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운해에서 나와 구른 소용돌이를 지나 서쪽으로 나아갔다. 사귀만을 보고 다시 꺾어 북두칠성의 인도 아래 순풍에 돛을 달고 보름, 독벌호는 티수국령 영해에 도착했다.
호박왕琥珀王 아바르阿巴勒가 그의 형의 자리를 이어 티수국왕이 된 뒤, 티수는 남경의 동주와 북막으로 향하는 주요 수송로 두 곳을 굳건히 차지했고 강대한 함대 실력으로 빠르게 약탈하며 부를 축적했다. 심지어 16도의 해적들도 호박왕과 결탁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바깥에서 어떻게 추측하든 고작해야 십 년 만에 티수국이 빠르게 남경의 첫 번째 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만약 동주의 북굉왕조와 북막중부를 하나로 치지 않는다면 티수가 응당 현재 사황 가운데 제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었다.
방정란은 선실에서 편지를 다 쓰고 나서야 갑판으로 올라갔다.
그날 밤 이후 동주군함 위의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일등 항해사가 이끌고 포로를 압송하여 남굉으로 돌아갔고, 다른 한 무리는 옷을 바꿔 입고 해적으로 위장하여 독벌호를 운전하여 구몽성으로 향했다. 이 일은 내내 순조로워 타국 군함을 마주치지도 않았고 독벌호의 동료를 만나지도 않았다.
뱃머리 앞에 아득한 푸른 산봉우리 사이로 흰 건물들이 줄지어 보였다—— 구몽성, 티수국 수도가 이미 목전이었다.
사황 가운데 규모가 두 번째로 큰 도시에 대해 방정란은 어렸을 적 아버지가 한담 삼아 이야기 한 것을 들었다. 아버지의 묘사 속 구몽은 우거진 숲 속의 고니 한 마리와 같았다.
"……그들의 수도는 높고 큰 백옥석대이고 우리 태연의 태일루와 비슷하게 커. 구몽성에 축제가 있거나 혹은 황실의 큰 행사가 있으면 모든 주민이 석대 아래 광장에 모여 구경을 하지. 티수인은 그걸…… 뭐라더라…… 생각이 안 나네, 어쨌든 우리는 그걸 서오대栖梧台라고 부르고, 봉황을 멈추게 할 수 있지."
여덟 살의 방정란은 눈을 깜빡였다. "봉황?"
"맞아." 아버지가 말했다. "왜냐하면 거기는 나무가 많고 꽃도 많고 그래서 참새도 많거든. 상인이 많고 시인도 많지. 티수 사람들이 말 하는 것 역시 참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듣기 좋아. 특히 구몽 아가씨들은 흰 치마를 입고 금 장신구를 하고 술집에서 노래를 하는데, 쯧쯧쯧. 그 벽옥 같은 눈동자로 널 향해 깜빡이면, 보기만 해도 취하지!"
"아버지가 몰래 노래 들으러 간 걸 어머니에게 말할 거예요." 어린 방정란은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피식 웃고 방정란이 얼굴을 꼬집었다. "네 어머니는 그 때 내 옆에 앉아 있었어!" 말하며 그는 손에 든 술잔을 들고 다시 한 모금 마셨다.
복도 앞에 살짝 바람이 불었고 수도의 밝은 달이 딱 좋았다. 아버지는 그와 한담을 나눌 때 술을 조금 마시는 걸 좋아했는데 그가 맛보게는 하지 않았다. "네가 조금 더 크면." 남자는 웃으며 손바닥으로 높이를 가늠했다. "이 정도 더 크면 우리는 태연의 '서화춘叙花春'이나 '서강억西江忆' 같은 건 마시지 말자. 내가 너와 어머니를 데리고 바다에 나가서, 구몽성에 가서 포도주를 마시자. 어때?"
