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열마는 이미 해련의 앞에 이르렀다. 사내는 주변이 시끄러운 가운데 고개를 숙여 해련의 손의 그 녹슨 철조각을 바라보았고, 상처투성이인 얼굴에 갑자기 웃음이 번졌다. "오래간만이군."
해련은 아직도 사장에게 화가 나 있어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열이 차 있었다. "아는 사이던가?"
"너는 나를 모르지, 하지만 나는 널 알아." 장외의 관중들이 그들에게 움직이라 재촉했으나 열마는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넌 이전에…… 자주 문가에 앉아 네 칼을 가지고 놀았지. 어떨 때는 칼이 아니라 돌, 금화였어……. 좀 교양이 있는 말로는 뭐라고 하더라, 구름 위의 존재?"
"백호방의 싸움장에서 싸운 적이 있어?" 해련은 말을 곱씹었고 드디어 눈을 들어 열마를 직시했다. "그렇다면, 네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건 운이 좋을 뿐 아니라 솜씨 역시 괜찮은 거겠지."
"아니, 내 운은 너만큼 좋지 못해." 열마는 기이하게 몇 차례 웃었다. "나는 그때 계속 생각하고 있었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너와 뭐가 다를까. 만약 내가 충분히 운이 좋았더라면 아크의 눈에 들어 매일 문가에 앉아 칼이나 가지고 놀고 휘파람이나 불어도 됐을 텐데, 여기 서서 다른 사람의 머리를 쪼개는 것으로 자기 목숨을 건지는 게 아니라 말이야. 방파에 일이 났을 때도 다른 사람이 목덜미에 밧줄을 걸고 물건처럼 다루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되고."
사내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자세를 취했다. "당시 나는 맹견이었고 너는 문지기 개였지." 그의 목젖이 움직였다. "지금 맹견이 주인 없는 문지기 개를 물어 죽일 거다."
첫 번째 도끼가 내리쳐왔다.
해련이 진작 방비했더라도 이 공격이 일으킨 바람에 깜짝 놀랐다. 그는 막 옆으로 반 척 거리를 벌렸는데 두 번째 도끼는 맹견이 코를 킁킁거리며 물어뜯는 듯했다.
해련은 자신의 손에 든 낡은 물건으로 상대와 맞부딪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열마"라는 사내의 실력은 이전에 해련에 의해 가볍게 쓰러진 상대들보다 몇 등급이 높은지 알 수 없었다. 그게 아니고서는 그가 백호방의 싸움장에서 살아남고 이곳의 유명 선수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상대가 이렇게 자신을 쫓아다니며 베도록 두어선 안 된다. 청년은 아예 녹은 쇠붙이를 넣어두고 빈 손으로 피했다. 그는 경기장 위를 몇 바퀴 돈 뒤 시기를 맞추어 갑자기 몸을 낮추더니 바닥의 모래를 쥐어 열마를 향해 던졌다. 이 흰 먼지는 상대의 공세를 한 순간 멈출 수 있을 뿐이었지만 해련에게는 충분했다. 그는 빠르게 다가가 도끼의 공격 범위를 무너트리는 동시에 정확하게 두 주먹을 휘둘렀고, 하나는 겨드랑이, 하나는 옆구리를 때렸다—— 몸 위의 약점을 정확히 때리기만 한다면 이 두 주먹은 아무런 규칙 없이 무작위하게 휘두르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것은 외눈박이 매 아크가 해련에게 가르쳐 주었던 첫 번째 내용으로, 그는 매우 익숙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의 얼굴은 순식간에 격통으로 일그러졌고 거대한 몸은 휘청거렸다. 하지만 열마는그래도 이 둥그런 땅에서 항상 승리를 거두던 이였기에, 해련의 예상대로 허리를 굽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관성에 기대어 해련을 내던졌다.
한 방에 도끼를 손에서 뺏지 못했고, 더 가까이 가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해련은 두어 번 비틀거리며 몸을 안정시켰고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며 열마의 무기를 떼어낼 수 있는 수 개의 방안이 떠올렸으나 하나하나 부정했다. 그는 독전갈 호박에게 찍힌 자신이 이후에 악전을 치루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몸싸움은 속전속결이어야 했고 무기 싸움에서도 너무 많은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반드시 체력을 보존해야 했다…….
"너 죽는게 겁나는군." 열마는 입을 열어 해련의 사고를 끊었다. 남자는 마침내 그 두 대로 인한 통증이 나아졌고, 그가 턱을 움직이자 묵직한 열기가 산발 사이에서 피어 올랐다. "사람을 죽이려거든 지금 같은 모습이 아니지. 겁을 잔뜩 먹어선, 꼭 쥐 같아."
