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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해중작海中爵

해중작 - 22. 죽은 사람

"죽은 사람?" 방정란이 눈썹을 치켜떴다.

"죽은 사람이 많았지!" 늙은 거지는 두 팔을 벌려 거리를 재었다. "여기저기서 사람이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 누군가는 아직 숨이 붙어 있고 눈도 까뒤집지 않아서 내가 가서 불을 비춰보니 아가씨더라고! 나이도 안 많아, 입가에는 계속 피가 나서 척 봐도 구할 수 없다는 걸 알았지."

"강도였습니까?"

늙은 거지가 연신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선생, 여기 온지 얼마 안 됐지. 우리 여기는, 아주 난리거든! 8년 전에는 더 심했지!" 그는 또 코를 훌쩍였고 엄지를 뒤로 뻗어 뒤쪽 산에 있는 황궁을 가리켰다. "그때 절름발이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꼬박 한 달 동안 망나니들은 일을 멈추지 않았고 단두대 위의 칼날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몰라. 이것은 아직 공개적으로 죽은 사람들이지, 남몰래 해결 당한 사람들을 포함한다면 도영하를 채울 수도 있어!"

아바르의 종적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잡담 속에서 이렇게저렇게 덧붙여졌다. 티수국에서 상류층은 아바르의 출신을 싫어하고 중층은 아바르의 수단을 싫어하며 하층의 빈민들은 중상층부에 의해 착취당하여 가죽 한 장만이 남았으니 황위에 앉은 것이 누구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지만 티수 밖에서는 이 호박왕을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방정란이 지금 몸을 의탁하고 있는 양왕은 비록 남굉 국내의 파벌 세력을 장악하는 것에 바빴으나 바다 너머로 바둑돌 한두 개를 보내 티수의 스파이로 삼는 것을 잊지 않았고, 방정란이 이따금 지금성 안의 북막 상인들과 이야기를 할 때 그들 역시 "호박왕이 미간을 찌푸리기만 하면 북막 팔부 연방의 모든 배들이 항로를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폭군이기는 했다. 그러나 수완이 있는 폭군이었다.

방정란은 원래 시간을 때울 잡담으로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정말 늙은 거지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물었다. "누군가 그 사람들을 죽인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늙은 거지는 확신했다. "그 아가씨는 가슴에 구멍이 하나 났어. 다른 죽은 사람들도 목이 부러지지 않으면 팔이 없어졌지. 내가 우두암에서 범인을 처단하는 걸 적잖이 본 게 아니었다면 진작 기절했을 거야."

"방금 당신의 개가 당신의 생명을 구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곧 이야기 하려 했어. 젊은이, 서두르지 마시게." 거지는 자세를 바꾸더니 말을 이었다. "이렇게 큰 일을 마주했으니 나는 당연히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 안 그러면 내일 치안관이 보고 내게 뒤집어씌울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말이야. 그러나 막 떠나려 할 때 언덕 반대편에서 누군가 다가왔지. 나는 무척 겁을 먹었어, 이 괴상한 곳은 숨을 곳도 없었지. 나는 정말 어쩔 도리가 없어서 내 개에게 등을 물리고 녀석에게 말했지. '루터야, 네가 만약 좋은 개라면 뛰어라!' 그 녀석은 말야, 정말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등을 문 채 다른 쪽으로 뛰어갔어. 언덕 쪽의 사람은 움직임 소리를 들었고 누군가 '가서 보자'고 외쳤지. 그들은 내 개를 쫓아갔고 나는 기회를 틈타 집으로 뛰어갔어."

"개가 안 돌아왔습니까?"

"안 왔어!" 노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음날 방목을 하러 간 녀석들이 온 바닥의 시체를 보고 치안관에게 신고를 했어. 그들이 내게 물어보았는데 나는 모른다고만 했어—— 왜냐하면 나는 진짜 몰랐거든, 죽은 그 동주인들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뭐라고요?" 방정란은 멈칫했다.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나는 성실한 농민이고 아내도 죽었고 성실하지 못한 아들도 죽었지. 세상이 어려우니 성실하든 아니든 다 죽어. 나는 거지가 되어 그날이 그날……."

"그게 아니라." 방정란은 거지의 말이 중구난방한 것을 보고 급히 그의 말을 끊었다. "방금 죽은 사람이 동주인이라고 했습니까?"

노인은 방정란을 살폈다. 남자는 일의 편리를 위해 진작 남경의 복장을 갈아입었다. 그는 코가 높고 눈매 역시 깊어서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가 아니었다면 정말 신분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거지는 방정란의 고급스러운 옷 위의 정교한 무늬를 보고 중얼거리더니 입으로는 저도 모르게 대답을 했다. "응, 동주인 십여 명이라고 했지, 다 맞아 죽었어."

"그들에게 어떤 특징이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방정란이 다시 물었다.

"그건……." 거지는 그제야 주저했고 방정란은 이미 허리를 굽혀 은화 하나를 그의 앞에 놓았다. "이렇게 말을 많이 하셨으니 물 한 잔 사서 목을 축이시죠."

거지는 돈을 보자 눈곱으로 흐려진 눈이 갑자기 밝아졌다. 그는 은화를 들어 잇새로 물어보고 나서야 중얼거렸다. "그날은 너무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편히 생각해 보시고 생각나는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노인은 돈을 보고 갑자기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런 걸 알아서 뭘 하려고 그러십니까?"

"저는 동주에서 작가였는데 서재에서 화본을 썼어요." 방정란은 호흡도 멈추지 않았다. "이향에서 죽은 십여 명의 동주인이라니, 좋은 소재죠."

