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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해중작海中爵

해중작 - 39. 해적 장군

 

 

52.

"여기 섬 이름이 뭐지?"

"몰라." 해련의 주변 동료가 어깨를 들썩였다. 그 역시 처음으로 오는 것이었다.

해련은 무의식적으로 머리 위를 쳐다보았으나 지금은 낮이라 그는 자신의 대체적인 방위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막 남을 도와 술 상자를 하나 더 내리려 할 때, 갑판 반대편에서 상위가 그를 불렀다. "가자, 우리 대장한테 인사시켜 줄 테니."

청년은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그는 옷을 정리하고 상위를 따라 여요호를 내렸다.

 

해련은 걸으며 이 이름 없는 작은 섬을 관찰했다. 얕은 여울가의 항구 통로도, 멀지 않은 곳의 초라한 오두막 수십 채에도 자주 사용한 흔적이 있었다. 오두막 앞에서 해적들은 너덧 씩 모여 카드를 치고 있었고 건조 생선과 옷자락을 끼운 대나무 장대와 작은 산처럼 쌓인 술병들이 그들의 뒤에 위치해 있었다. 더 먼 곳을 바라보면 순찰을 도는 조들과 높은 곳의 총이 있는 초소도 보였다.

보아하니 페크나가 이곳에서 꽤 머물렀고, 계속 머무를 생각인 듯했다. 해련은 방금 물건을 옮기다 상처가 난 검지를 빨며 묵묵히 생각했다.

"이 섬 이름이 뭐야?" 그는 이 문제를 다시 상위에게 던졌다.

"몰라." 상위는 담뱃불을 붙이려 했으나 오늘은 바람이 세어 몇 차례를 시도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손짓하여 해련더러 가려보라는 표시를 했다. "윤해에는 이런 섬이 너무 많아. 만약 섬마다 이름을 붙인다면 사전의 모든 단어를 다 쓸지도 모르겠군."

"그가 찾으려는 보물이 이 섬에 있어?"

남자는 그 말에 눈꺼풀을 들어 그를 보았다. 이마의 피부 역시 이 동작에 따라 몇 줄기 깊은 주름을 만들어냈다.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이따가 그를 보면 이렇게 질문하지 마, 혀 조심하라고."

"꼭 벙어리 행세를 할게." 해련은 웃었고 손을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자 상대는 그를 노려보았다.

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 문득 왼쪽 앞의 숲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해련이 소리를 따라 바라보니 관목숲을 사이에 둔 그림자 몇 명이 물건을 옮기고 있는 것만 보였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발을 잘못 디뎌 다리를 찧은 듯했고 남은 몇 명이 급히 다가가 상처를 살피고 있었다. 대화 소리는 작았으나 여전히 나뭇잎에 층층이 걸러져 해련의 귓속으로 들어왔다.

"어때? 어디 다쳤어?"

"괜찮아, 괜찮아. 너희 먼저 가……."

"너희 조심해, 이 물건이 정말 부딪히면 상처 나고 끝나는 게 아니야."

동주어? 해련은 멈칫했다.

윤해에서 해적 노릇을 하고 있는 동주인도 없는 게 아니나, 옛부터 동주인과 남경인은 해상에서 지독하게 싸워왔고 그런 탓에 동주인의 고향 의식은 다른 지방 사람보다 훨씬 강했다. 그들은 종종 무리를 형성하여 군함이 많이 다니는 창랑만과 구인화 일대를 침략했다. 해련은 페크나와 교류한 적은 없지만 그의 부하들이 대부분 남경 유민이라는 것은 안다. 지금 페크나의 대본영에서 동주인 몇 명을 만나게 되니, 해련은 저도 모르게 몇 차례 쳐다보게 되었다.

숲 맞은편의 몇 명 역시 경계하고 있었고 부상자를 부축하던 이가 해련이 던진 시선을 깨달은 듯 고개를 돌렸다. 해련은 빠르게 시선을 내리며 상위와 한담을 이어갔다. "페크나는 만만치 않은가?"

