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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미언靡言

제1장 - 신이 아니고서는 건드릴 수 없다


 
자동차는 흔들거렸고 나는 잠에 빠져 몽롱했다. 꿈을 꾸는 듯 같기도 깨어난 것 같기도 한 사이에 정신은 알록달록한 풍경 속을 도약하여 직전까지는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다음 순간에는 달의 표면에 이르렀다.
그 다음 순간, 겨울과 여름이 교차되고 나는 산문 앞에 서서 머리 위 편액의 수려하고 의미 깊은 "격죽사击竹寺" 세 글자를 바라보고 있었고 귓가에는 절의 비구니들의 목소리가 뒤얽혔다.
그 목소리는 나이가 어리기도, 들었기도 했고 성조는 느리기도, 빠르기도 했으나 모두 딱딱하고 차갑게 한 마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현단 사태(悬檀师太)께서는 손님을 만나지 않으시니 시주는 돌아가십시오."
향엄 격죽(*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03593&cid=40942&categoryId=31544)에서 말하길,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격죽사는 이렇게 지어진 이름이다.
내가 여덟 살이던 해 장쉬에한江雪寒은 홍진을 꿰뚫어보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그녀는 다시는 어머니도, 딸도 아니라 격죽사의 평범한 출가인이었다.
나는 진작부터 희망을 품지 않았기에 무표정하게 몸을 돌렸고 눈 깜빡할 사이에 11살이던 그 해의 겨울방학으로 되돌아갔다.
그해 겨울방학, 나는 옌추원严初文 부자를 따라 먼 길을 떠났고 이리저리 떠돌다 꼬박 이틀을 걸려 창란설산의 산허리의 착암숭厝岩崧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햇빛이 눈부시고 하늘은 파랬으며 집 벽은 우유를 바른 듯 희었고 사람들은 하인夏人과 완전히 다른 이상한 장포를 입었으며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로 이야기를 했다.
옌추원의 아버지는 민족대학의 교수로 줄곧 민속문화 연구에 힘써왔다. 그해 그가 학생들을 데리고 천리길을 마다 않고 착암숭에 가 연구할 적에 주지사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주지사는 비단 직접 마중을 나왔을 뿐 아니라 심지어 특별히 사람을 보내 우리더러 착암숭 치하의 층록족层禄族 마을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연구원들에게 있어 이는 층록족이라는 소수 민족을 이해할 수 있는 얻기 어려운 기회였으니 자연히 소중히 여겼다. 사람들은 한 군데 모여 남의 집 문 위에 붙은 스티커만 가지고도 반나절은 떠들 수 있었다.
옌추원은 어렸을 적부터 보고 들은 게 많아 이런 것들을 꽤 좋아하여 흥미진진해 했다. 하지만 나는 민속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어 듣고 있으니 머리가 아파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 틈을 타 아예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마을을 헤집고 다녔다.
우리를 데리고 다니던 안내인은 바로 그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어설픈 하어夏語로 이 마을이 "펑거棚葛"라고 하는데 이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뜻이며 착암숭에서 가장 큰 층록족 촌락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촌락의 가장 높은 곳에는 흰 벽에 금빛 기와를 두른 건축물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의 "사슴왕묘"이며 신을 모시는 "언관"이 대대로 그곳에 살고 있었다.
옌 교수는 언관에 관심이 많아 상대를 만나 간단한 인터뷰를 하길 바랐다. 하지만 안내인은 신앙 깊은 층록인으로 우리를 데리고 마을을 구경시켜 주는 것은 괜찮았으나 멋대로 외부인을 데려가 언관의 정숙을 깨지는 못했다. 옌 교수는 몇 번이고 시도했으나 매번 같은 대답을 듣자 아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적의 나는 약간의 반항심이 있어 못 가게 하면 할수록 더욱 가고 싶어 했다. 비틀비틀 나는 그 길고 긴 계단을 올랐다.
