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작/판관判官

나무 동자 - 8. 서랍(抽屉)

 
눈알이 반지르르한 인형 말고도 거울 안에는 시에원의 그림자도 있었다.
그 모습은 무척 흐릿했고, 이목구비는 물론이고 긴 머리인지 짧은 머리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마치 키가 크고 창백한 사람이 어느 무척 가깝고도 아주 먼 곳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 한 순간 원스는 그 장면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다고 느꼈다.
 
그는 그런 사람을 본 것 같았다. 맨발로 어렴풋한 하늘 빛 아래 서 있으며, 발치 아래의 굽이치는 핏물을 내려다보며 눈처럼 희고 성긴 의포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떠올렸다. 그것은 오랜 세월 전 어느 필사본에서 본 것이었고, 혹은 어느 오래된 그림에서 본 장면일 수도 있었다. 시간이 너무 오래 되자 기억이 혼란스러워졌다.
 
"똑똑똑."
거울에서 손가락이 부딪히는 가벼운 소리가 세 번 울렸다.
원스는 눈을 깜빡이고 순간 정신을 차렸다.
 
거울 속, 시에원의 흐릿한 그림자가 허리를 굽히고 그의 맞은편의 그에게는 너무 작은 인형을 바라보며 물었다."말 안 해? 진짜 화났어?"
원스 "똑바로 서서 말해."
시에원 "똑바로 서면 높이가 너무 차이나서 너희 둘의 목이 지칠 거고, 내 눈도 지칠 텐데."
원스 "……."
이 망할 놈이 차별 대우를 하지 않았다면 높이도 이렇게 차이가 날 필요가 없었고, 모두 지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차갑게 시에원의 다리를 바라보았고 자신이 오늘 성질이 유난히 더럽다고 생각했다. 천 년의 수행이 다 이 사람 손에서 박살이 났다.
 
시에원은 여전히 그 이성적으로 말한다는 어조였다. "일부러 너희를 놀린 게 아니야, 이 집에는 내놓아진 사진도 없고 거울도 적어. 화장실에 하나, 여기 하나, 그리고 노인의 침대 머리맡에 작은 게 하나가 있지. 다 거울에 들어간다면 활동 범위가 안타까울 정도로 작잖아."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또 웃었다. "그때가 되면 아무 것도 안 보일 텐데, 또 날 탓하지 않겠어?"
 
샤챠오는 공포 속에서 정신을 차리며 맞장구 쳤다. "맞아요, 말이 되네요."
원스 "……."
 
그는 고개를 돌려 이 앞뒤 구분을 못하는 바보에게 경고해주려 했으나 인형이 "고개를 돌린다"는 동작을 한다는 것은, 전신을 비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샤챠오는 그가 몸을 돌리자 굳어지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 형, 그 자세 좀 귀여워요."
 
거울 속의 사람은 아마 사레가 들렸는지 기침을 시작했다.
원스는 눈을 감고 속으로 이 두 멍청이를 계속 상대하면 성을 간다고 생각했다. 
 
그가 무시하자 거실은 조용해졌다.
샤챠오는 방금까지는 분위기가 가볍다고 생각하여 조금도 무섭지 않았는데 이렇게 몇 초 조용해지자 그 소리 없는 공포감이 다시 등을 타고 기어올랐다.
 
원스 인형은 노인의 문 앞에 기대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거울 속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고 그렇게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너무 키가 컸기 때문에 샤챠오의 각도에서는 심지어 서 있는 게 아니라 목을 메단 것 같아 보였다.
 
샤챠오는 문득 일종의 착각이 들었는데, 마치 원스와 시에원이 애당초 여기 있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혼자만 있는 것 같았다. 문가의 인형은 그가 꺼낸 것으로 생명이 없었다. 거울 안에 있는 것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백의가 땅에 끌렸으며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저건 시에원이다, 저건 시에원이다, 저건 시에원이다.", "그는 원 형을 보고 있는 거지 내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한참 후 그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는데, 거울 속의 사람과 시선을 마주쳤다.
 
원스는 멜빵 바지에서 실 두 줄을 잡아당겨 손에 감고 실로 문을 열려 하고 있었다.
인형의 움직임은 정말 통제하기가 어려워 그는 얼마간 시간을 썼고, 막 잠금을 열었을 때 샤챠오가 무척 작은 소리로 흐느끼는 것이 들렸다.
원스 "……."
 
그는 조금 머리가 아파져, 참고 참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또 왜?"
샤챠오는 자기가 상상으로 놀랐다는 말을 하기 민망하여 얼버무렸다. "제, 제가 어렸을 때 꿨던 악몽을 떠올렸어요, 거기도 인형과 거울이 있었거든요."
원스 "……."
 
그는 이런 스타일의 악몽은 꾼 적이 없고, 꼬마를 위로할 인내심도 없었다. 그는 실을 손에 한 바퀴 감고 꼭 묶은 후 가볍게 당기자 오래된 방문이 "끼익"하며 열렸다.
 
