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런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마음 깊은 한 쌍 같았다. 유부춘은 슬펐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심미를 알아보지 못했으나 진추명은 알아보았고, 그는 심미를 구하지 못했으나 진추명은 구했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소녀는 소년의 품에 기대어 있었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에는 그녀를 구해준 사람 뿐이었다. 그는 코를 삼키고 서글프게 생각했다. 그는 진추명만큼 대단치도 못하고 진추명만큼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는다고.
"그래." 여귀가 백리결명에게 말했다. "아내를 데리고 마음에 드는 관에 눕도록 해."
다른 사람들 "……."
백리결명은 사심미의 목 위의 붉은 손자국을 응시했고 안색은 더욱 흐려졌다. "저 귀 여편네가 한 거야?"
사심미는 가련하게 말했다. "저를 꼬집으면서 죽이겠다고 했어요. 사촌 언니가 증인이에요."
유청추는 눈을 흘겼다.
"야, 너희들." 백리결명은 물었다.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지?"
"네!" 원 씨 형제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나 대신 심미 좀 살펴 줘."
백리결명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본래 습윤하던 공기는 비할 바 없이 뜨겁고 건조해졌다. 백리결명은 한 걸음씩 걸어나가고, 유부춘은 놀라서 그가 밟은 진흙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며 풀이 재가 되어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남자는 이미 움직이는 화로가 되어 있었는데, 들끓는 숨결이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와 흰 연기가 되어 피어올랐다.
"이게 바로 선천화법이구나……." 원대가 중얼거렸다. "저번 종문대비에서 진 형님이 화법으로 서른 세 명을 연패했다고 들었어."
"포진산의 그 악귀도 선천화법을 할 줄 알았던 것으로 기억해." 원이가 말했다. "듣기로는 그가 죽기 직전에 세업금화洗业金火를 방출했다고 들었는데, 그건 화법 중에서 가장 강한 술법이라 포진산 정상을 온통 평지로 만들고 처음으로 몰아닥친 어른들과 형제들을 전부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대."
도道는 다섯으로 나뉘는데 그중 화법火法이 가장 강력하다. 이 술법은 지나치게 거세어 남 뿐아니라 자신도 다치게 했고, 세업금화는 악한 것을 쓸어내리지만 시술자를 바싹 태워버리기 때문에 화법의 술자들은 대부분 단명했다. 동시에 화법은 선천先天과 후천后天으로 나뉘는데, 선천의 불은 선천의 기운을 일으켜 술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화행의 경맥이 열려 거침없이 흘렀다.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그 천부적인 자질이 비할 바가 없어 큰 일을 해내며 선문백가를 거느리는데, 동문인 무도 대종사와 백리결명을 빼면 이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심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백리결명을 바라보았다.
여귀는 위험을 깨닫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주변의 강시들은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고 그들은 삼미진화로 새카맣게 타들어갔으나 이것 역시 그들의 행동을 약간 저지했을 뿐이다. 강시들은 쉰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관에서 기어나왔고, 절반은 백리결명을 향해, 나머지 절반은 사심미와 다른 사람들을 향해 기었다. 사심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검을 뽑았다. 그녀는 눈도 깜짝이지 않은 채 백리결명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이미 전투가 시작되었고 검은 유성우처럼 스쳐지나갔으나 그녀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 속에서는 그 남자의 타들어가는 뒷모습 뿐이었다.
여귀는 앞서 나왔고 그 몸은 수증기처럼 사라지더니 갑작스레 백리결명의 앞에 나타났고, 날카로운 손톱은 은선처럼 가느다란 빛줄기를 그리며 그의 목덜미를 베었다. 이것은 그녀가 자주 쓰는 수법이었는데, 그녀는 귀혼이므로 몸을 숨기고 드러내는 것이 자유로웠고 속도가 빨라 범인의 무거운 몸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손톱을 내뻗는 순간 허공은 텅 비었고 눈앞의 백리결명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마치 불타오르는 태양과 같은 작열하는 호흡이 등 뒤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두피가 저려왔고 등줄기에 닭살이 돋았다. 그녀는 이 남자의 속도가 그녀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폐물." 그는 냉담하게 중얼거렸다.