마을 전체가 산 위에 지어져 있고 위쪽으로 층층이 경사가 져 있으며, 산 정상에는 건물이 하나뿐이다. 바로 신전(절)이 있는 곳이다.
대문은 열려 있었고 정원은 조용하여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망설이다가 발을 들어 전 안으로 들어갔다.
호기심에 사방을 둘러보며 나는 높은 건물을 따라 걸었고, 마음속으로 그것과 격죽사의 다른 점을 찾고 있는데 귓가에 갑자기 어떤 묵직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짝! 짝!"
소리가 괴이하여 나는 몰래 소리가 나는 후원 쪽으로 걸어 갔다. 모퉁이 하나를 돌자 후원의 높은 측백나무 아래 꿇어앉아 있는 이와 서 있는 이 두 그림자가 보였다.
서 있는 사람은 흰색 장포를 입고 있었고 사십 대로 보였다. 볼은 앙상하고 얼굴에는 노기가 가득했으며 손에는 거칠고 긴 등나무 줄기를 들고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년의 등을 한 번씩 내려치고 있었다.
소년은 나와 비슷한 나이였는데 피부는 눈처럼 희었고 이목구비는 짙어 하인 같지 않았다. 추운 겨울에 홑옷만 입고 있었으며 두 눈은 굳게 닫혀 있었고 이를 악문 채 끊어지지 않는 채찍질을 견디며 이마와 코끝에 땀이 스며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가 고집을 부릴수록 중년 사내의 얼굴은 서늘해졌고 사내는 화난 목소리로 무언가 욕을 하더니 다시 채찍질을 퍼부었다.
소년은 허리가 꺾여 양 손으로 바닥을 짚었고 거의 맞아서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나는 현지에서 나고 자란 도시 아이로 새로운 시대의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평등과 자유의 이념을 실천하였는데 언제 이런 것을 본 적이 있었겠는가? 나는 참지 못하고 숨을 삼키곤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바로 그 때, 소년은 무언가 느낀 것처럼 번쩍 눈을 들어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는, 참기 어려운 고통이 있었으나 또한 비할 바 없이 흉악하여 마치 실수로 함정에 빠진 어린 늑대와 같았다. 설령 열세에 빠져 중상을 입었더라도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로 자신을 무장하여 다른 사람이 그를 얕보지 못하게 하는.
나는 그 검게 가라앉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쳤고, 눈 깜짝하는 사이 문득 깨어났다.
주위의 어디가 신비로운 층록족의 신전인가? 이곳은 분명 옌추원의 낡은 픽업 트럭 안이었다.
나는 아직 멍했고 옌추원은 차를 몰며 마침 큰 구덩이 하나를 지났고 픽업트럭은 덜컹거렸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다 해도 엉덩이와 좌석은 적어도 2초는 떨어져 있었다.
어쩐지 롤러코스터 꿈을 꿨더라니…….
나는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조용히 위쪽의 손잡이를 쥐었다.
"내가 괜한 소리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DJ 곡을 하나 틀면 우리가 일어나지 않아도 노래 끝날 때까지 펄떡펄떡 뛸 수 있다면 믿겠어?" 나는 시간을 보았다. 옌추원은 샨난 공항에서 펑거까지 두 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지금은 겨우 절반을 온 것이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계속 이 길이야?"
옌추원은 틈을 봐 나를 힐끗 보았다. "깼어? 작은 동네는 이렇지. 하이청海城하고 비교할 수 있겠나.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나아. 우리 어릴 때 왔던 거 기억 나? 길은 더 안 좋았고, 봉고차에서 하루종일 흔들거리니 사람들 중 절반이 다 토했지."
나는 창 밖 도로 양측의 황회색 산암을 바라보았고 목소리에는 졸음기가 어렸다. "잊어버렸어."
옌추원은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여기로 오라고 했을 때는 머리가 아프다느니 출국해야된다느니 그래서, 난 네가 어렸을 적에 하도 흔들려서 트라우마가 생겨 여길 싫어하는 줄 알았어. 네가 온다고 하곤 정말 올 줄은 몰랐어, 이렇게 갑자기 말이야."