"헤헤, 당신들처럼 글을 아는 사람은 돈이 있는 사람이죠." 노인은 어색하게 웃고는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열심히 기억을 되새기는 모습을 해 보였다. "특징, 동주인에게 무슨 특징이 있나…… 아, 있었지, 있었어! 죽은 사람 몇 명은 손에 칼을 들고 있었고 그 위가 전부 피였어! 그리고 그 여자, 그녀의 목에 스카프가 매여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 스카프가 아니라 얼굴을 가리는 용일 겁니다."

"……자객." 방정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무척 나지막하여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뭐라고요?"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제가 화본에서 당신에게 좋은 배역을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방정란은 웃었다. 그는 허리를 세웠고 돌길 반대편에서 진유옥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우두암에서 참살당한 십여 명의 동주 자객이 소식을 감춘 상미기와 관계가 있을까? 방정란은 거지가 당시에 큰 일에 마주쳤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했으나 더욱 자세한 상황을 알고 싶어도 이 노인에게서는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티수인 몇 명을 더 알아야 될 것 같다. 그는 머릿속으로 미래의 여러 가지 일들을 계획했으나 입가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를 만났을 때의 약간의 천진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유옥."

"미안해, 일이 좀 있어서 늦게 왔어." 진유옥은 종종걸음으로 방정란의 앞으로 달려오더니 옆의 거지를 보았다. "무슨 이야기 했어?"

"그의 개에 대해서." 방정란이 말했다.

"개?" 진유옥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행히 그는 잠시 멈칫했을 뿐, 말을 급히 돌렸다. "개 어쩌고는 이야기 하지 말자, 나는 오늘 오래 못 있어, 이전에 널 도와 소식을 알아보다 몇몇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으키게 됐어. 이번에 나는 적지 않은 방법을 생각하고 나서야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어."

"그들?"

진유옥은 차갑게 웃었다. "누구겠어, 내 둘째 형이지. 그는 내가 여기서 인질 노릇을 성실하게 하지 않을까봐 나를 감시하려 해."

진유옥의 둘째 형이 바로 양왕이었다. 방정란은 상대의 눈 아래의 무관심함을 보고 마음이  서늘해졌다—— 아마 그 불꽃놀이 밤에 그가 충분히 솔직하지 못하여 진유옥에게 약속을 하고 비밀을 나누었다면 상대는 어쩌면 자신을 양왕이 그를 살피기 위해 보낸 또 하나의 바둑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렇게 보니 그날 그의 놀라움과 흐느낌 그리고 그 무지한 눈빛은 전부 자신에 대한 경계를 낮추기 위한 연기였던 것이다. 방정란은 이 점을 깨달은 뒤에도 분노하지 않았고 심지어 까닭 모르게 안도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다들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고 있으니 누구도 가면 아래에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상대를 위로하기까지 했다. "네가 고생이 많아, 일 년만 더 참으면 돼."

"그것도 그래, 십 년을 참았는데 일 년 더 참는 건 별 거 아니야." 진유옥은 자조하며 웃었다. 그는 방정란의 손에 물건을 하나 쥐어주었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너를 도울 수 있었어."

"이게 뭐야?"

"비의에 대한 실마리."

"알아냈어?" 방정란이 놀랐다.

"그런 것도 아니야." 진유옥은 고개를 흔들었다. "쪽지의 주소에 자작이 살고 있는데, 그는 십 년 전에 호박왕의 근처에서 시중을 들었어. 만약 비의가 정말 티수에 왔었다면 호박왕과 만났을 때 분명 이 자작의 눈에 띄었을 거야. 내가 그 이상은 도와줄 수 없었어, 그러니 네가 스스로 가서 알아봐야 해."

"괜찮아, 너는 이미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어."

진유옥은 수줍게 웃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며 미안한 듯 말했다. "나는 가야해. 그렇지 않으면 시간과 스케줄이 맞지 않아서 그들이 분명 의심을 품을 거야."

"가, 다음에는 언제 만나?"

"가만 보자……." 진유옥은 손을 흔들어 자기 마차를 불러왔다. "다음달로 하자. 다음달 대극장에《호숫가의 은 열쇠》라는 연극이 올라. 내가 박스석을 예약할 테니 그때 보자."

방정란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고, 그는 진유옥이 마차에 오르는 것을 보았다. 진왕 전하는 문이 닫히기 전 갑자기 고개를 돌렸고 방정란을 바라보는 눈빛은 복잡했다. "정란, 내가…… 널 믿어도 될까?"

"그럼. 나는 영원히 네 쪽에 서 있을 거야. 어렸을 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래." 방정란은 웃으며 약속했다.

진유옥은 뻣뻣하게 입꼬리를 잡아당기더니 결국 웃음을 짓지 못했고 마차 문은 닫혔다.

 

진유옥이 간 후에야 방정란은 비로소 손에 들고 있는 쪽지를 펼쳤다. 진유옥의 필기는 마치 황급히 적어 놓은 글씨 같았다.

신명궁 바둑판 거리 9호.

팡정란은 쪽지를 넣었고 정보상인들에게 물어볼 생각이었으나 길모퉁이에 도착하자 옆에서 갑자기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방 천위."

이 목소리는 장난을 하는 듯했고, 낯설었으며 독사의 차가움을 띠고 있었다. 방정란은 한쪽을 바라보았고 그를 부른 낯선 이는 벽에 기대어 그를 향해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방정란은 눈살을 찌푸렸고 손은 이미 기색 없이 허리 뒤의 단도를 더듬었다. "누구지?"

"내가 누구냐고? 전 당신의 동료죠." 그 사람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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