이 말은 마치 해련의 행동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다. 해련은 저도 모르게 도끼를 든 손을 경계하던 시선을 상처가 자리한 얼굴 위로 옮겼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이전에 다른 사람 앞에서 손을 쓴 적이 없어. 너 어디서 내가 사람 죽이던 걸 봤어?"
"어디서 봤냐고?" 열마는 농담이라도 들은 양 즐거워했다. "나는 여러 차례 봤지! 네가 처마에서 뛰어내려 '승냥이'를 죽였고, 골목에서 '늙은 나귀'의 가슴을 반대편으로 꿰뚫었고 밝은 달 아래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른 원숭이'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어."
"알아, 네가 백호방의 보물인 걸……. 너는 그 더러운 것들을 전부 어두운 곳에서 해결하고 이렇게 떳떳하지……. 나도 이런 떳떳함을 바란 적이 있었어……." 열마는 조리 없이 중얼거렸고 경박스러웠다. "떳떳해? 하, 발치의 진흙이 얼굴까지 튀었는데 떳떳함을 찾아!"
말이 끝나자마자 열마는 힘껏 도끼를 던졌고 묵직한 도끼날은 나무 손잡이와 함께 허공에 무수한 원을그리더니 해련에게로 떨어졌다. 해련이 막 피하자, 가슴이 갑자기 조여왔다. "젠장!" 아니나 다를까, 검은 그림자가 위에서 덤벼들었다.
쾅——!
도끼가 나무 난간에 박히는 소리와 해련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관종의 놀란 비명 가운데 장내의 두 선수는 동시에 바닥으로 쓰러지며 빠르게 밧줄처럼 몸을 비틀었다. 살이 부딪치는 순간 실내에는 또 한 번 환호와 비명이 터졌다—— 산 채로 때려 죽이다니! 어찌나 아름다운가!
"패버려!"
"때려 죽여!"
"가서 도끼 뺏어!"
"계집애처럼 굴지 마, 물어! 차!"
미쳤다. 전부 미쳤다.
소란은 이 뜨겁고 좁은 공간을 맴돌았고 해련은 자신이 조금 더위를 먹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어깨에 힘을 주어 관절이 붙잡히지 않도록 했다. 자객은 힘으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줄곧 기술과 속도로 승리를 거두었고 일단 상대에게 붙잡히면 그에게 수많은 해결 방법이 있어도 발휘할 길이 없었다. "이 시발……." 청년을 이를 악물었다. "맹견일 뿐만이 아니라, 미친 개였어……."
"미친 개?" 열마는 눈꼬리에 주먹을 맞았고 지금은 흰자에 핏줄이 터져 있었다. 그는 이 단어를 들을 때 눈꺼풀이 튀었고 핏발이 일었다. 남자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으나 이 숨은 과한 운동으로 인한것이 아니라 정서가 고조된 것이었다. "나는 이전에 분명 '미친 개'라고 불렸었지. 너도 이런 곳에 몇 년 있으면 미친 개가 될 거야."
열마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면 독수리처럼 목구멍 깊은 곳에서 썩은내가 나 숨이 막혔다. 해련은 숨을 참으며 냄새를 맡지 않으려 했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가운데 자신이 방금 허리 뒤로 넣은 비수를 잡으려 노력했다.
남자는 해련의 공격을 맞으며 목구멍 안에서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아직도 나하고 싸우고 싶지 않은 거군, 하지만 상관 없어. 넌 나와 싸울 거야……."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갑자기 웃었다. 웃음소리는 가슴에서 울려 어떤 괴물의 울음소리 같았다.
"문지기 개." 그는 이렇게 해련을 불렀다. "네 그 보물 여동생은 지금 어때?"
해련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 아이의 피 묻은 흰 치마를 아직 남겨뒀나? 아직 양뿔 골목에 살아? 그럼 안 되지, 양뿔 골목에 사는 여자는 먹고 살려면 다리를 벌려 장사를 할 수밖에 없는데, 네가 그 아이를 그리 아끼는데 그런 일을 시키지는 않겠지? 네 동생에게 손님이 몇 명이나 있었지, 그들이 네 동생을 좋아하던가?"
남자는 혀를 내밀고 미친 듯 웃었고 흡사 공기를 사이에 두고 그 여자아이의 떨며 우는 볼을 핥은 것 같았다. "너 그거 아냐, 내가 그 아이의 첫 번째 손님이었어."
그의 마지막 득의양양하게 올라가 있던 끝음이 아직 입 속에 머물러있는데 얼굴은 갑자기 굳어졌다.
녹슨 칼날이 지척이었다. 울퉁불퉁한 칼 끝이 열마의 기복하는 가슴에 닿아 있었다.
"네가 이겼어."
열마는 분명 승리했다. 그는 마침내 원하는 대로 해련의 얼굴에서 분노를 보았고, 바라던 대로 해련의 약속을 얻었다.
"내가, 널 죽일 거야." 청년의 매 음절은 잇새에서 튀어나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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