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란은 등 뒤에 있는 사람의 상황이 불분명한 가운데 몸을 낮추어 피했고 은색 빛이 딱 적당하게 그의 머리카락 끝을 스쳤다. 만약 반 초만 늦었더라면 그는 골목의 시체처럼 목이 그어져 바닥으로 쓰러졌을 것이다. 그는 공격을 피한 이후 발을 멈추지 않고 뒤이어 달빛을 밟으며 선회했다. 남자는 지금까지도 정원사의 옷을 입고 있는 채라 손에는 아무런 무기가 없어 당연히 상대와 정면에서 맞붙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상대의 시도 역시 처음 한 번 뿐으로, 그 이후에는 손 안의 물건을 쥔 채 방정란의 앞에서 위세를 떨치는 것 같았다. 방정란은 또 어쩔 수가 없으면서도 우스웠다. 그는 마음을 바꾸어 따질 겨를 없이 낭패한 양 두 번의 칼을 피한 뒤 말을 끌며 입을 열었다. "사촌 동생, 너 날 괴롭히는 거야…….
"괴롭힌다"는 네 자는 여러 차례 곱씹고 끝없는 억울함이 숨겨져 있어 대극장의 정상급 배우보다도 감정이 충만했다. 이 소리가 나오자 상대는 순간 말문이 막혀 비틀거렸고, 본래 완벽한 원을 그렸을 칼날 역시 비뚤어졌다. 이 "사촌 동생"이 아직 방정란에게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생각해 내기도 전에 한쪽에서 맑은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소리는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깨트렸고 공격자의 칼의 기세를 눌렀다. 웃음소리를 낸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옆에서 싸움을 한참 지켜보던 여자였다. 아가씨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잔뜩 신이 나 있었고, 두 사람을 향해 눈썹을 치켜뜨며 말하기까지 했다. "아이, 왜 계속 안 해?"
"이렇게 됐는데 내가 어떻게 계속 해." '사촌 동생'은 한숨을 쉬고 비수를 거두었다.
아가씨는 손가락을 비볐고 암홍색의 부스러기가 손가락 사이에서 떨어졌다. 그녀의 남회색 눈동자가 두 사람의 사이를 한 바퀴 돌았고 입가의 장난기는 더욱 짙어졌다. "너희 형제 정말 재밌다, 이게 어디 몸싸움이야. 분명히 사랑싸움이지——"
"앨리." 해련은 아가씨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 그래. 가면 되잖아. 방해 안 할 테니까 계속해." 앨리는 코를 만지작거렸고 목소리에는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해련을 향해 한 마디 원망했다. "오늘 장사는 수지가 안 맞아. 나한테 치마 한 벌 갚아야 해.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치마야, 지금은 전부 피칠갑을 해서 앞으로 입을 수가 없어."
이렇게 한 번 휘젓고 나자 싸움이 되지가 않았다. 해련은 앨리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 난 뒤에야 먼저 입을 열었다. "방금 남한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나한테 흥분한다는 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의 뜻." 방정란은 재빨리 대답했다.
"……." 해련은 또 다시 말문이 막혔다.
"정말 말 그대로의 뜻이야. 남경에 오기 전에 누가 티수는 겉으로 보기에만 태평하고 안으로는 무척 혼란하다고 했어. 그때 난 믿지 않았는데 지금은 믿어." 방정란이 말했다. "그 치안관이 네 고용주야, 맞지? 5일 전 막 구몽성에 왔을 때 네가 갑자기 떠난 건 이 거래를 받기 위해서였어?"
"너하고 거래할 때 너 한 사람의 일만 받는다고 한 적 없어."
상대의 이 말은 묵인하는 셈이었고 방정란은 웃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이 무슨 짓을 저질렀고, 하지만 치안청이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아예 암살 당하게 한 거야? 그렇다면, 그 목소리가 특이한 치안관이 대외적으로 이게 미제 사건이라고 공포하거나 누구나 의심하면서도 건드릴 수 없는 상대에게 화살을 겨누겠지. 예를 들어…… 너희 국왕?"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해련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계속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은데. 말했지, 내 일을 묻지 말라고."
"이건 우연이야." 방정란은 옷을 정리했다. "나는 아무렇게나 추측한 건데, 다 맞힐 줄은 몰랐네."
해련은 코를 울렸다.