"쉿." 원스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샤챠오는 겁을 먹으면서도 말을 들어 입을 다물었고, 훌쩍이는 소리까지 사라졌다.
 
원스는 뒷짐을 지고 손짓했고, 방 안을 들여다 보았다.
 
인형의 시야는 낮아서 문 안으로 들어가도 방 전체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저 마찬가지로 낡은 침대가 보였는데, 침대 위는 불룩하여 노인이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문 쪽으로는 협탁이 하나 있었는데 시에원이 말했던 것처럼 장 위에 타원형의 거울이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90년대 초기 유행했던 것이었다.
  
원스는 문을 받치고 곁눈질로 그 둥근 거울 속에 있는 얼굴을 힐끗 보았다. 시에원이 들어온 것 같았다.
 
그는 시선에 민감하여 비록 시에원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거울 속의 시에원이 방 안쪽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안쪽?
안쪽에 뭐가 있지?
원스는 그 방향을 바라보았으나 침대가 대부분의 시야를 가려 그는 한 구석만 볼 수 있었다—— 그쪽에는 창가 쪽의 오래 된 책장이 있었는데, 양쪽으로 서랍이 있는 것으로, 서랍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원스는 다리를 들어 그쪽으로 가 만지려 했다. 샤챠오는 뒤에서 그를 붙잡았다.
"왜?" 원스가 작게 물었다.
"들어가려고요?" 샤챠오는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저 숨소리만 내어 이렇게 중얼거렸다.
"자물쇠가 있어."
"자물쇠가 있는 게 왜요?"  
"농에서는 잠금이 걸려 있는 건 분명 중요한 거야." 원스가 말했다.
"왜요?"
"왜냐하면 여기는 농주의 잠재 의식이고, 잠재의식 속에서 숨기는 것을 잊지 않는 물건인데, 어떨 것 같은데?" 원스는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대부분 잠금이 있는 것을 찾으면 농을 푸는 것解笼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원스는 침대 끝을 따라 조용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마침내 인형의 좋은 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고 넘어지거나 부딪혀도 다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몸이 부드럽기 때문에 발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는 기분이 많이 괜찮아졌고, 시에원의 그 말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탁자 앞에 다다르기 전 원스는 손 안의 실을 움직였다.
실이 대단한 괴사(*괴술의 술사)의 손에 들어가면 오직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원스는 지금 효과가 덜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은 도구였다.
 
선의 다른 쪽 끝이 자물쇠가 감겼고 원스가 다시 실을 당기자 그 끝이 자물쇠의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마침내 책장 앞으로 가 잠금을 떼어낼 준비가 되었을 때, 시야 끝에 책장 근처의 그림자를 보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방에는 커튼이 열려 있었고 바깥의 어둑한 푸른 달빛이 비스듬히 비쳐 들어왔다. 원스의 곁에는 몇 개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책장, 창의 판유리, 그와 샤챠오 두 명의 천 인형…….
그러면 늘어난 것은 누구의 것인가?
 
원스는 급히 고개를 들었고, 어린 남자 아이가 무표정하게 옆에 서서 손에는 송곳 한 자루를 높이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송곳은 오후에는 거실의 팔선상에 놓여 있던 것으로 원래는 나무 인형에 구멍을 내는 것으로 괴사의 말로 표현하자면 구영추勾灵锥라고 불렸다. 그 날카로운 끝은 사람을 구멍내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남자 아이의 새까맣고 텅 빈 눈동자는 꼼짝도 하지않고 원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송곳은 드높이 들려 가장 날카로운 곳은 원스의 눈을 향하고 있었다.
 
그 송곳이 떨어지는 순간 원스는 손에 꾹 쥐고 있던 끈을 급히 당겼다.
 
"퍽——" 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 갑자기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아이의 주의력은 분산되어 눈알이 천천히 돌더니 침대 머리맡을 바라보았다.
 
이와 동시에 원스의 손 안의 끈이 구리 자물쇠까지 엮인 채 휘둘러져 아이의 등을 세게 쳤다. 아이는 끙끙거리더니 눈동자가 풀어졌고, 그대로 바닥으로 엎어졌으나 곧 몸을 일으켰다.
 
원스는 다른 것을 살필 수 없어 샤챠오를 밀며 낮게 말했다. "뛰어!"
그 스스로는 위험한 길을 돌아 노인의 침대 위로 뛰어 올랐다. 어린 아이는 그에 대한 흥미가 더욱 커져 그를 따라 뛰어 올랐다.
 
원스는 뛰면서 몸을 뒤집어 아이의 손을 피했다.
몇 차례나 손가락이 그에게 닿을 뻔했고, 그가 다시 굳은 얼굴로 몸을 피하더니 위층까지 뛰어갔다.
 
