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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해중작海中爵

해중작 - 42. 아버지와 딸

 

 

 

57.

오늘은 겨울에는 보기 드문 맑은 날이었고 눈에 닿는 해수면의 물결이 반짝였으며 오가는 흰 돛은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흘렀다. 마치 자신이 있는 곳이 피를 탐하는 해적의 둥지가 아닌 조용하고 편안한 항만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두 사람은 해안을 따라 한참을 걸었고 해련은 상대가 줄곧 마음 복잡해 보이는 모습에 아예 스스로 입을 열었다. "왜 날 불렀어? 길을 걷기만 하자는 건 아닐 거 아니야?"

상위가 입을 열었다. "이틀 뒤에 섬에 배가 하나 올 거야. 물건을 배송하러 온 건데 그때 페크나와 물건을 검사하러 갈 거야. 난 널 데려갈 생각이다."

"물건?"

"사귀만에서 위세를 부리는 모이인을 몰아내려면 어쨌든 뭔가 있어야 하잖아?" 상위가 말했다.

해련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젯밤 눈앞의 남자의 "사귀만을 없앤다"라고 했던 말을 그는 잊지 않았다. 청년의 손가락은 살짝 쥐어졌으나 여전히 변화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서 경호원 일 해달라는 거야? 문제 없지."

상위는 허허 웃었다.

두 사람은 순찰대를 피했고 상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말이 나와 말인데, 넌 어떻게 해적이 됐어?"

"나?" 해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쩌다 보니 된 거지. 해안에서 일을 쳐서 누구에게 쫓겨 죽을 뻔 해서 도망치다가 후이샤의 무리에 들어갔어. 그와 그의 패거리들이 날 습격하려 했고 내가 전부 패버렸지. 또 마침 갈 곳도 없어서 아예 따라가서 독벌호를 뺏었어."

"정말 젊구만 그래." 상위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도 상관 않는 바다로 뛰어가 떠도는 사람들은 돈 때문 아니면 다 나처럼 어쩔 수 없이 육지를 떠야 하는 사람들이야." 해련이 대답했다. "당신도 똑같은 거 아냐? 내가 듣기로 당신도 해안에서 군령을 어겨서 상위 노릇을 못 하게 됐다고 하던데."

상위가 엇 소리를 내었다. "밖에선 이 몸을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다들 그렇게 말해."

"그놈들이 헛소리 하는 거야. 나는 자발적으로 바다로 온 거지."

"자발적으로?"

상위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해수면을 바라보았다. 그는 해련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한숨을 쉬었다. "딸이 하나 있어."

"내 마누라는 일찍 죽어서 나한테는 딸 하나 밖에 없어. 딸이라곤 하지만 사실 사내놈 같아서, 산이고 들이고 싸돌아다니길 좋아했지." 상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만림성은 구몽성하고 달라서 원래도 외진 곳인데 평온하지도 않아. 그 시기는 마침 티수와 판스이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던 시기라 툭하면 판스이의 척후가 와서 기웃거렸지. 내가 딸아이를 몇 번이고 타일렀지만 그 애는 앞에서는 잘 대답해 놓고 고개를 돌리면 남들과 과일 따고 물고기 잡고 사냥하러 다녔어."

해련은 상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변경 마을의 소녀가 적국에 납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거라 생각했는데 상대는 여기까지 말하곤 갑자기 말을 돌렸다. "그래도 내가 그 애에게 호신술을 좀 가르쳐 주었고 그 아이도 경계심이 높아서 다행히 평안하게 다 큰 처녀가 될 수 있었지. 원래는 내 부하를 몇 명 소개시켜 주려고 했는데 , 다들 아주 좋은 녀석들이었는데도 그 애는 굳이 싫다고 하며 옆 마을의 대장장이를 마음에 들어 했어."

상위는 양 손으로 배를 두드렸다. 그가 한숨을 쉴 때는 늘 동작이 수반되었다. "그 아이는 줄곧 생각이 있는 아이였어. 나도 그 애가 하고 싶은 대로 두었고. 다행히 그 애가 좋아하는 놈을 나도 본 적이 있었는데 얼굴은 얌전하니 믿음직스럽고 집도 있었지. 비록 나이가 좀 많았지만 큰 일은 아니었지. 그냥 내 딸에게 잘 하면 됐어. 그 애가 시집가고 일 년이 되지 않아서 티수는 판스이와 전쟁이 일어났고."

