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구몽성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암투장黑拳场이 있고 해련은 이런 곳이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비록 한 번도 직접 참여한 적은 없지만 이전에 백호방의 기세가 좋았을 때 그 깃발 아래 운영되던 모든 암투장에 그의 모습이 나타났었다. 지금은 백호방이 없고 호두골목의 이 암투장의 세력이 가장 크고 관중이 가장 많으며 선수 역시 가장 흉악하다.
오늘 해련은 거리의 "파리"에게서 열마烈马가 무대에 오른다는 것을 들었고, 그렇다면 그의 명단의 두 번째 목표—— 퀼러도 반드시 현장에 나타날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퀼러인지 찾아낸 뒤 소리소문 없이 칼질을 한 번 하면 그의 임무는 끝나는 셈이었다.
해련이 관람석으로 들어갔을 때는 아직 이른시간이라 중앙의 무대는 텅 비어 있었다. 고운 모래와 석회를 뿌린 지면은 깨끗하여 어제 시체가 몇 구나 누워있던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보러 오는 이들은 진흙구의 빈털털이에 폭력적인 야만성을 쏟아내고 싶은 사내들이었는데, 소박한 옷차림의 관중들도 있었으나 가까이 다가가면 그들의 꼬질꼬질한 외투 아래 정교한 무늬의 안감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성 관객은 적았는데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남자 손님과 경호원의 호위를 받고 있었고 외부인이 신분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얼굴에 복면을 했으나 하얀 귓불의 쌀알만 한 보석이 어두운 공간에서 반짝였다.
다만, 대체 누가 퀼러인가?
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쟁반 위에 동전 한 주머니를 내려놓은 노인인가? 아니면 열마의 피비린내 나는 과거 전적에 대해 동료와 이야기하는 저 사내인가? 심지어 저 가느다란 새끼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는 복면의 아가씨?
퀼러가 열마의 충실한 지지자이며 팔루코의 문서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이상 어쨌든 인물일 것이다. 해련이 씀씀이가 큰 목표를 몇 골라 가까이 다가가 잘 살펴보려 할 때 허리 뒤에 갑자기 무언가가 닿았다.
"좋은 저녁이네." 등 뒤의 물건의 주인이 말했다.
셔츠를 사이에 두고 해련 역시 그 물건의 서늘함과 단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그의 몸에 닿은 옷은 날카로운 주름이 졌고 계속 소리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 초만 더 지난다면 그의 허리 위는 피가 뚝뚝 흐르게 될 것이다. 청년은 빠르게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고 잔기술로 양쪽에서 붙잡으려던 것을 빠져나오며 그 순간 고개를 돌렸다. 자객의 본능적 경각심과 날카로움이 그가 시야 끝에서 살인자의 눈동자를 마주하게 했다.
"네가 찌르려는 곳은 좋지 못해, 그 위치에는 치명적인 내장이 없어서 한 번에 날 죽이지 못해." 해련은 고개를 기울였다. "동업자?"
그 사람은 경멸스러운 듯 웃었다. "네 말이 반은 맞아." 그가 입을 열 때 붉은 혀는 선홍빛 입 안에서 꿈틀거려 마치 겨울잠을 자는 뱀 같았다.
상대는 비수를 거두었고 고의인지 아닌지 비수의 손잡이가 어둑한 등불 빛 아래에 언뜻거려 해련은 마침 그 위의 무늬를 볼 수 있었다.
독전갈 호박. 해련은 마음 속으로 재수가 없다고 욕을 했다.
가장 귀찮은 동업자를 만났다.
