 상위, 음지의 곤희, 그리고 며칠 전 뒤집어진 녹색발벌레가 그들이었다……. 아무도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해 페크나에게 조수가 하나 더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해련은 이리저리 생각했고,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페크나 본인의 바다에서의 명성이 너무 드높아 자신의 일등 조수더러 그림자처럼 그의 등 뒤에 서있게 했다는 것이었다. 해련과 이 그림자는 두 번 만나보았는데, 처음은 페크나가 상위를 위해 작은 환영회를 열었을 때 체면치레로 잔을 한 번 부딪친 것이었고 다른 한 번은 그가 "답사"를 하는 도중에 상대에게 가로막혔을 때였다.
"여기서 뭐해?"
"저녁을 많이 먹어서 돌아다니고 있어."
"배가 부르다고?" 그림자는 해련을 위아래로 살폈다. "상위가 평소에 자기가 있어야 할 장소에 있는 편이 좋다는 말 안 했나?"
"말했을걸, 어쩌면 내가 그 때 술을 많이 마셔서 듣고 잊어버렸나봐." 해련은 자신이 방정란과 몇 개월을 함께 하며 두꺼운 낯짝을 좀 얻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다른 해적들이 그러듯 무뢰배처럼 웃었다. "우리가 군인도 아니고, 좀 다니면 어때? 이 몸이 이전에 사귀만을 쏘다닐 때도 아무도 무어라 안 했어."
남자는 "군인" 두 자를 듣자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 "똑바로 말해, 대체 여기 뭐하러 왔어!"
"별 거 아니야." 해련은 남자를 직시했고 반은 탐색하고 반은 도발하며 입을 열었다. "상위가 그러는데, 우리 선장이 큰 보물을 얻었다잖아. 난 그냥 언제 꺼내서 동생들에게 보여주나 싶은 거지."
"보물……." 그림자는 이 두 자를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돌려 해련이 가려던 방향을 보곤 갑자기 깨달았다. "왜 여길 어슬렁거리나 했더니, 도둑놈이었군."
해련은 상대가 자신을 한치 앞 밖에 볼 줄 모르는 탐욕스러운 바보로 여기기 바랐다. 그는 일부러 거칠게 침을 삼키고 헤헤 웃었다. "내가 저기 산 동굴까지 봤다고. 보물…… 안에 있는 거 맞지?"
"흥, 카포크가 데려온 신인은 실력은 별론데 입맛은 좋네." 그림자가 해련을 바라보는 눈빛은 점차 경멸을 띄었다. "조만간 견식을 넓힐 때가 있을 텐데, 뭘 서둘러."
그의 말투는 점차 혐오스러워지더니 청년을 향해 꺼지라는 손짓을 했다. "이 섬의 모두는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는 걸 금지해, 만약 상위가 알려줬는데 잊어버렸다면 내가 지금 한 번 더 알려주지. 다음에는, 내가 칼로 두 번째 알려줄 것이고 세 번째는, 총을 쓸 거야."
저번에 이렇게 자신을 위협한 것은 독전갈 호박이었고 해련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이렇게 고압적인 어조였다. 그는 마음 속으로 냉소했고 표면적으로는 되려 투항하는 손짓을 했다. "당연하지, 지금 바로 돌아갈게."
54.
해련이 어슬렁어슬렁 여요호의 선실로 돌아왔을 때 동료들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실내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그 소리 가운데 자신의 침대 위의 얇은 이불을 둥글게 말고 상자에서 털이 빠진 펠트 담요를 꺼내 그 위에 깔았다. 그 후 조용히 자신의 묶은 뒷머리를 풀고 옆자리 동료가 침대 머리맡에 둔 꼬질꼬질한 머릿수건을 쓴 뒤 기둥에 걸린 누구의 것인지 모를 외투를 몸에 걸쳤다. 해련은 담요 위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선창 밖의 달빛이 완전히 실내의 등불 빛을 뒤덮자 몸을 일으켜 선실을 나섰다.
섬 초소의 교대 시간이었다.