"한 마디 하는데, 이따가 그를 만나면 선장이라고 불러야 하는 걸 잊지 마라. 이름 부르지 마. 만만하겠냐, 당연히 만만치 않지. 그는 이 몸보다 신중하고 신인에 대한 경계심 역시 강해." 상위가 말했다. "그의 곁에는 그를 오랜 세월 따른 동료들이 있는데 그가 해적이 되기 전부터 따라왔어. 너도 알겠지만 우리 같은 일은 목숨 걸고 하는 거고, 내 목숨을 걸 수 있는 형제가 있는 건 금 산을 얻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이야."

상위가 이렇게 말하자 방금 동주인 몇 명의 출현은 더 이상해졌다. 해련은 또 빠르게 방금 사고 쪽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벌써 금 산이 있어. 여요호의 사람들은 다 당신한테 충성하던데." 해련은 생각나는 대로 아첨했다. "당신은 좋은 선장이야."

상위는 하하 크게 웃으며 해련의 등을 두드렸다. "좋은 선장은 좋은 동료가 있어야지! 네가 바로 내 좋은 동료다!"

 

어렵사리 담배에 불을 붙이고 상위는 만족스레 두 모금을 피운 뒤에야 해련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의 발치는 인공적으로 만든 흙길에서 점차 두껍게 나뭇잎이 깔린 숲속의 오솔길로 변해갔고 그들은 마침내 작은 섬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오두막 앞에 멈추었다. 문 앞을 지키던 동료는 상위의 얼굴을 알아보았고, 그는 상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을 열었다. "선장님이 안에서 기다리십니다."

해련은 이 말을 들을 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점차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으나 여전히 어디가 이상한지는 말할 수 없었다. 그가 상위를 따라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옆방으로 가, 그가 앞으로 찔러 죽일 목표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야 마침내 어디가 이상한지 깨달았다.

섬을 순찰하는 조, 문가의 동료의 공손한 표현, 그리고 거대한 지도가 걸려 있고 문서와 필기가 쌓여있는 방은…….

이것은 흉악무도한 우두머리를 만나는 것이 아닌, 경비 삼엄한 철혈의 국왕을 알현하는 것 같았다.

"페크나 선장님." 상위는 그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그 사람은 몸을 돌렸다.

윤해에 페크나의 전설이 전해진지는 이미 팔 년이 되었는데, 그때 그는 이미 성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지금은 이미 반백에 가까운 나이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내의 머리카락은 새카맸고 허리는 곧아 그 나이의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설령 두 겹의 겨울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어도 여전히 그의 어깨의 견실한 근육이 이 부드러운 옷감을 떠받치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많지 않았는데 다 미간과 눈가에 집중되어 있어 본래도 진지해보였던 눈매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법령 두 줄이 그려내는 좁고 긴 곡선 말고는 남자의 이목구비에는 다른 부드러운 곡선이 없었다. 이런 사람을 안완나 구에 두는 것은 너무 고귀하고, 백조구에 놓기에는 너무 살기에 넘친다. 그는 오직 전차에 앉아 천군만마를 지휘하여 무자비한 공세를 퍼붓는 것만이 어울렸다.

장군. 해련의 머릿속에 갑자기 이 단어가 떠올랐다.

맞다, 윤해의 그 해군함대의 끽끽 우는 원숭이들은 장군이라 할 자격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상상하는 장군의 모습이었다.

해련은 침을 삼켰고, 그제서야 페크나와 눈을 마주진 그 순간부터 자신의 등에서 땀이 흐르던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페크나의 시선은 이 새로 온 젊은이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는 다가와 먼저 해련 곁의 상위를 껴안았다. "드디어 왔군."

"몇 달 못 뵈었는데 더 활기차십니다." 상위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약간의 진전이 생겼으니 자연히 활기차지." 페크나는 상위를 놓고 해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쪽은……?"

"독벌호의 해련입니다." 상위는 한 손을 해련의 어깨 위에 올렸다. "우리가 술을 마실 때 말했던 그 녀석이요, 얼굴 볼 기회가 없었다 하셨잖습니까. 지금 그는 제 배 사람입니다!"

페크나는 길게 "아아" 했다. 남자는 해련을 살펴보더니 평했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좀 다르군."

