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여요호는 큰 배다.
이 "크다"는 것은 배의 톤 수와 배에 탄 이백 명에 가까운 선원 뿐 아니라 사십 여 대의 까맣고 묵직한 대포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이런 규모의 배는 각 나라 해군 중에서도 주함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배가 사귀만에 멈췄을 때 그것은 페크나가 주둔한 초소와 성이었으며 바다를 다닐 때의 여요호는 무너지지 않는 움직이는 보루였다.
해련은 상위를 따라 여요호의 위아래를 둘러보았고, 지금 보루의 심장인 선장실에 서 있자 저도 모르게 감탄스러워졌다. 상위는 그의 감탄을 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큰 배는 본 적 없지?"
맞은편의 청년은 상위의 말에 곧장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는 입을 열었다. "내가 열두세 살 때 집에 먹을 게 없어서 티수의 선착장에 가서 돛대에 못을 박는 일을 했어. 그 일은 몸이 가벼운 아이들만 할 수 있었는데 첫째로는 하루에 동전 여섯 개 정도로 급료가 쌌고 둘째로는 돛대에서 떨어져 죽어도 얼마 안 물어줘도 되고 시체 수습도 쉬우니까." 해련은 선장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 구석진 곳의 보석 상자 속의 진주를 한 웅큼 쥐어 손바닥에서 굴렸다. 깨끗한 빛이 손바닥 위의 오래된 거친 상처를 그다지 흉악해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돛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어, 팔 척은 됐지. 나는 그 위에서 흔들렸고 작은 바람만 불어도 날 잡아 끌어내릴 수 있었어."
"분명 큰 배로군." 상위는 눈살을 찌푸렸다. "상선, 아니면 전선? 내 여요호와 맞붙을지도 모르겠어."
"다 아니야." 해련은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그 배는 이전 국왕이 딸 롱롱에게 준 성년 선물이었는데 무슨 운중숙녀호라나. 옛 국왕이 죽고 지금의 호박왕이 등극한 세 번째 해가 되고 나서야 준공하기 시작했지. 그 배는 가장 좋은 강철과 가장 좋은 목재를 사용했으나 한 번도 바다에 나간 적이 없어. 지금도 계속 황가의 항구에 정박되어 있으며 예쁜 장식품 노릇을 하고 있대."
상위는 듣더니 크게 안타까워했다. "좋은 배를 바다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게 절세 미녀를 높은 탑에 가둬두는 것과 뭐가 다르지! 왕실 귀족 이 망할 놈들은 매일 군량을 깎고 주지 않는데 분명 다른 데서 돈을 마구잡이로 쓰는 거야……."
해련은 상위가 중얼중얼 욕하는 것을 듣다 문득 한 가지가 떠올랐다. "당신이 이전에는 티수 군대 출신이었다고 하던데, 이 일을 못 들어봤다고?"
상위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예전에 수도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고 서쪽의 개 거지 같은 만림성에 있었는데 뭘 알았겠어?"
해적이 된 이들의 대부분은 뭍에서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 이들이라 해련 역시 상위의 과거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그는 진주를 돌려놓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전에 당신들이 모이인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어쩔 셈이야?"
"원래는 사귀만을 지키며 두목이 돌아오길 기다리려 했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그가 돌아올 때면 그 줏대 없는 놈들이 우리 경골을 바다에 쳐 넣어 상어 밥으로 만들까 걱정될 뿐이야. 이 몸의 여요호는 사자고 사귀만의 다른 해적들은 새끼 양이지. 하지만 사자 한 마리가 새끼 양 무리를 마주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야." 상위는 엄지를 물었다. "스스로 바다로 나가 사자 무리와 합류하고 돌아와 모이인을 상어 밥으로 만드는 게 낫지."
"당신이 없으면 아무도 사귀만을 지켜보지 않아. 그러면 이걸 그냥 모이인에게 내주는 거야." 해련이 일깨워주었다.
"상관 없어." 상위는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아크!"
밖에서 대답 소리와 함께 소년이 한 명 들어왔는데, 소년은 머리가 짧고 까치집이었고 피부는 햇빛을 충분히 받은 뒤의 광택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너무 어렸는데, 사지도 충분히 자라지 않았는데 나지막한 대나무 장대처럼 문을 찌르고 있었다. 소년은 두건을 치며 인사했다. "두목, 무슨 일이에요?"
"그는 아크라고 하는데, 사귀만에 남아서 우리를 도와 얌전치 못한 놈들을 지켜볼 거다." 상위가 소개했다. "여기는 해련이다, 내가 새로 데려온 선원이지."
"당신 들어봤어요, 독벌호의 에이스죠!" 아크는 괴성을 지르며 해련의 앞으로 뛰어왔다. "해상의 킬러, 내 우상.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사람 두개골로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던데, 오늘은 왜 안 했어요?"
해련은 남자 아이의 호들갑에 머리가 다 아팠다. "만약 그 소문이 돈을 주고 들은 거라면 도로 돈을 찾아와. 난 그런 취미는 없어."