"가양지전?" 해련은 어젯밤 그림자가 이런 단어를 말했던 것을 어렴풋하게 기억했다.

상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만림에 주둔했으니 자연히 최전선에 있었지. 부부는 뒤에서 안심하고 지내고 있었고 나는 내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손자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해련은 들으며 겨우 아침을 끝냈다. 그는 손가락 사이의 가루를 털었다. "그리고?"

"전쟁은 순조롭지 못했지." 상위가 말했다. "상대는 항상 우리의 행동보다 한 걸음 빨랐고 나는 누가 판스이와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해서 오솔길과 요새에 매복을 심었어. 이렇게 삼 일을 쭈그리고 있으니 역시나 네 명의 첩자를 잡을 수 있었지. 나는 그때 그 자리에 없었는데 내 부관이 갑자기 나더러 나가보라는 거야. 난 그제서야 포로수용소에 갔고. 내가 뭘 봤을 것 같냐?"

상위는 입을 벌리고 보기 흉한 웃음을 지었다. "내 잘난 사위를 본 거지."

해련은 깜짝 놀랐다.

"그는 나를 보자 살려달라고 했어. 처음에는 자기는 억울하고 우리가 사람을 잘못 잡아온 거라더군. 하지만 그의 신발 밑바닥에서 찾아낸 편지는 속일 수가 없지!" 남자의 얼굴의 살이 이를 악문 탓에 떨렸다. "채찍질을 두 번 맞은 뒤에는 있는대로 다 불었어. 처음부터 정보를 위해 내 딸에게 접근했다는 것뿐 아니라 자기가 판스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지, 심지어는 그가 판스이에 여자가 있어 그놈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지!"

"그리고 당신은……."

"그놈을 죽였지. 군령 판결 전에, 내가 그 놈을 죽였어." 남자는 허리춤의 패도를 쓰다듬었다. "해련, 내가 잘못한 것 같으냐?"

해련은 주저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

"하, 나도 내가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상위는 코를 비틀었다. "하지만 내 딸은 날 미워해. 그 애는 집에서 열흘을 기다리다 결국 견딜 수 없어지자 만림성에 소식을 알아보러 갔어. 막 성에 들어가자마자 게시판에 배반자의 처단 고지를 본 거지. 그 애는 기절했고 길가에 있던 마음 좋은 사람이 그애를 병원으로 데려다 줬어. 그애는 임신했어." 사내의 코를 비틀던 손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더니 눈을 비볐다. 건조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말을 반복했다. "그애는 날 미워해."

상대는 더 말하지 않았고 해련 역시 뒤에 일어났을 일을 알았다. 상위는 더 이상 자신의 승리를 나눌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가양고지에서 고향을 등질 것을 선택하고 기꺼이 바다 위에서 그 오랜 세월을 보낸 것이다. 해련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저 손을 뻗어 선장의 어깨를 두드릴 수밖에 없었는데, 되려 상위가 그의 손을 치웠다. "저리 꺼져, 난 아직 너 같은 어린 녀석에게 위로 받을 수준은 아니야."

꼬마 해적은 중얼거렸다. "금방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길래 그랬지."

"그건 이 몸이 어제 잠을 설쳐서 그래!" 상대는 아직도 고집스러운 말투였다.

해련 역시 이를 지적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왜 나한테 이런 걸 얘기해주는 거야?"

"아마도 네가 눈에 차서 그런가? 나한테 너 같은 아들이 있으면 좋겠다, 너 같은 거 말야!" 상위는 말하면서 스스로도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해련 역시 입꼬리를 올렸다.

상위는 점차 웃음을 멈추었다. 그는 다시 청년을 한 번 보더니 홀연히 말했다. "너 말이야, 만약…… 내가 형제들에게 어떤 사실을 숨기고 있다면, 그들이 그래도 나를 따르려 할까?"