"너무 젊다고요?"

해적 두목은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말랐어."

"사람들이 다 당신 같지는 않지요." 상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선장님 같은 호랑이는 호랑이의 사냥법이 있고, 그와 같은 이리들 역시 이리의 사냥법이 있는 법이지요! 내 배를 좀 보십시오, 이 살, 바다에 두면 꼬로록 가라앉고 2리도 뛰지 못하고 피곤해서 바닥으로 퍼질 테지만 전장에 오르면 여전히 군함 세 척은 작살낼 수 있어요!"

"이 친구, 말은 잘 해. 이기질 못한다니까." 페크나는 고개를 흔들며 오늘의 첫 번째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앞으로 와 해련의 팔 한 쪽을 잡아당기며 가볍게 껴안았다. "환영하네, 신인. 상위 아래에서 잘 하도록 해."

"네, 선장님." 해련이 대답했다.

이번에 상위가 해련을 데려온 것도 페크나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일 뿐으로, 무슨 수상한 종자로 의심받는 것은 아니었다. 양측은 인삿말 몇 마디를 나누었고 해련은 상위가 페크나와 상의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을 보자 눈치 빠르게 입구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상위는 웃으며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기다릴 필요 없어, 돌아가라. 일등항해사에게 술 한 병을 남겨 놓으라고 해!"

 

해련은 오두막을 떠난 뒤 길을 따라 여요호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대로 행동했다. 청년은 머리 위 초소의 사각을 계산하곤 허리를 굽혀 밀림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오는 길에 머릿속으로 노선을 그렸는데 이 때는 이미 수천 번을 걸었던 것처럼 익숙해졌다. 다행히 섬은 이미 겨울에 접어들어 산 것이나 벌레를 밟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고, 덩굴에 걸리지 않는 것만 조심하면  해련의 행동에는 별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는 평소 길을 걸을 때도 이미 소리가 나지 않았고 오늘은 바람이 센 것까지 더해져 잠행은 물 만난 고기와 같았다. 그는 몸을 숙인 채 이리저리 돌다가 마침내 이전의 그 동주인 몇 명이 멈추어 있는 숲 앞까지 이르렀다.

전날 가랑비가 내려 지면의 진흙은 아직 젖어 있어 발자국만 또렷하게 보인 것이 아니라, 그 몇 명이 물건을 내려놓고 부상자를 부측했을 때 물건이 남긴 흔적까지도 분명했다. 흔적은 도처로 널려 있었고 반듯했으며 위에 놓인 칸막이까지 진흙 위에 무늬가 찍혀 있었다. 무거운 나무 상자인가? 청년은 한참 관찰하다 입술을 오므렸다.

이 해적 두목이 정말 이 괴상한 곳에서 보물을 파내려는 건 아니겠지?

그는 마음 속에 의혹이 일이 숲 깊은 곳을 파보고 싶었으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순찰조는 조금 까다로웠다. 해련 역시 첫째 날에 섬에서 소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그가 푸른 눈의 장군 때는 보름을 쭈그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해적 장군을 위해 쭈그리고 있을 인내심은 충분했다.

어쨌든 기회를 내어 알아봐야겠다. 비록 방정란은 그가 얌전히 있으면 된다고 했지만, 만약 내가 얌전히 있지 않는다고 해서 그 동주 여우가 날 어쩌겠어. 해련은 이것저것 생각하다 천천히 길로 돌아갔다. 그는 몸에 떨어진 나뭇잎을 털어내고 아무 일 없는 듯 여요호를 향해 걸어갔다.

 

해련이 떠난 뒤, 오두막의 페크나와 상위 역시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네가 왔다는 건 내가 손을 써도 된다는 거겠지." 페크나가 물었다.

"맞습니다." 상위는 그에게 예를 올렸다—— 티수의 군례였다.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장군께서 속전속결로 임하라 하셨습니다."

"속전속결……." 페크나는 이 네 자를 음미하며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지도를 보았다. 남자의 눈빛은 윤해로 향하지 않고 바다의 동쪽, 그 강대한 대륙에 꽂혔다. "내가 팔 년을 기다렸으니, 마침내 속전속결 할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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