"내가 금방 잡을 거야." 아이는 이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고 바짝 뒤를 쫓으며 따라 붙었다.
2층의 샹들리에가 갑자기 끊어져 쿵 무너져 내리자, 그제서야 상대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원스는 기회를 빌려 급하게 창고방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의 장 속으로 뛰어 들었고, 또 샤챠오가 울며 불며 그에게 매달렸다. 장면은 혼란스럽고 낭패스러웠다.
그 시끄러운 소리 속 2층의 모든 방, 창고방의 그 문까지 "퍽"하며 꽉 닫혔다.
 
이 움직임은 무척 커서 샤챠오는 물론이고 원스까지 굳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장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꾹 닫힌 문을 사이에 두고 바깥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였다.
 
샹들리에의 파편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고 아이의 자박자박하는 발소리가 그 속에 섞여 있었다. 샹들리에를 돌아온 아이의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창고 방 문 앞에서 멈추었다.
이어 문의 잠금을 누군가가 두 번 당겼고 덜컥하는 소리가 났다.
 
문은 몇 차례 걷어차이더니 어떻게 해도 열리지 않았고 먼지가 부스스 떨어져 듣고 있으면 가슴이 벌렁거렸다.
잠시 후 아이는 마침내 포기하고 몸을 돌려 다른 방으로 갔다.
 
원스는 옷감이 찢기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가 끊임 없이 "찾을 거야.", "곧 찾을 거야.", "반드시 찾을 수 있어." 하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괴이한 것이 사람의 모골을 송연하게 했다.
 
또 한참이 지나자 그 뜯기는 소리가 멈추었다.
아이는 침실로 돌아갔고 방문은 "삐걱"하며 닫히더니 2층 전체가 조용해졌다. 마치 방금의 모든 것이 없었던 일 같았다.
 
원스는 안심했고 손이 좀 뻐근하다고 느껴졌다. 그는 보들보들한 근골을 움직여 보려 했으나 자신이 품에 무언가를 안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고개를 숙여 보았다…….
거울 속의 시에원과 얼굴을 마주했다.
원스 "……."
  
"움직이지 마." 시에원의 흐릿한 윤곽이 거울에서 사라졌으나 목소리는 여전히 무척 가까웠다. "네가 있는 위치는 좀 높은데 거울은 깨지기 쉬워."
 
창고가 너무 좁은 탓일 수도 있었는데, 듣고 있으면 마치…… 그가 사실 좁고 작은 거울 속에 움츠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 원스의 곁에 서서 고개를 숙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원스는 잠시 침묵하고 있었다. 아마 반발심이 난리를 부리고 있는 것이리라. 그는 거울을 쥐고 조용히 손을 뻗었다. 마치 일종의 소리 없는 협박과 위협 같았다——
그가 손을 펼치기만 하면 거울은 떨어져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시에원은 화를 내지 않고 달래며 말했다. "집에 총 세 개 밖에 없는데 깨지면 고치지도 못해."
원스는 거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왜 내, 손에 있어."  
그는 하마터면 "품 속"이라고 하려다가 좀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하여 말을 바꾸었다.  
 
"네가 당황하여 뛰쳐 나갈 때 챙겼지." 시에원이 말했다.
 
개소리.
원스는 차갑게 말했다. "내가 널 왜 챙겨?" 
시에원이 실소했다. "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는 생각하다 평가했다. "의리를 중시한 거지."
  
샤챠오는 이번에 크게 놀라 옆에서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얹지도 못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가 시에원의 이 말하는 투를 들었을 때 상급자의 냄새를 풍긴다고 느껴졌다. 마치 말이 완전하게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만약 완전하게 하려면, 그 뒤에 대략 "착한 아이야."가 더해져야 할 것이다.
 
샤챠오는 이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을 원 형의 몸에 덧씌우자 놀라서 벌벌 떨더니, 자신의 머리가 망가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방금 완전 놀랐어요! 이 대탈출은 진짜 제가 어릴 때 꿨던 악몽하고 똑같아요. 다행히 원 형이 샹들리에를 떨어트려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방금의 그 찢는 소리를 떠올리면,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귀신이나 알 것이었다.
 
하지만 원스는 조용히 미간을 찌푸렸다. "샹들리에를 내가 한 거야?"
"맞아요." 샤챠오가 말했다. "제가 형이 앞쪽으로 달려갈 때 손을 흔들어 끈이 휘감겼고 그 뒤에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걸 봤어요."
 
원스는 조금 의심했다.
시에원이 한 마디 덧붙였다. "나도 봤어, 몸놀림이 괜찮던데."
원스 "……."
 
어쩌면 아까 너무 혼란스러웠기 때문인지, 정말 그가 회상을 해 보아도 자신이 당겨서 아이의 길을 막았던 것에 샹들리에가 포함되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 너무 오래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원스는 굳은 얼굴로 생각했다.  이번은 곳곳이 다 몽환적이니 빨리 나가는 것이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