여요호 갑판 위에서는 아직 야간 순찰 선원 몇 명이 카드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해련의 뒷모습을 보고 소리 높여 물었다. "야, 어디 가?"
"배가 아파!" 해련은 거친 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십육도 방언을 썼고, 목소리는 바닷바람이 섞였다. 상대는 여러 말을 묻지 않고 싫은 듯 손을 흔들었다. "어서 꺼져, 배에 냄새 풍기지 말고!"
해련이 슬쩍해 온 외투에는 짙은 술냄새가 나서 그는 계속 재채기를 하고 싶었다. 막 숲에 들어오자 마자 그는 얼른 외투를 벗어 관목숲으로 던졌고 기꺼이 얇은 스웨터 한 장을 입고 나아갔다. 다행히 오늘 섬은 그렇게 춥지 않아서 이따금 불어오는 미풍이 뒷목을 스칠 때 작은 소름이 이는 것 말고는 그의 잠행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해련은 종려나무 한 그루에 기대어 자신이 반드시 지나가야 할 길을 순찰하는 마지막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 후 소리 없이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저녁 무렵에 그림자가 그를 막지 않았더라도 그는 본래 자정이 되어서야 올 생각이었다. 그는 수풀 사이에 쭈그리고 앉았고 동굴 입구를 지키는 동주인들의 잠에 빠져든 이목구비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해련은 조용히 주머니에서 모래밭에서 주워 온 돌을 꺼냈고 수풀 속을 천천히 나아가 자신이 동굴 입구로 파고들 수 있는 거리가 되었을 때 손을 들었다.
※※※
"만약 누가 보물을 지키고 있다면 넌 어떻게 아무도 몰래 보물을 훔쳐낼 테냐?"
"내가 좀도둑도 아니고, 나더러 홍류항에서 좀도둑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요." 열다섯 살의 해련은 훈련용 철선반에 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왜 내가 이걸 배워야 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나쁜 놈이니까, 나쁜 일들은 다 알고 있어야지." 외눈박이 매 아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매일 너더러 난쟁이 의사네에서 죽은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 칼을 쓰는지 연습하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 내 질문에 대답해라."
"음……." 해련은 생각했다. "때려서 기절시키고, 들어가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아그가 말했다. "네가 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없다면?"
"그러면…… 음……." 해련은 말을 멈추었다.
"그가 네게 집중하지 못하게 해라." 아그의 왼손이 딱 소리를 내었고 소년은 무의식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선생님은 이미 오른손으로 해련의 허리춤의 돈주머니를 꺼냈다.
"내놔요!" 해련은 깨닫고 손을 뻗어 빼앗으려 했으나 사내는 가볍게 피했다. 아그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돈주머니를 자신의 두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렸다. "네 다섯 번째 수업은 불합격이다. 그러니 네 돈주머니는 내 거야, 이 몸이 마침 오늘 술값이 부족했거든."
"이건 내가 삼 일 간 죽은 사람을 칼질한 임금이야!" 해련은 화가 났다.
"누가 젠장, 이게 네 임금인지 아닌지 신경이나 쓰겠냐." 아그는 유일한 눈으로 비열하게 그의 학생을 응시했다. "네가 오늘 임금을 한 번 잃은 게 앞으로 목숨을 하나 잃는 것보다는 낫지."
※※※
돌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 조용한 수풀에 부딪쳤고 마침 멀지 않은 나무 위의 새 둥지에 명중했다. 깊이 잠들어 있던 둥지 속의 새는 곧장 소리 높여 찍찍 울었다. 눈꺼풀을 내리깔고 있던 사람은 이 작지 않은 움직임에 놀라 깨어 무의식적으로 경계하며 소리쳤다. "누구냐?!"