"그럼 둥근 달밤에 은신한 건요? 그게 아니면 어떻게 푸른 눈 장군의 둥지에 잠입해 소리 없이 그를 없애버릴 수 있었겠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섬에 보름 간 쪼그리고 있다가 그 놈의 규칙을 알아낸 뒤에야 움직였어. 거기다 너희 다 속은 거야, 그가 머무는 곳에는 보물 같은 건 없었어, 전부 돈도 안 되는 물건이었지. 문서, 편지…… 그런 거."
"그 물건들은 결국 어떻게 처리했어?" 상위가 끼어들었다.
해련은 입을 삐죽였다. "생선 구이의 연료로 썼어. 당시에 정말 배가 고팠거든."
"오늘 저녁 식사 때 누렁니를 팬 건 진짜겠죠?"
"그래, 이건 진짜야." 아크가 무언가 더 물어보려 하는 것을 보고 해련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만 물어, 나는 평범한 사람이야. 기껏해야…… 기껏해야 솜씨가 너희보다 나은 것뿐이지."
"너무 좋은 거죠!" 남자 아이는 헤헤 웃더니 마침내 자신의 소원을 말했다. "저한테 가르쳐 줄 수 있어요?"
"나는 제자 안 받아."
"열심히 할게요, 지금 저희는 한 배에 탄 사람이잖아요. 자, 봐요. 저 앞으로도 튼튼하게 클 수 있어요." 당장 자신의 말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아크는 소매를 걷어 올려 해련을 향해 자신의 가여울 정도로 적은 근육을 내보였다.
"금방 한 배가 아니게 될 거다, 꼬마야." 상위는 그의 말이 점점 두서없어지는 것을 보고 아크의 옷깃을 쥐어 그를 한쪽으로 끌어내더니 서랍에서 쪽지를 하나 꺼냈다. "널 부른 건 네 우상을 희롱하라고 부른 게 아니야. 이걸 가져 가라, 누구에게 줘야 할지 알겠지."
아크의 눈썹이 금새 축 늘어졌다. 그는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 쪽지를 받고 싶지 않아 했는데, 상위의 꿀밤을 한 대 맞고서야 꼬마는 끙끙거리더니 쪽지를 받아 품에 넣었다.
그가 문을 나선지 두 걸음도 되지 않았을 때, 문득 문 밖에서 고개를 반 쯤 내밀더니 소리쳤다. "선생님은 안 되더라도 두 수 정도 가르쳐 줄 수 있죠!"
해련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한 수."
남자아이는 익삭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신 부하들은 다 이렇게 소란스러워?"
"그는 너무 어려." 상위는 어쩔 수 없다는 어조였다. 문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아버지와 같은 자비로움이 있었다.
"그러면 어린애를 혼자 사귀만에 두는 거야?"
"아크는 보통 꼬마가 아니야." 상위는 고개를 돌렸다.
"뭐?"
"그와 그의 누이는 내가 우리 동업자의 손에서 구해낸 거야. 그때 그는 바다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온 얼굴이 피투성이었지—— 그 개자식들이 그로 상어낚시를 하려 한 거야. 그 누이는 선실에 있었는데 다른 개자식 두 명이 그녀의 몸 위를 기어오르고 있었어."
"페크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내가 그날 선심이 들어서 그랬나?" 상위는 하품을 했다. "그와 그 누이는 뭍에 가족이 없어서 내가 거두어 들였지."
"그럼 그의 누나는?" 해련은 자신이 여요호에서 여인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곤희昆姬 쪽에 있어."
곤희는 원래 마을의 해녀였는데 열여섯 살 때 당시 해적의 우두머리던 야롱을 따랐고, 야롱이 죽은 뒤에 본래 야롱을 따르던 해적들이 난장을 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되려 집단적으로 곤희를 자신들의 새 우두머리로 삼았다. 지금은 소녀가 고향을 떠난지 벌써 십오 년이었고, 서른한 살의 곤희는 윤해의 유명한 미인일 뿐 아니라 사귀만 이쪽의 호랑이와 늑대의 땅의 우두머리였다.
"곤희 아래에 고아가 많다고 들었어. 그의 누나가 있는 것도 나쁜 곳은 아니야." 해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 아니지." 상위는 바다를 향해 손가락을 굽히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하나 더 알려주마, 곤희는 표면적으로는 모이인에게 투항할 거야."
해련은 먼저 어리둥절했으나, 곧 깨달았다. 그제야 그는 상위가 감히 안심하고 사귀만을 떠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곤희와 페크나가 암중 맹우 관계라 안팎으로 협력한다면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심지어…… 해련은 시선을 내렸다.
이 기회를 틈타 사귀만의 이분자들을 일망타진할 수도 있다.
"사귀만에서 아크 남매의 관계에 대해 아는 것은 페크나, 곤희, 나, 지금은 너까지야." 상위는 해련을 향해 손을 펼쳤다. "내가 너한테 큰 비밀을 공유했어, 해련."
"내가 뭘로 비밀과 교환하길 바라?" 해련은 자신의 현재 신분을 기억하고 있어 웃으며 물었다.
"바라건대……." 노군관은 생각했다. "네가 이전에는 독벌호의 에이스였으니, 지금은 내 여요호의 에이스가 되길."