나는 한참을 침묵했고 결국에는 그에게 진짜 이유를 말하기 부끄러워 그저 오래 쉬지 못해 자신에게 긴 휴가를 주고 싶다고만 말했다.
옌추원은 웨이보 계정도 없는 사람이고 쇼츠는 더욱 보지 않으니 쉽게 나를 믿고 더 추궁하지 않았다.
하이청에서 샨난으로 가는 항공편은 적었고 나는 급하게 예약한 탓에 아침 9시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여섯 시에 알람이 울렸고 나는 여섯 시 반까지 발버둥치다 스스로에게 시럽 없는 아메리카노를 때려 붓고 나서야 짐을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 이후 비행기에서 나는 짙은 수면욕과 혈액 속의 카페인의 협공으로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며 푹 쉬지 못했다.
어렵사리 펑거에 도착하자 옌추원은 픽업드럭을 민속연구원 밖에 세웠고 나는 자신의 짐을 끌었다. 머릿속에는 빨리 들어가 누워 자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옌추원은 열정이 넘쳐 입구의 "층록 민속 연구원" 편액부터 시작하여 걸음마다 설명이 이어져 듣던 나는 얼굴이 잿빛이 되어 갔고 머릿속은 갈수록 혼미해졌다.
"여기는 지금 나하고 여자 후배하고 둘 뿐이야, 하루 세 번 우리가 고용한 마을의 아주머니가 식사를 해 주실 건데, 작은 동네다 보니 물자가 부족하고 요리도 간단한 것들이야. 네가 이해해……."
정원의 담벽은 회색 돌로 쌓여 있었는데 1미터 정도 높이였고 구석에는 기둥이 있어 굵고 튼튼한 등나무 덩굴이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한겨울이라 식물은 진작 휴면하여 마른 가지만 보이고 잎은 볼 수 없었다.
정원에는 누렁개가 한 마리 엎드려 있었는데 옌추원의 후배인 궈메이가 데려온 것이었다. 그녀가 마을 사람들의 집을 방문했을 대 그 집에서 기르던 개가 강아지들을 낳았는데 다들 동글동글 귀여웠다. 마을 사람이 그녀가 개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억지로 한 마리 준 것이다.
"이전二钱이라고 해." 옌추원은 태양 아래 나른하게 귀를 늘어뜨리고 있는 강아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원래는 이 이름이 아니었는데 삼 개월 되던 때 우리가 못 본 틈을 타서 탁자 위에 궈메이가 두었던 동전 2마오를 삼켰고 우리가 그 이후 이틀 간 이물이 나오지 않는지 녀석의 분변을 살펴봐야 했어. 그 이후로 이 녀석 이름을 '이전'으로 바꾸어 거울로 삼은 거지."
옌추원은 소개를 이어가며 나를 이층으로 이끌더니 가장자리의 방 안으로 나를 들여보냈다.
"일단 쉬고 있어." 옌추원은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따 좀 둘러볼래?"
내가 완곡하게 거절하려던 때 상대가 말을 잇는 것을 들었다. "여기서 신전이 멀지 않은데 가보고 싶으면 걸어갈 수 있어."
나는 입술을 오므리고 생각했던 말을 삼켰다.
"그래, 오 분만 기다려."
나는 빠르게 찬물로 세수하고 거울을 마주보고 머리카락을 만졌다. 머리를 잘 정리한 뒤 아래층에서 옌추원과 만나 산 정상의 신전까지 걸어갔다.
펑거는 깊은 산 속에 위치해 있고 해발이 높은 지역이라 원래도 하이청보다 추웠다. 나는 목도리를 두르고 두꺼운 패딩을 입었지만 바깥으로 드러난 피부는 여전히 얼어붙어 아팠다.