눈앞의 꼬마 해적은 지나치게 단순하여 말끝마다 남들이 물어보지 못하게 하면서 되려 스스로 마구잡이로 드러내고 있다. 방정란은 여기까지 하고 더는 파고들지 않았다. 그는 해련을 향해 손을 뻗으며 웃었다. "한 번 더 화풀이를 하고 싶어? 아니면 같이 집으로 갈까? 그것도 아니면 진주 술집에서 한 잔 할래? 내가 사지."
"다 사양이야." 해련은 인정사정 없이 거절했고, 떠나기 전 그는 방정란을 훑어보았다.
"역시 네 옷을 입지 그래." 그가 평가했다.
19.
이 살인은 분명 구몽성의 큰 사건이 되었고 금령화 부인의 가게의 장사 역시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특히 앨리가 그랬다. 사람들은 큰 돈을 써서 그녀를 만나려 했는데 바로 그녀가 다시 헤라크가 어떻게 처참하게 비명을 질렀으며 어떤 자세로 그녀의 몸 위로 쓰러졌는지 듣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더러워진 치마 역시 버리지 않았는데 일부 특수한 취향의 사내는 그녀가 일을 할 때 그것을 입고 자신 역시 죽음을 마주한 "자극"을 흉내내려 했다.
이 오래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는 꽃향기와 바닷바람으로 자신을 가라앉히고 다시 핏빛과 금화로 자신에게 활력을 주었다.
"……대극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그러는데, 내가 댄서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대." 앨리는 한쪽 팔을 의자 등받이에 걸쳤고 앉은 자세는 방자했으며 저급 분을 바른 볼은 오후의 햇살 아래 과장된 홍조를 띄고 있었다. "내가 다음 번 난드 부인일 수도 있어. 그녀도 독무를 출 때 귀족의 눈에 들었고 그대로 하늘까지 올라간 거 아니야?"
"응……." 해련은 형식적으로 대답했고 마음은 전부 손 안의 일로 향해 있었다. "그럼 좋지."
"하지만 내 생각에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어쨌든 남자의 신선함은 금방 지나가니까." 앨리는 낙담했다. "거기다 내 생긴 것도 아주 예쁜 건 아니고. 콧대가 조금 더 높았으면 좋았을 텐데."
해련은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난 네가 아주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만족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앨리는 입술을 삐죽였다. "네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해련은 웃었다.
"그럼 그도 여자를 안 좋아해?" 앨리가 다시 물었다.
"누구?"
"네 형 말이야."
최근 이틀간 방정란은 해련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동주인은 줄곧 비밀스러워 하루 종일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 해련 역시 상대가 무슨 일로 바쁜 것인지 상대하기 귀찮았다. 다만 지금 갑작스레 다른 사람의 입에서 방정란을 듣자 저도 모르게 순간 넋을 놓고 말았다.
앨리는 해련이 넋을 놓은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검지로 머리카락 근처의 붉은 끈을 감으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언니들하고 몰래 얘기했었는데, 그가 참 이상해. 이런 곳에 살면서 아가씨를 부르지도 않고 옆 건물의 엉덩이를 파는 녀석들을 들여다보지도 않아……. 말해 봐, 그의 물건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아마 아닐 거야." 해련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네가 어떻게 알아?" 앨리는 놀랐다.
"난…… 추측한 거지." 해련은 말문이 막혀 아예 말을 돌렸다. "그놈 이야기 해서 무슨 재미가 있다고……. 치안청이 널 귀찮게 하지는 않았어?"
"어떻게 그래? 팔루코가 나를 불러 상징적으로 몇 가지 묻더니 그 이후에는 부르지 않았어. 오히려 그 어린 경위가 아주 귀찮아, 계속 나한테 사과하면서 꽃까지 주고." 앨리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중얼거렸다. "자기가 뭘 알아……."
해련은 여자가 재잘거리는 것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는 마지막 바늘을 옷감 사이로 찔러넣고 익숙하게 매듭을 짓더니 이로 실을 끊은 뒤 바늘을 앨리에게 돌려주었다.
"다 썼어?"
"응, 고마워." 해련은 수선한 셔츠를 몸에 걸치고 일어나서 소매를 당겼다. "방금 네가 한 말이 맞아, 사람들의 신선함은 금방 지나갈 거야."
여자는 눈을 깜빡였다. "왜?"
"왜냐하면……." 해련은 마지막으로 몸의 장비를 점검했다. "곧 또 신선한 일이 생길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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