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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해중작海中爵

해중작 - 25. 바둑판 거리

30.

신명궁은 구몽성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은 본래는 어느 티수 국왕 총비의 옛 침궁이었는데 미인에게 구몽성의 매일의 첫 햇살을 보여주기 위한 장소였다. 그러나 수차례 바뀐 왕위의 변천 이후 이 아름다운 궁전은 결국 티수의 최고 학부가 위치한 곳이 되었다. 커튼은 뜯겨나가고 산처럼 빽빽한 책꽂이가 들어섰다. 애교있는 여인과 시동들 역시 세월 속에서 사라지며 검푸른 장포를 걸친 스승과 학자만이 그 안을 걸었다.

신명궁 앞 왕권을 상징하는 신의 조각은 전쟁 중 진작 파괴되었고 지금 햇살을 마주하는 것은 거대한 해시계로 정말한 백옥 조각판은 매 해 변하지 않는 원을 투영하고 있었다.

해시계 아래에는 남경어로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 오직 시간만이 영원하다.

우연인지 아닌지, 진명궁과 아득히 먼 곳의 영항대에서는 왕후 아드리아가 화형 당한 뒤 국왕은 후회해 마지 않았고 그 혼을 위로하기 위해 대 위에 한 줄을 새겨 넣었다—— 죽음은 불멸이며 영원이다.

 

주불의와 이야기가 끝난 둘째 날 정오, 방정란은 신명궁으로 향했다. 바둑판 거리에 도착했을 때 궁문 앞의 해시계는 이미 반 정도 흘러가 막 학교가 파할 시간이라 거리에는 마차가 덜컹거리고 사람들이 줄을 지어 무척 북적였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펴 보았는데 아가씨들은 주불의가 말했던 것처럼 무뚝뚝한 얼굴을 하지 않았고, 얼굴의 절반을 가린 베일 아래 웃는 모습은 귓가의 봉선화꽃처럼 예뻤다.

이쪽 여자 아이들이 주불의 같은 스타일을 안 좋아한다고 밖에는 할 수 없겠군. 방정란은 입매를 치켜올렸다.

그는 얼마 시간을 들이지 않고 요노르 자작의 주소를 찾았다. 옆에 동패가 박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방정란은 정말로 이곳이 자작이 사는 곳이라고는 믿지 못했을 것이다. 벽에 진흙이나 더러운 것들이 붙어 있지 않다는 것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완안나 구의 평민들이 사는 곳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다만 문가의 생기 가득한 꽃에서만이 주인이 정성스럽게 보살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몇 번 문을 두드리자 마침내 누군가 방문을 열었는데, 요노르 부인이 직접 물을 열어 주었다. 노부인은 그녀의 남편을 따라 영광도 경험했고 배척도 겪었으며 생사 일선의 납치 사건까지 경험했다. 이러한 일들이 그녀의 눈가에 가느다란 주름을 남겼으나, 되려 사람의 기질을 우아하고 침착하게 보이게 했다. 그녀의 한 쌍의 푸른 눈이 살짝 놀란 듯 방정란을 바라보았으나 입가에는 줄곧 우호적인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당신은……?"

"제가 배첩을 먼저 올리지 못함을 용서하십시오, 부인." 동주인은 그녀를 향해 티수의 예의를 취했다. "부인의 남편 분께서 댁에 계실까요?" 비록 방정란은 오늘 자작이 신명궁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아보았지만, 해야 할 인삿말은 마땅히 해야 했다.

"있어요. 하지만……." 부인은 잠시 주저했다. "방금 약을 드시고 쉬시고 계세요."

"사실은 이렇습니다." 방정란은 등 뒤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이 책이 자작께서 편찬하신 게 맞으십니까? 제가 동주에 있을 때 여러 차례 반복하여 봤는데 손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이번에 일 관계로 티수에 오게 되어 얻기 힘든 기회를 얻었으니 작가를 찾아뵙고 싶었습니다."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살짝 멈추더니 웃었다. "하지만 자작께서 몸이 좋지 못하시니 제가 다음에…… 언젠가 다시 오겠습니다."

방정란이 막 떠나려 하자 부인은 급히 그를 불러세웠다. "잠시 기다리세요." 그녀는 방정란의 손의 책을 한 번 보더니 몸을 숙였다. "잠시 기다리세요, 제가 나리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방정란은 웃으며 대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부인이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나리께서 위층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3년 전 그 납치 사건으로 자작의 가세가 기울었는지, 이 집의 실내 장식도 단조로웠고 은 기구도 잘 보이지 않았으니 귀족들이 집 안에 박아 넣는 금과 보석 같은 것들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집에 온 손님들이 방정란과 같은 시선을 보였는지 노부인은 그를 위층으로 안내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희 집은 이전에 변고가 있어서 그 이후로 사치품은 쓰지 않습니다."