48.
대화가 끝난 뒤 상위는 아직 준비해야 할 일이 있어 해련은 사귀만에서 이틀을 더 머물렀다. 그 기간 동안 그는 한 번 더 누렁니를 만났는데, 상대는 얼굴이 아직 부어 있었으나 여전히 죽는 것을두려워 한고 그를 향해 극히 저급한 손짓을 해보였다. 해련은 아예 보지 못한 척을 했고 그것이 되려 누렁니를 열받게 만들었다.
셋째 날, 바다에는 북서풍이 불었고 여요호는 바람을 타고 나섰다. 이 거대한 물건은 움직일 때 곧 떠나려던 부엉이호를 만났는데, 해련은 갑판의 뱃전에 서 있어 맞은편의 검은 배의 선주의 의아한 눈빛과 마주했다. 청년은 우호적으로 상대를 향해 작별 인사를 했다. "당신들 다음 행선지는 어디야?"
"북막으로 돌아가야지! 내 딸이 날 그리워하고 있을 거야." 선장은 퉁퉁한 배를 두드렸다. "젊은이, 필요한 거 있어? 내년에 다시 보면 할인해 주지!"
"단화총 좀 갖다줘." 해련은 방정란의 총을 떠올렸다. "이정도 크기에, 총관에 금테가 있고 손잡이에 은 늑대가 새겨져 있어."
선장은 놀라 외쳤다. "그건 활아 가문의 표시야. 그 집안은 예전엔 초원의 한왕에게만 무기를 만들었는데 총 한자루도 싸지 않아!"
"기억해주면 돼." 해련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요호는 동시에 굉음과 함께 천천히 부엉이 호를 우회했고 다시 한 번 그것이 수없이 많은 싸움을 했던 무대에 올랐다.
해련은 상위에게 어떻게 망망대해에서 페크나를 찾을지 묻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신인이었으니, 설령 선장이 마음에 들어하는 신인이라고 해도 입을 너무 많이 놀리지 않는 편이 좋았다. 항해 후 5일 간, 해련은 다른 새로 배에 탄 해적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교대할 때 직무를 다하여 보초를 서고 돛을 당기는 것말곤, 평소에는 다른 놈들과 술을 마시고 카드 놀이를 하고 심지어 그가 이전에 독벌호에서 배우지 못했던 노래를 배우기도 했다. 6일 째 되는 날 여요호와 모이국의 군함이 부딪쳤을 때 그는 그가 분명 여요호의 에이스가 되기에 적합한 실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청년은 접근전에서 상대의 대장을 해결했을 뿐 아니라, 그 김에 갑판에서 바다로 곤두박질 칠 뻔했던 여요호 선원 두 명을 구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상위도 있었다.
남자는 얼굴의 바닷물과 핏물이 섞인 것을 닦아내며 여유로운 표정의 젊은이를 향해 감탄했다. "내가 이전에는…… 네 소문이 다 거짓말인줄 알았어."
"정말 거짓말이야, 당신도 내가 아크에게 설명한 걸 들었잖아."
"아니지, 아니야." 상위는 가슴에서 은 주전자 하나를 꺼내 입으로 송자주 두 모금을 머금었다. "네게는 다른 소문이 하나 더 있어. 누군가는 네가 해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더군."
해련은 상위의 이 칭찬을 들었을 때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눈동자는 되려 무엇엔가 찔린 것처럼 시선을 피했다. 그는 멀지 않은 곳의 투항하는 해군과 탄약을 여요호로 옮겨 담는 선원들을 보았다. 잠시 후, 청년은 그제야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말은 더 거짓말이야. 내 평생에 수많은 불행한 일이 있었는데 제일 첫 번째가 바다에서 일어났어."
그는 고개를 돌려 상대를 향해 조금은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나는 바다에서 어머니를 잃었어."
작말
아크 : 우상은 분신술 할 줄 알아요? 번개 부를 줄 알아요? 해저 이만리에 잠입할 수 있어요?
렌렌 :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설정이 왜 이렇게 환상적으로 변했지?
————설정 분할선————
남경 : 동주 굉조의 가혹한 상업 정책으로 대부분의 상인이 경영지를 자연환경이 우월한 티수국으로 옮겼는데, 이 면적이 그리 크지 않은 나라는 일약에 4황의 가장 큰 상업 중심지가 되었고 이런 황금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여 남륙을 독점했다. 이로 다른 접경국의 질투와 시기를 얻었고, 동주와 북막이 꺼리는 계기가 되었다.
티수 수도 구몽성은 바다에 인접해 있고 군도가 가림막이 되어 태풍조차 적다. 북막의 저명한 유랑자인 베굴라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술에 취해 깨지 않는 꿈나라"라고 했기 때문에 구몽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원작 > 해중작海中爵'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중작 - 39. 해적 장군 (0) | 2022.03.07 |
---|---|
해중작 - 38. 배우 (0) | 2022.03.04 |
해중작 - 36. 상위 (0) | 2022.02.23 |
해중작 - 35. 사귀만 (0) | 2022.02.19 |
해중작 - 34. 본색 (0) | 2022.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