이것이야말로 그가 오늘 특별히 해련을 불러 내어 묻고 싶었던 일이다. 이런 말은 그를 오랜 세월 따른 일등항해사에게는 할 수 없고, 그를 존경하고 숭배하는 동료들에게도 할 수 없었으나 되려 해련 같은 친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동료를 마주해야만 입을 열 수 있었다.

해련은 고개를 돌려 진지하게 생각했다. "난 여요호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어, 그건 내가 답할 수 없지. 하지만 다들 말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있어, 나도 있고." 그는 멈추었다가 이어지는 말은 살짝 힘을 주어 한 글자 한 단어 진지했다. "친구를 이용하거나 형제가 죽어가는 걸 보고도 구하지 않는 게 아니라면 숨긴 일은 모든 사람들이 신에게만 들려주는 비밀로 여기자."

이 말은 상위를 크게 감동하게 한 듯, 사내는 오랫동안 그 말을 되새기며 침묵을 지키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어투로 말했다. "됐어, 나 같이 칼 위의 피를 핥는 사람은 그런 허무맹랑한 신 같은 건 믿지 않아. 이 몸은 해신조차도 섬기지 않는다고!" 그는 해련을 주시하며 약속했다. "이 일이 끝나면 나는 이 일을 모두에게 알릴 거다."

"나한테도?"

"당연히 너도지."

"그 말이 있으면 충분해." 해련은 웃으며 대답했다.

시간도 꽤 지났고 두 사람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몇 마디 잡담을 나눈 뒤 해련이 여요호로 돌아가려 할 때 상위가 문득 그를 불러세웠다.

"해련!"

해련이 고개를 돌렸다.

"페크나를 조심해." 상위는 목소리를 낮추어 바닷바람이 해련 한 사람의 귀에만 전해줄 정도였다. "그가 곧 네 일에 대해 탐색하려 들지도 몰라."

청년은 깜짝 놀랐다. 첫 번째 반응은 어젯밤에 엿들었던 일이 페크나에게 발각되었나 하는 것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물었다. "무슨 일?"

"나도 무슨 일인지는 몰라, 아마도 그의 머릿속 가득한 그 보물과 관계가 있겠지." 상위는 손을 흔들었다. "어쨌든 조심하라는 거야. 난 네가 며칠은 더 여요호의 에이스가 되어 주길 바라니까."

해련은 상대의 충고에 감동하여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할게."

 

58.

상위가 말하던 배가 무명도에 이른 시간은 그의 예측보다도 삼 일이 늦었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화물선이었는데 윤해에 두면 해적들도 너무 말라 이빨에 끼지도 못한다고 싫어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작은 배에는 자연히 사람을 몇 명 싣지 못했는데 선장을 더해서 딱 스무 명이었다. 해련은 상위의 뒤에 서서 페크나 일행이 왜 이렇게 그들을 경계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맞은편의 선장은 선원들을 이끌고 갑판을 내렸고 서투른 남경말로 페크나에게 인사했다. "존함은 전해 들었습니다, 해적 장군 페크나."

"용식보에서 온 손님,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페크나는 상대에게 북모의 예를 행했다. "우리의 이번 거래 역시 잘 풀렸으면 좋겠군요."

선장은 웃더니 고개를 돌려 북모어로 선원들에게 몇 마디 지시했다. 수하들은 철 상자 하나를 페크나의 앞으로 끌고왔고, 선장은 다시 손을 들어 자신의 등 뒤의 사람을 가리켰다. "이번에 드리는 물건은 샘플일 뿐입니다. 도면이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쪽 일에 정통한 전문가를 데려왔지요."

전문가는 북모에서 유행하는 융단 옷깃의 로브를 입었고 땋은 머리의 은 장식이 어깨에 늘어뜨려져 움직일 때마다 흔들렸다. 외모를 보면 전형적인 말갈 사내였다. 그 역시 페크나를 향해 예를 취했고 짙은 수염 뒤로 얇은 입술이 미소를 띄었다. 그는 북모의 언어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페크나 선장님."

본래는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던 해련은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마침 그 "말갈인"의 별처럼 밝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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