"그랬군요." 방정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부인을 향해 인사를 하고 나서야 계단을 올랐다.

 

새로 온 손님이 위층으로 올라간 뒤 요노르 부인은 거실로 돌아와 꽃병 속의 남은 가지를 손질했다. 가위가 마지막 남은 꽃가지를 잘라냈을 때 거실 옆의 작은 책방에서 가벼운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미풍이 창틀에 닿은 것 같았다. 

노부인은 서재를 보더니고 고개를 흔들었다. "몇 번이나 말했니, 문 두드리고 들어오면 돼."

"그냥 손이 닿아서요."

해련은 서재에서 웃으며 걸어나오더니 손에 든 종이봉투를 흔들었다. "부인이 좋아하는 과자를 잊지 않았어요."

"거기 둬." 노부인은 몸을 일으키더니 탁자 위의 부러진 꽃가지를 한쪽으로 치웠다. "물 한 잔 떠다줄게."

"어르신은요?"

"위층 큰 서재. 오늘 손님이 오셨거든."

자작 나리는 식견이 넓어 누가 찾아오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해련 역시 더 묻지 않고 그대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오늘 돈은 부인이 받아주세요." 그의 시선은 살짝 움직였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큰 박랑상을 따라가 꽤 벌었으니 오래 쓸 수 있을 거예요……."

"해련." 노부인은 그의 말을 끊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우리는 너의 돈이 필요 없어."

해련은 깜짝 놀랐다.

"이전에 어르신이 네가 준 돈으로 도크 쪽에 땅을 좀 사서 당시에 네가 구했던 아이들을 거기 두고 학교를 열었어. 남은 돈은 고북연합상회에 맡겨 운영했고 지금은 매달 잔고가 좀 생겨서 양쪽을 합치면 우리 집은 이제 돈이 부족하지 않아. 거기다……." 부인은 한 손으로 해련의 돈주머니를 쥔 손가락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마음 아픈 듯 해련의 입가를 건드렸다. "너도 더는 목숨으로 돈을 바꿀 필요는 없어."

해련은 손가락까지 떨렸다. "다…… 아셨어요?"

"너는 거짓말을 잘 하는 아이는 아니지." 노부인은 웃었다. "넌 돈 많은 박랑상을 쫓아다니며 경호원을 한다고 했지만 고용주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어. 어르신이 안심을 하지 못해서 네가 준 정보를 가지고 해관에 물어보니 다 알게 됐지."

 

아래층 사람도 거짓말을 하고, 위층 사람 역시 거짓말을 했다.

"이 책은 분명 여러 번 뒤적거렸고 그 위에는 읽을 때 남긴 주석도 있으며 분명 동주에서도 출판 된 적이 있었지. 하지만 손님, 한 가지 일을 잊으셨네." 자작은 반 백 살이 넘었으나 허리는 여전히 꼿꼿했고 설령 당시 도적을 소굴에서 사망까지 카운트다운을 기다릴 때조차도 이렇듯 곧았다. "스스로 넘겨보고 티수 글자를 좀 알아야겠어." 그는 한 장을 넘겨 방정란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내 서명과 주석이네. 이 책의 원 주인은 아마 내 학생이겠지. 그러나 나는 동주 학생을 가르쳤던 기억은 없어."

"아, 진작 알았으면 헌책방을 뒤지지 않았을 텐데요." 방정란은 들통이 나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성의 있게 사과했다. "저의 엉터리 같은 수단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작 각하. 하지만 제게는 정말 당신께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지?"

"8년 전에 국왕의 측근 대신이셨고 호박왕이 사람을 만날 때는 항상 함께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후에 각하께서 강직하고 굽히지 않으셔서 국왕을 불쾌하게 하여, 배척을 당하셨지요. 각하와 같은 정직하신 분은 줄곧 제 존경의 대상이셨습니다. 그러니 각하께서 무어라 물어보시든 저는 반드시 성실하게 대답할 것이며 이 성실함으로 어느 문제의 답과 바꾸고 싶습니다."

"무슨 답?"

"팔 년 전, 호박왕이 비밀리에 동주 장군 비의와 접견한 적이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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