그는 반 년 전에 팔루코를 도와 일을 했는데, 목표는 티수의 무기를 모이국에 밀매한 군관이었다. 그 결과 이 임무에서 독전갈 호박과 마주치고 말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작 잘못을 인정하고 한쪽으로 물러났을 테지만, 하필이면 해련은 그때 머리에 바람이 들었는지 실력이 좋은 것을 믿고 독전갈 호박들이 삼엄한 경계 아래 막 배에서 내린 그 재수 없는 놈을 끝장냈다—— 도망갈 때는 황제의 자객의 귓가에 득의양양한 휘파람을 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이 끝난 뒤 팔루코는 해련에게 무지막지하게 욕을 했다. 그 누구도 감히 국왕의 총검을 도발한 적이 없다고 하며 치안청도 그들을 보면 길을 돌아간다고 했다. 그는 해련에게 자그마한 목숨을 부지하고 싶으면 어서 바다로 나가 바깥으로 피하라고 했고, 해련은 독벌호에서 반 년을 표류했다. 그러다 뭍에 오른지 보름도 되기 전에 또 이 흉신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니, 해련은 재수가 없다고 자인하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네가 저번에 그 돼지를 죽여서 우리가 일 년을 쫓던 단서가 뚝 끊어졌지." 그 사람은 목소리를 낮추었으나 해련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우리 형님이 아주 화가 나셨어."
팔루코의 경고가 있어 해련은 곧장 사과했다.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 그 사람이 당신들에게 그렇게 중요할지 몰랐어. 오늘 당신들의 목표도 여기 있어? 그럼 난 바로 갈게."
그는 발을 들어 떠나려 했고 몸을 돌리기도 전에 옆에 있던 사람에게 팔을 붙잡혔다. 또 한 명의 독전갈 호박이었는데, 여자였다. 그녀의 가면 아래의 미목은 구부러졌고 손톱의 색은 피보다도 선연했다.
"나는 여자한테 손 쓰고 싶지 않은데." 해련이 말했다. "놔."
"넌 내게 손 쓸 기회가 없어." 상대는 히죽 웃었다.
아니나다를까, 해련이 다른 쪽 팔을 들기도 전에 그는 세 번째 독전갈 호박에게 남은 팔을 붙잡혔다.
해련은 조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당신들 대체 이 권투장에 몇 명이나 심어둔 거야?"
"얼마나 될 것 같아?"
모든 독전갈 호박이 어둠 속에서 미소짓고 있었고 이 웃는 얼굴은 방 씨 놈처럼 얄미로웠다. 해련은 그들의 득의양양하고 능수능란한 표정에 짜증이 일었다. 마치 자신이 그들의 손바닥 아래의 언제든지 손가락 하나로 눌러 죽일 수 있는 벌레 같았다.
그는 발버둥치는 것이 귀찮아졌다. "당신들 대체 뭘 어쩌고 싶은데? 날 죽이는 데는 이 많은 사람이 필요 없어."
"너 암투 한 적 있어?" 가장 먼저 나타났던 그 사람이 문득 물었다.
"뭐?" 해련은 멈칫했다.
"너는 우리의 오늘 명단에 없으니 우리는 자연히 네 생사를 결정할 수 없지. 하지만 저번에 모욕당한 일은 계속 기억하고 있어. 그러니……." 그 사람의 혀 끝이 눈처럼 힌 이 위를 한 바퀴 굴렀고, 그는 웃으며 말했다. "행운을 빌어, 무명 자객."
21.
"나도 올라가 보고 싶어요."
"너도 장난감이 되고 싶어? '승냥이'나 '금니'처럼 어깨를 내놓고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면서, 꼬질꼬질한 주먹을 들고 관중들이 네 얼굴을 향해 꽃다발과 동전을 던지도록?"
"그냥 해보는 거죠, 싸우면서 놀게." 해련은 고집을 부렸다. 그는 입술을 삐죽였다. "늘 나더러 해결하라고 하는 그 돈더미에 누워서 잠을 자는 녀석들에게 손을 쓰는 건 좀 그들을 괴롭히는 기분이 들어요. 그들은 반항도 못하니까."
외눈박이 매 아크는 그를 밀쳤고 소년은 비틀거리며 등불이 비치던 원래 자리에서 어둠 속으로 밀려났다. "제대로 서라, 이놈아. 여기야말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이야. 무대를 잘 보고 소란 피우지 마." 그의 선생님은 하나 남은 혼탁한 눈동자로 그에게 경고 어린 눈빛을 던졌다. "게다가, 네가 무대에 오르면 그건 괴롭히는 게 아닐 것 같으냐?"