어린 방정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아버지의 손바닥에 맞부딪쳤다. "아버지는 대장군이고 진해공이니, 약속 지켜야 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이 한담 뒤 이듬해, 제도 태연성은 대군의 습격을 받았고 황제는 황급히 도망쳤으며 동주는 그 이후로 두 동강이 났고 기세 좋던 굉조는 남북으로 갈라졌으며 이후 천지가 뒤집혔고 아버지는 결국 약속을 어겼다.
방정란은 자신의 손바닥을 보며 힘을 주어 입술을 오므렸다. 그는 기억에서 발버둥쳐 나오며 뱃머리에 앉아있는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티수 사람은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이 많다고들 하는데 배 위의 유일한 구몽성 주민은 되려 방정란과 같은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이었다.
거래가 이루어졌으니 젊은 해적도 자연히 구속에서 벗어났고, 아무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해련은 홀로 왔다갔다 했고 자유로웠다. 그는 지금 다리를 흔들며 한 손으로 난간을 짚고 다른 손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동전 하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그의 뒷머리를 날렸고 그의 옷 역시 부풀어 오르게 만들어 어느때고 날아갈 것 같은 흰 갈매기 같았다.
"'바다의 새'의 도시, 수많은 보물과 만 명의 객이 모이는 곳. 백문이 불여일견이네." 방정란은 갈매기의 곁으로 다가가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해련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으나 말을 잇지 않았다.
두 사람이 동행한지 벌써 보름 남짓인데 이야기를 나눈 횟수는 손에 꼽았다. 상대가 늘 웃으며 그에게 공손히 예우하더라도 해련은 본능적으로 이 동해 군관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이 여우같은 고용주가 갑자기 자기와 친해지고 싶어한다고 생각할리 만무했다.
방정란 역시 상대의 냉담함에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전에 계속 묻고 싶었는데, 네 모습을 보면 티수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티수는 온갖 사람들이 다 있어. 키 큰 사람, 작은 사람, 노란 머리, 빨간 머리, 흰 얼굴, 검은 얼굴, 푸른 눈, 녹색 눈. 다 있어." 해련은 상대와 한담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목소리는 나른했다. "내가 어디 사람인지 왜 신경 써. 할 말 있으면 그냥 하고 은근슬쩍 굴지 마."
"그렇게 거리두지 마." 방정란은 웃었다. "우리가 그래도 일 년을 같이 지내야 하는데, 서로를 잘 이해하면 좋잖아."
해련은 눈썹을 찌푸리고 주요한 단어를 붙잡았다. "같이 지내?"
"응, 같이 지내. 물가에 오르면 너와 나만 같이 성에 들어갈 거야." 방정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배짱 좋은데."
"네가 있으니까."
"……."
방정란은 상대를 직시했고 오글거리는 말을 하면서도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앞으로 1년 간,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너뿐이야."
"우리는 동료야, 해련." 그가 말했다.
방정란의 이 말은 너무 진실했고 말꼬리에는 심지어 애교도 섞여 있었다. 처음 남굉에 있을 때 이 어조와 표정은 무륭궁武隆宫의 동창과 자신전紫宸殿의 늙은 황제를 속일 수 있었으니 자연히 눈 앞의 생각 단순한 어린 해적 역시 속일 수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해련의 눈빛 사이 침묵하더니 한참 뒤 시선을 바다를 돌리고 작게 말했다. "……너하고 같아."
이 다섯 글자는 발음이 분명하고 발음이 부드러운 동주어였다. 방정란은 멍해졌다.
"난 너하고 같아, 굉조 사람이야. 15년 전 열국 전쟁 직전에 가족들을 따라 동주에서 티수로 도망쳤고 그 뒤로 다시는 돌아간 적 없어." 해련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그것이 가능한 자신의 딱지 앉은 상처에 닿지 않도록 했다.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스칠 때 손바닥에 습한 물안개가 묻어 나왔다.
"그럼 네 가족들은……."
"다 죽었어."