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정수리를 눌렀다. 순간, 마치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거대한 압력이 그녀의 몸을 내리눌렀다. 그녀는 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한순간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 사이에서 우득하는 마찰음이 들렸다. 이는 그녀가 진정으로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 백리결명에게 눌려 무릎이 부러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귀는 백리결명의 손바닥 아래에서 고통스레 비명을 질렀고 울음소리는 귀청이 떨어질 듯했다. 새카맣게 탄 강시들의 속도는 순식간에 두 배가 되어 일제히 백리결명을 둘러쌌다. 그러나 모든 강시들은 갑자기 멈춰서더니 그에게서 세 척 떨어진 곳에서 잿더미가 되었다. 사심미는 백리결명을 중심으로 세 척에 기막이 펼쳐지며, 기막에 닿은 모든 뼛골들이 순식간에 구릿빛 재가 되어 타버리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사심미는 눈을 내리깔고 먼 곳의 백리결명과 함께 이 술법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
"선천화법, 지살화地煞火."
절대적인 힘의 압박이 있어, 악귀와 강시에게는 더는 반격할 여지가 없었다. 금빛 찬란한 가루가 온 하늘에 휘날렸고 백리결명의 짙은 검은빛 그림자는 금빛 빗줄기의 가운데 서 있어 그들보다 더욱 수라악귀 같았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여귀의 머리를 눌렀고, 머리통 역시 녹아내려 고온은 그녀의 골육을 새까만 잿더미로 태웠다.
"너…… 너 대체 뭐야?" 여귀는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면 상처 탓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듣기 힘들어 다른 사람 같았다.
재가 그녀의 입술에 가득 차, 그녀는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말했지." 백리결명의 눈동자에 핏빛이 어른거렸다. "내가 네 아버지라고."
그의 손바닥에 눌려 피와 살은 빠르게 증발했고 여귀의 무릎 아래 삼 척의 땅은 초토가 되었다.
여귀가 잿더미가 되었고 귀역 역시 무너졌다. 선문 사람들은 곤산에 큰 불이 난 것을 알아차리고 뒤늦게 기어왔고 그 김에 여귀를 봉인했다. 곤산 여귀의 도행은 괴이하여 선문 사람들은 문서를 써서 종족에게 보고했고, 이 일은 장기적으로 살펴야 했다.
듣자하니 선문 이 바보들은 곤산에서 유부춘 일행을 삼 일 밤낮으로 찾았으나 이 황산의 마을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귀 여편네의 귀역에는 은닉하는 술법이 없었는데 그들이 찾지 못한 것이다. 백리결명은 혀를 찼다. 선문은 역시 한 세대가 그 전 세대만 못하다.
뒤수습은 순서에 따라 진행되었는데 유 씨 집안에서는 사람을 보내 마을의 귀혼을 제도했다. 그들과 같은 후배들은 마을 밖에서 쉬었는데 웅웅 경을 읊는 소리가 마을에서 들려왔으며 금빛이 여기저기에서 반짝였다. 유 씨 집안 오누이와 원 씨 집안 형제는 어른들에게 붙잡혀 신체 검사를 당했는데, 그들을 향해 경을 읊어 사악한 기운을 내쫓았다고 했다.
백리결명은 오른손을 쥐었다. 술법이 지나쳐 손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며 흐릿하게 창백한 뼈를 볼 수 있었다. 육판연심이 없으니 그는 스스로 회복할 방법이 없었고, 이 육신이 언제까지 버텨줄지도 알 수 없었다. 천을 찢어 오른손을 감싸고 고개를 돌려 머물던 곳을 보니, 사심미가 발목에 두꺼운 붕대를 감은 채 홀로 나무 상자 위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 개자식들, 자기네 집안 식구들만 챙길 줄을 알고 심미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유청추 같은 겁쟁이들은 사악한 기운을 내쫓고, 그의 심미는 어쩌라는 것인가? 자세히 살피니 사심미는 사람들의 냉대에 익숙해진 듯 홀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석양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고 조용하고 평온한 모습은 마치 저녁 바람 속의 쑥꽃 같았다.