※※※
암투장의 사장은 오프닝을 앞두고 신청을 넣은 예쁜 청년이 조금 의외였지만 그를 데려온 두 명의 "보증인"의 호박왕을 대표하는 휘장이 반짝이는 것을 보자,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당장에 아무런 의의가 없음을 밝혔다. 그는 간신배처럼 웃고 수염을 비비며 독전갈 호박들에게 아첨했고, 얼굴 가득 싫다는 표정을 한 신인의 어깨를 두드리고 무대 뒤로 들여보냈다.
무대 뒤에는 기골장대한 사내들이 많았고 해련의 체형은 두터운 사람의 벽 탓에 유달리 약해보였다. 그가 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누군가 큰 소리로 괴성을 질렀다. "아이고, 이건 가슴 없는 아가씨가 들어온 거 아니야?"
선수들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 사람들의 조롱은 해련에게 있어 아무렇지도 않았고, 바깥의 독전갈 호박들처럼 눈빛 한 번에 열이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구석으로 가 조용히 있으려 했으나, 안타깝게도 맞은편의 사내들은 그가 조용히 있도록 해줄 생각이 없었다. 해련의 엉덩이가 의자를 덥히기도 전에 몇 명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해련은 눈꺼풀을 들었다. "볼 일 있어?"
"동주 난쟁이, 도박하다 빚졌어?"
"아니야." 해련은 담담하게 말했다. "누가 와서 놀라고 해서 왔어."
"놀아? 여기는 너 같은 기생오라비가 맘대로 놀러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누군가 손을 뻗어 해련의 얼굴을 건드리려 했고, 해련이 가로막았다. 그 사람은 해련의 거절에 화를 내지도 않고 되려 웃었다. "이따가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아? 네 팔은 내가 뽑아버릴 거고, 이 예쁜 얼굴은 내게 짓밟혀 진흙이 되어 네 친구들도 못 알아보게 될 거야."
그 사람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자에 앉아있던 청년이 귀신처럼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가 채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손 하나가 그의 머리를 붙잡고 쿵 하고 벽에 갖다 박았고, 뒤이어 팔뚝이 거꾸로 꺾일 때 뼈와 관절이 마찰하는 격통이 이어졌다.
"진짜 아쉽네, 나는 내 얼굴을 확인해 줄 친구가 없거든." 해련이 말했고, 손에는 아직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어떻게 팔을 뽑아야 할지, 내가 알려줄까?"
"이, 이 시발——"
"나는 지금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아. 너와 네……." 해련은 옆쪽의 두려움에 찬 얼굴의 동료들 몇 명을 둘러보았다. "친구들이 날 안 건드릴 수 있겠어?"
남자의 안색은 일그러지고, 절반은 분노였고 절반은 공포였다. 그는 돌덩이가 이미 광대뼈를 덮은 살을 찢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관절은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덜컥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만약 그가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후에 부러진 어깨를 하고 무대에 올라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체면을 신경 쓰지 못하고 이미 찢어진 상처를 지닌 채 죽어라 고개를 끄덕였고, 목구멍에서는 "응"인지 "네"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소리가 났다.
해련이 막 손을 놓자 사장이 문을 열고 소리쳤다. "방금 그 신인은?"
"여기." 해련은 대답하며 사장을 따라 나갔다.
사람은 이미 나갔지만, 무대 뒤의 작은 풍파의 위력은 여전히 이 방을 맴돌고 있었다. 구속에서 벗어난 사내는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손을 흔들어 얼굴의 핏자국을 닦으며 방금은 실수로 습격을 당한 것이고, 이따가 반드시 그 동주 난쟁이를 손봐줄 것이라고 욕을 했다. 그의 동료는 되려 가슴이 두근거려 문가를 바라보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누군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 방금 저놈이 좀 눈에 익은 것 같아."
그 사람은 눈쌀을 찌푸렸고 감히 확신하지 못하는 어조였다. "이전에 백호방에 동주 꼬마가 하나 있었는데 외눈박이 매 아크의 유일한 학생이었어. 실력이 무서울 정도였는데 저 사람하고 나이가 맞아……. 하지만, 그 아이는 백호방의 반역자가 되어 진작 죽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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