"때 맞춰 잘 왔어. 며칠 뒤면 동풍절이야. 여기 사슴왕 탄신일을 빼면 두 번째로 큰 명절이지. 내년에 날씨가 좋고 오곡이 풍성하길 비는 거야. 그때가 되면 신전 앞에서 죽을 나눠주니 가서 구경해도 좋아."
"먹으면 장수할 수 있는 거야 아니면 만병이 낫는 거야?" 흰 안개가 잇새로 퍼지고 나는 추워서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 안 돼, 그냥 운이나 좋아져라 하는 거야." 옌추원이 가볍게 웃었다.
예전의 착암숭은 교통이 불편하고 가난하며 폐쇄된 곳이라 주 내에 하인이 적었다. 최근 몇 년 정부의 대대적인 빈곤 구제 사업에 따라 길을 닦고 인터넷이 깔리고 관광이 발전했다. 비록 한겨울에 이곳에 오는 하인은 여전히 적었지만 층록인의 놀라움을 이끌어 낼 정도는 아니었다.
가슴 앞에 각종 구슬 장신구를 달고 검은색 층록족 복장을 한 젊은 여성 두 명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옌추원과 아는 사이인 듯 지나갈 때 가볍게 미소지으며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한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그들은 머리에는 두꺼운 검은 망토를 두르고 양쪽으로 길게 나온 천이 목도리처럼 목을 감싸고 뒤로 넘겼는데 걸을 때마다 끝에 묶인 은방울이 가벼운 소리를 내었다.
"층록인은 정식적인 장소일 때나 검은색 혹은 암홍색의 장포를 입어. 머리에 쓴 저건 전개毡盖인데 보온과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보통 겨울에만 써." 옌추원은 나서서 설명했다. "이런 장포는 소매나 옷자락과 밑단에 가늘고 좁은 색이 있는 장신구를 다는데 아홉가지 색의 사슴의 아홉가지 색깔을 상징하는 거야."
"허리띠는 보통 옷이랑 별개로 랜덤으로 매치할 수 있어. 난 마노와 밀랍, 산호가 가득 박힌 꽃무늬 벨트를 본 적 있는데 받았을 때 가까이 보지도 못하겠더라, 숨을 크게 쉬면 긁히기라도 할까봐."
많은 소수민족처럼 층록족 역시 자신의 신앙이 있다. 그들의 신앙은 창란설산의 산신인데 위험에서 창생을 구한 아홉 빛깔 사슴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고 사슴왕묘의 금빛 꼭대기가 태양빛 아래에서 유달리 시선을 사로잡았다.
"신전에 가야 해서 이렇게 정식으로 꾸민 거야?"
옌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은 그렇지."
나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패딩과 청바지 조합을 훑어보며 속으로 내가 상당히 예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민속연구원에서 신전까지 비록 몇백 미터에 불과하지만 천여 개의 계단이 있고 피로에 아직 높은 해발에 적응하지 못한 것까지 겹쳐 나는 걷다 서기를 반복했다. 산 정상에 이르렀을 때 심장이 입에서 튀어나올 정도였다.
"괜찮아?" 옌추원은 겉보기에는 나약해보이나 체력은 놀라울 정도라 지금 순간에도 호흡은 평온하여 마치 곧바로 마라톤을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무릎을 짚고 잠시 쉬다고 목도리를 살짝 풀었다.
"괜찮아, 어쨌든…… 난 최근 이 년 간 산을 꽤 탔었으니까."
"설렁설렁 해." 옌추원은 신전 쪽을 보았고 어조는 조금 감탄스러웠다. "눈깜짝 할 새 대학 졸업한 지 이렇게 오래 됐네. 바이인柏胤, 너 그거 알지. 지금 층록의 언관은 모추안摩川이야."
나는 멈칫했고 무릎을 짚은 자세를 유지하며 그를 바라본 채 조용히 그가 말을 마치길 기다렸다.