그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착한 아가씨가, 가슴이 조금 평평하고 키가 조금 크고 몸무게가 조금 무거운 걸 빼면 어딜 선문의 화병들과 비할 수 있겠는가? 화병으로 따지자면 그의 심미는 화병 중의 일류였다. 그가 다가가려는데 원대와 원이가 어느 틈엔가 나타나 그에게 공손하게 절을 했다. "이번에 진 대공자께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제 떠나려 합니다. 진 대공자께서 시간이 나시면 유군에 오셔서 손님이 되어 주십시오!"
그는 대충 얼버무리며 그들과 작별했다.
원이가 떠날 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미 낭자를 데려가려면 유 씨 부인의 관문은 넘기 어려우실 겁니다. 진 형님, 조심하세요."
"알겠다." 백리결명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또 눈치 없는 것들 몇 명이 와서 그를 귀찮게 했는데 대부분은 그의 선천화법에 대해 알아내려 하며 그를 자신의 집안 문하생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개가 웃을 일이다. 그는 그들 집안의 조상이 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데 그들의 제자가 되라니? 그는 불쾌한 낯으로 전부 쫓아냈고 그제서야 사심미의 곁에 웅크리고 앉아 대수롭지 않은 듯 물어볼 틈이 생겼다. "발은 어때?"
"괜찮아요." 사심미는 미소지었다. "진 오라버니, 정말 대단하세요. 한 번에 귀낭자를 제압하시다니요."
"누워서 떡 먹기지." 백리결명은 자신만만하게 팔짱을 꼈다. "내가 누군데. 그 머리 빈 귀 여편네는 내 요강을 들기에도 부족하지."
그는 줄곧 이런 성격으로, 칭찬이라도 한 마디 들으면 꼬리가 하늘로 치켜 올라가 기어코 욕을 먹었다. 아마도 떠받들어지는 생활을 너무 오래 한 탓에 성격 역시 거만해졌다. 사심미는 미소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진 오라버니는 저를 탓하실 건가요? 당시에 심미가 마음이 급하여 진 오라버니가 제 낭군이라고 했어요."
백리결명은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 내가 네 할아버지라고 해도 된다."
"……." 사심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벼이 웃었다. "진 오라버니는 정말 제가 아는 분을 닮았어요. 하는 말과 행동 모두 다요."
백리결명은 멈칫하여 나지막하게 "응." 하고 말했다.
"네가 개의치 않는다면……." 그가 말했다. "나를 그 사람으로 여겨도 돼."
"그래도 될까요?" 사심미는 매우 놀란 것 같았다.
"그럼." 백리결명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진 오라버니가 저를 업고 마차에 타세요, 집에 가요." 사심미는 먼 곳의 새까만 마차를 가리켰다. 선문 사람들이 그 위로 짐을 옮기고 있었다.
"내가 부축해주마." 백리결명은 일어났다.
"안 돼요." 사심미는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그분이셨다면 분명 제가 걷는 것을 안타까워 하시며 업어주셨을 거예요."
무슨 헛소리람. 백리결명은 말을 잃었다. 만약 그였다면 그는 이 계집아이의 옷깃을 쥐고 끌고 갔을 것이다. 다 응석을 받아준 탓이다. 어렸을 적보다 더욱 제멋대로다.
사심미는 그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실망한 듯 시선을 흘렸다. "진 오라버니는 역시 그분이 아니네요."
그녀는 매우 슬퍼 보였고 눈꼬리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백리결명은 어쩔 수가 없어 자포자기하며 쭈그려 앉았다. "그래, 그래. 올라와. 업어주마."
막 쭈그리고 앉는데, 유청추가 검을 안고 마차 옆에서 그를 향해 소리를 쳤다. "진 씨야, 네가 우리를 구해준 걸 봐서 우리 어머니가 너더러 고소에 며칠 머무르게 해주신대." 말하며 코웃음을 쳤다. "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조금도 환영하지 않으니까."
사심미는 그의 등 뒤로 올랐고 그의 어깨를 쥔 손가락이 조여지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진 오라버니……."
이렇게 나약하고 겁에 질린 목소리라니. 이 팔 년 간 유 씨 집안에서 얼마나 많은 억울한 일을 겪었을까. 그가 어떻게 그녀를 내버려두고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백리결명은 이를 악물고 그녀를 업었다. "갈 거야! 당연히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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