방정란의 웃음이 굳었다. "미안해."
"언젯적 일인데 사과할 게 어디 있어." 해련은 난간을 짚고 갑판으로 돌아왔다. 전방이 곧 홍류항에 도착할 것이었다. "너도 날 동주사람이라고 여기지 마, 인정 안 하니까."
8.
항구는 선박이 조밀하게 늘어서 있어 독벌호는 외곽에 잠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방정란은 마지막으로 배 위의 부하에게 몇 마디 지시를 하곤 나무 상자 하나를 들고 해련과 작은 배로 옮겨탔다. 두 사람은 즐비하게 늘어선 마스트와 각양각색의 돛을 지났고 흉악한 얼굴의 해신상은 모든 상선의 뱃머리에 우뚝 서서 냉혹한 시선으로 방문객을 굽어보고 있었다. 방정란의 시선은 시종 전방을 향하고 있었고 풍경보다 냄새가 한 발짝 빨리 밀려왔다.
그는 숨을 참았다.
——구몽성에 들어가기 전에 담배를 한 대 피워야 해.
윤해의 가장 경험이 많은 늙은 선원은 모든 새로운 선원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북막 용식보에서 가져온 연초, 동주 지금성에서 가져온 향료, 서륙 란리세이에서 옮겨온 좋은 술, 각종 냄새가 바닷바람의 비린내와 짙은 꽃향기에 섞여 이상하고 사람을 취하게 하는 냄새가 되었다. 해관은 다급히 밀수범을 쫓고 박랑상은 물건을 가득 싣고 돌아가며 까무잡잡한 짐꾼과 작달막한 목장이가 한 군데 모여 있었으며 해적과 기녀들은 정을 통했다—— 가죽신, 헝겊신, 아니면 맨발이든 진흙만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의 발목과 바짓가랑이에 튀었다. 사람들은 동주말로 장부에 대해 이야기했고 서륙 방언으로 더러운 욕을 했으며 북막말로 노래를 불렀다. 하늘빛을 받은 동전이 한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으로 넘어가고 다시 항구 근처의 별이 총총한 술집으로 뿌려졌다.
홍류红榴라는 이름의 항구는 방정란이 가보았던 어떤 항구보다도 생기가 넘쳤고 시끌벅적했으며 또한 훨씬 야만적이었다.
작은 배가 기슭에 닿자마자 해련이 뱃머리에서 뛰어 내리더니 방정란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바짝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네가 항구를 나갈 때는 팬티만 남을수도 있어."
방정란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인파가 몰려들자 상대는 그를 기다릴 기색이 조금도 없었고 방정란은 서둘러 몇 걸음 뒤쫓은 뒤 아예 눈 앞에 있는 사람의 손목을 붙잡았다.
"네가 바짝 따라오라면서." 방정란이 당당하게 말했다.
해련은 방정란을 바라보았고 상대는 그를 향해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역겹지도 않나." 청년을 중얼거리더니 방정란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발걸음도 한 박자 늦추었다.
항구는 무척 커서 두사람이 좁은 틈에서 이리저리 돌며 어렵사리 항구를 나가려 할 때, 방정란은 갑자기 날카로운 울음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울음소리는 어느 남자 아이가 낸 것이었다. 그의 왼팔은 어깨 아래부터 하나도 없었고 하나 남은 손으로 외안의 사내의 옷자락을 잡으며 어물어물 상대에게 무언가 변명하고 있었다. 사내는 남자 아이의 설명을 들을 인내심이 없는 듯 그를 떨쳐내려 했고 남자가 욕 몇 마디를 한 뒤에도 남자 아이는 손을 놓지 않았다. 사내는 열이 받아 남자 아이의 하나 남은 팔을 힘을 주어 밀쳤고 남자아이는 몇 걸음 비틀거리더니 진흙속에 철퍼덕 넘어지며 앞섶 절반이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홍류항은 너무 바빠서 아무도 1초라도 진흙 속 더러운 귀신을 더 보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의 파도는 엉엉 우는 그의 곁에서 자동으로 갈라져 마치 돌을 만난 강물 같았다. 남자 아이의 울음은 마치 시끄러운 노래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음표 같았다. 그는 팔에 상처를 입었고 다리도 그다지 신통치 않은 듯했다. 남자 아이는 한참을 발버둥치며 일어나려 했고 눈물이 그의 얼굴의 먼지를 씻어내어 한 줄기 한 줄기 흘렀다.