"모추안은 그의 속세 이름이야. 지금은 그렇게 부르면 안 돼. 다른 사람들처럼 '빈가频伽'라고 불러야 해. 기억해 둬." 옌추원은 당부했다.
가릉빈가, 불국의 묘음조로 전해지며 목소리가 아름답고 듣기 좋아 아무도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층록족에게는 이 묘음조가 전음조가 되어 "언관"의 직책을 부여 받으며 평생 신령을 섬기고 부족 사람들을 대신하여 산군에게 소원을 전한다.
나는 입꼬리를 잡아당기고 몸을 일으켰다. "알겠어."
우리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고 주전 계단 아래에 서 있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보였다. 그들은 아마 젊은 부부 같았는데 방금 보았던 두 명의 여성과 비슷한 암홍색 장포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아직 포대기에 싸인 아이를 안고 있었다.
어머니는 손을 들어 아이를 조심스레 계단 위의 사람에게 건넸고 내 시선 역시 따라 움직였다.
은백색 장포의 양측의 어깨의 아홉 빛깔 빗방울 모양이 수놓아진 넓은 띠가 바람에 따라 가벼이 흔들렸고 몸 뒤로 드리워진 전개의 끝에 휘감겨 은방울이 흔들리는 소리가났다. 사용한 재료가 다른 탓인지 나는 아까 층록족 여자아이들의 방울 소리보다 더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흰 장포는 깨끗하고 햇빛 아래에서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으려니 살짝 눈이 아플 정도였다. 그 사람은 흰 장포 같은 깨끗한 두 손을 뻗어 아이를 받았고 전개 아래로 가려진 얼굴을 숙였다. 그는 마주한 품속의 아이를 향해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천천히 몸을 숙여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신생아에게 복을 내리는 거야." 옌추원은 앞으로 나가려다 내게 붙잡혀 먼 곳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 장포의 사내는 아이를 어머니에게 돌려주었고 얼핏 우리를 발견하곤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직업적인 원인으로 나 역시 적지 않은 패션계의 활동이나 명사들의 저녁 식사자리를 참석하여 잘생긴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 가운데에는 연예계에서 핫하다는 미인도 적지 않았으나 모두 눈앞의 얼굴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전개 아래의 얼굴을 본다면 누구나 상대의 아름다움에 경탄할 것이다.
이러한 성별을 초월한 아름다움의 일부는 그의 외모에서 온 것이고 또 다른 부분은 그의 몸의 미묘한 "신성"에서 온 것이다.
차갑게 흰 피부에 극히 아름다운 이목구비까지 더해져 본래도 요야해 보였으나 그의 전신의 금욕적인 느낌과 신중한 기질이 더해지자 이는 모독할 수 없는 성결함이 되었고 마치…… 설산에 가득 피어난 모란꽃 같았다. 신이 아니고서는 건드릴 수 없고 성현이 아니고서는 다가갈 수 없는 것 같다.
옌추원을 보았을 때 "설령 모란"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나 시선이 내 쪽으로 옮겨왔을 때 뚝 멈추더니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간을 찌푸렸다.
세월은 흐르고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다. 칠 년이 지났고 나는 세상을 한 바퀴 돌고 돌아와 세계도 변했으나 유일하게 이 층록족 신자의 나에 대한 혐오만이 변하지 않은 것 같다.
"하이! 오래간만이야." 나는 손을 흔들며 상대를 향해 시원스레 인사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담담히 시선을 거두곤 앞쪽의 사람에게 미소지으며 무언가 말하곤 부부가 몸을 돌려 떠나자 계단에서 내려와 나와 옌추원을 향해 걸어왔다.
 
 
작말
바이인 柏胤 (bǎi yìn)
빈가 频伽(pín jiā)(*가릉빈가라는 단어가 있어서 빈가로 표기합니다.)
향엄격죽: 한 불교전고로 향엄사의 지한선사가 기와와 자갈로 대나무를 때리는 소리를 통해 갑자기 도를 깨달았다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