새는 아직도 푸드덕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의아해하며 허리춤의 칼을 쥐었고 시선은 줄곧 조용히 소리가 난 곳을 응시하고 있었으나 소리를 만들어 낸 사람이 그의 뒤쪽에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가 다시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간 뒤, 해련은 시기를 타서 영리한 두더지 한 마리처럼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에는 빛이 없고 한밤중이어서, 설령 해련의 밤눈이 나쁘지 않다고 해도 다섯 걸음 가는 것도 맹인이 더듬는 것 같았다. 다행히 발치의 흙은 이리저리 밟혀서 건조하여 걸어도 미끄러지거나 소리가 날 염려는 없었다. 해련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통로에 희미한 초석 냄새가 짙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벽에 손을 짚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몇 걸음 걷지 않아 어떤 딱딱한 물건과 부딪혔다—— 돌 틈에 못박힌 촛대였다. 해련은 손가락으로 촛대를 천천히 더듬어보니 폐쇄등이었다. 이런 등은 해련이 구몽성 교외의 폭죽 공장에서나 본 것이었다.
폭죽을 만드는 곳에서는 불을 피해야 한다. 하지만 페크나는 이곳에서 보물을 찾고 있지 않던가? 해련은 숨을 삼켰고 비강 안에 그 초석의 냄새가 점차 짙어졌다.
설마 그가 보물을 파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좋지 못한 어휘 하나가 해련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무기. 그는 소리 없이 이 두 자를 읊었다.
해상의 세력이 해군 군대에 비할 정도인 해적의 우두머리가 무기를 모으는 것이 의외의 일은 아니었지만, 섬에 온 이후로 그는 페크나가 단순한 해적일 뿐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이라는 단어가 해적과 함께 놓이기만 해도 해련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머릿속을 맴도는 단서 하나하나와 암시는 그를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서늘해지게 했다.
그것도 그렇다, 만약 페크나가 그저 해적의 우두머리였다면 방정란이 왜 그렇게 구몽성에서 오랜 시간 조사를 했을까. 그는 동주 천위이고 돈이 그렇게 많은데 그의 손 아래의 큰 배가 해신호와 정면으로 맞선다 해도 지지 않을 것인데 뭐하러 나더러 암살하라고 했을까. 암살을 해도 빠르게 해치워버리지 않고 그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우물쭈물하다니……. 해련은 더듬던 손을 내려놓고 계속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백호방에 있을 때 해련은 그의 선생님이 왜 그 사람들을 죽여버렸는지 묻지 않았다. 그의 선생님은 그들이 "나쁜 사람"이며 "배반자"라고만 했다. 백호방을 떠난 뒤 팔루코의 일을 맡기 시작하고서도 팔루코에게 왜 그 사람들이 치안관의 명단에 올랐는지 묻지 않았다.
그의 직감은 그에게 묻지 않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묻지 말고, 고개 돌리지 말고, 조용히 말을 하지 못하는 칼이 되면 그는 팔루코가 말하는 거미줄에 걸려들지 않고 자유로이 구몽성의 밤을 거닐 수 있다. 그러나 방 씨 놈이 이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는 분명 그 동주 여우가 눈에 거슬리는 것을 보았는데도 고작 수 개월 만에 저도 모르게 상대에게 호기심을 갖고 말았다.
그는 힐월절에 방정란이 옆에 놓았던 공양주가 궁금했다. 방정란이 대극장에 있을 때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지금까지도 그는 자신의 호기심에 순종하여 계획의 요구를 무시하고 이 동굴에 이르렀다. 홀린 것처럼 해련은 자신이 옆 집 작가의 대본을 곁눈질했던 것을 떠올렸고, 그 안에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한 대사가 있었다.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당신의 눈동자 속의 우울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됩니다.
젠장! 오브라이언은 매일 무슨 헛소리를 쓰는 거야! 청년의 얼굴에 순식간에 열기가 일었다. 그는 바깥의 수위에게 들키는 것을 두려워 않고 화가 나 힘껏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 결과, 발끝이 어떤 딱딱한 것에 세게 부딪쳤고 그 탓에 해련의 얼굴은 완전히 새빨개졌다.
그는 쭈그리고 앉아 발끝을 쥐고 아파서 이를 드러내었다. 어렵사리 진정되어 자신이 무엇을 걷어찼는지 보려 했을 때 갑자기 동굴 입구에서 발소리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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