방정란이 보더니 혀를 찼다. "아이를 괴롭히는 게 무슨 재주야."
말하며 그는 짐을 해련에게 넘기고 앞으로 걸어갔다. 해련은 손 안의 나무 상자를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묻고 우는 남자 아이를 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날 수 있겠어?" 방정란은 몸을 숙여 남경말로 물었다.
남자 아이는 입을 오므리고 콧물을 몇 번 삼키더니 마침내 훌쩍이던 것을 그쳤다. 그는 작게 대답했다. "제…… 다리가 망가졌어요."
방정란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남자아이를 향해 두 손을 뻗어 그의 겨드랑이에 끼워 그를 진흙탕 속에서 안아 일으킨 뒤 조심스레 길가에 내려두었다. 동주인은 온화하게 웃으며 물었다. "집 어른들은?"
남자아이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저으며 말을 하려 하지 않았다. 방정란이 또 몇 마디 물었지만 상대는 여전히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그 역시 더는 붙잡고 있을 수 없어서 아이의 구겨진 옷깃을 정리해주고 웃으며 당부했다. "앞으로는 저런 사람을 건드리면 안 돼."
아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주저하더니 방정란이 두 걸음 떨어졌을 때 다시 청년을 불렀다. 어린 친구는 눈물과 콧물자국 속에서 어렵사리 웃는 얼굴을 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방정란 역시 따라 웃었다.
"네가 이렇게 착할 줄은 몰랐어." 해련은 나무 상자를 그에게 돌려주었다.
"너희 여기 사람들이 너무 냉정한 거야, 아이가 길가에서 울게 두다니." 방정란은 자신의 소매 냄새를 맡고 코를 찡그렸다. "도착하면 씻어야겠어, 여기에서는 진흙도 생선 비린내가 나는군……."
"가슴 만져봐." 해련이 말했다.
"뭐?" 방정란은 멍해져 그 말 그대로 손이 품 안으로 향했다. 이렇게 만져보니 그의 안색이 바로 바뀌었다. 방정란은 얼른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고 그곳에 어디 다리가 불편한 외팔이 소년이 있겠는가.
"이건……." 그는 깜짝 놀랐고 남자 아이의 "고맙습니다"가 무슨 뜻인지 이해한 셈이었다.
"다리나 팔이 없는 아이로 노부인의 동정심을 얻고, 그들이 눈물을 흘릴 때 그들의 목걸이, 지갑을 터는 거야. 거기다 떠나기 전엔 흰 치마 위에 검은 손자국을 남기지." 해련은 발음이 느렸다. "나는 바짝 따라붙으라고 했는데 네가 이렇게 주동적으로 이런 저급 수단에 당할 줄은 몰랐네, 방 천위."
청년은 마침내 방정란을 향해 웃었다. 굽은 눈썹에는 숨길 수 없는 고소함이 있었다.
"이건 티수가 네게 주는 첫 선물이야." 해련이 말했다. "구몽성에 온 걸 환영해, 이향인."
'원작 > 해중작海中爵'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중작 - 7. 진흙구 (0) | 2021.11.12 |
---|---|
해중작 - 6. 삼류작가 (0) | 2021.11.11 |
해중작 - 4. 거래하다 (0) | 2021.07.05 |
해중작 - 3. 내기하다 (0) | 2021.06.28 |
해중작 - 2. 접선전 (0) | 2021.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