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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해중작海中爵

해중작 - 26. 대답

요노르는 잠시 침묵을 지킨 뒤 대답했다. "미안하네, 나는 자네 질문에 대답할 수 없어."

"어째서죠?"

"젊은이, 비록 내가 진작부터 측근 대신이 아니며 종이 더미에 머리를 묻은 영감일 뿐이나, 국왕에 관련된 모든 일들을 말할 수 없음을 용서해주게." 노인의 손가락이 나무 팔걸이를 두드렸다. "내 충성심이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허락치 않는군."

"충성심? 당신을 귀양보내고 연금과 봉지를 박탈하며 신명궁의 보잘 것 없는 필묵 수입으로 작위를 유지해 나가게 하는 폭군에게 충성하십니까?" 방정란은 한숨을 쉬었다. "이 방면에서 저희의 태도가 반대인 것 같군요."

"아니." 노인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나는 내 국가에 충성하네."

방정란은 입을 다물었다.

회색 비둘기 몇 마리가 창가로 날아왔다. 그들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어둑한 방 안의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노인은 석양 아래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고 청년은 그늘 속으로 사라져 빛과 어둠이 분명하여 가장 엄격한 장인이 그린 잉크 선보다도 곧았다.

"저를 조금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동주에서 보낸 스파이가 아닙니다. 제가 비의라는 사람을 찾고자 하는 것은 사적인 일 때문입니다." 방정란은 한숨을 쉬었다. "그가 당시 나라를 배반하고 남경에서 도망칠 때 제 아버지를 찾아 밀담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밀담 한 번이 저희 집안 전체를 매장시켰지요."

요노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저는 무륭궁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가장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의외의 일이 없으면 미래에 제 아버지처럼 군왕에게 충성하는 장군이 되어 피와 살로 이 왕조를 지킬 것이었습니다." 방정란의 목소리는 작았는데, 비둘기가 속삭이는 것보다도 작았다. "……의외의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요."

 

방정란은 영원히 그날의 뙤약볕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큰 돈을 써서 망아지 한 마리를 샀고 교정의 말싸움에서 다섯 명과 싸워도 지지 않았다. 동창들은 그에게 밥을 사라고 했고 열여섯의 방정란은 손의 먼지를 털며 마편을 허리춤에 걸곤 태양 아래 고개를 들고 환히 웃었다. "그래, 너희가 마음대로 골라! 도련님이 오늘 기분이 좋으니 너희가 대접씩 먹는대도 괜찮아!"

그러나 그의 동창들은 대접씩 먹지 못했다. 그들은 심지어 자금성의 가장 비싸고 유명한 회진루의 입구조차도 이르지 못했다.

무더위 속 방정란은 현기증이 일도록 눈 앞 검은 옷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마치 상대가 검은 환영이라 어느 때고 태양빛 속에 증발해버릴 것처럼. 그러나 그 사람의 목소리는 먼 나무 위의 매미보다도 더욱 날카로워 한 글자, 한 글자가 바늘처럼 그의 귀에 꽂혔다. "방 소공자, 공자의 아버지께서 반역자 비의의 탈출에 협의한 혐의로 대사구처로 넘겨졌습니다. 지금, 공자 역시 같이 가셔야 합니다."

 

"그렇게 그대로 천옥으로 들어갔지요." 방정란의 웃음에는 씁쓸함이 없어 황당한 농담을 하는 것 같았다. "전 원래 회진루에 가서 '만당부귀满堂富贵'를 시키고 '양춘취阳春醉' 한 주전자를 시킨 뒤 여인에게 노래를 불러달라 하려 했는데, 결국에는 썩은 물고기 한 마리, 흙탕물 한 잔과 백여 명의 죄수들의 처참한 비명을 반주로 하는 콩밥이 되었지요."

요노르 자작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대소사구도 왔고 옥졸도 왔다. 모든 사람들이 반복하여 그에게 방궐이 비의의 매국 행위를 도왔느냐고 물었고 그는 반복하여 자신은 무륭궁에 머물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신을 수색당했고 그들은 모든 편지, 필기, 심지어 구석에 떨어트려 보지 못했던 잡서까지도 한 장 한 장 눈 앞에 펼쳐 놓으며 그에게 왜 편지를 썼고, 누구에게 썼으며, 무엇을 보았고, 누구와 접촉했고 무슨 의도였는지 물었다.

아니오, 아니오,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제가 아버지를 만날 수 없을까요. 제 아버지는 나라의 오른팔이며 가장 견고한 황제의 편입니다. 그가 어떻게 반역자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분명 잘못 안 겁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몰아붙여쳤을 때, 그는 심지어 울부짖었다. "내 아버지가 폐하를 직접 태연성에서 모시고 나왔고, 새 수도 자금성은 내 아버지의 봉지다, 심지어 너희 진 가의 새 황궁이 우리 방 가의 조상집 위에 지어져 있어! 너희가 어떻게 이렇게 굉조, 진 가 강산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은 사람의 충심을 의심해——"

그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금물 채찍을 맞았다. 이 채찍은 소년에게 천하에 왕토가 아닌 것이 없으며 그의 제왕은 이 충심이 필요치 않다는것을 알게 해주었다.

소사구는 떠나기 전 형틀 위의 숨이 끊어질 듯한 소년을 보고 고개를 흔들며 한 마디 덧붙였다. "네가 이 시대까지 살아남았길 망정이지. 방 소공자, 몇 백 년 더 일찍 태어났다면 방금 그 말에…… 아니, 네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네 아버지의 반역 의심 때문에 진작 구족이 몰살당했을 거다."

 

"하, 보시지요. 전 아직 살아있고 진한 차 한 잔을 마실 수도 있지요. 자작께 옛 이야기를 드리고 있으려니 저는정말 제가 좋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할 따름입니다." 방정란은 소매를 걷었고 아직도 희미하게 교차한 오랜 상처가 보였다. 저녁노을이 점차 짙어지고 방 안의 어두운 범위도 조용히 넓어져 경계를 가르던 그 선도 천천히 자작의 발치에까지 이르렀다. "그들은 제가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 알자 그 채찍질 이후에 저를 천옥의 가장 안쪽에 가두었습니다. 사형수 실이었죠. 심판도, 판결도 없었습니다."

밥을 배달하는 옥졸과 쥐 외에는더는 아무도 이 음습한 작은 감옥에 오지 않을 것이다. 구원해줄 사람도, 찾아올 사람도 없고 이전에 왕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방 가는 모든 이들이 피하는 존재가 되었다. 방정란은 빛 하나 없는어둠 속에서 곤혹해 했고, 울었으며, 소리를 질렀고, 고통스러워 했고, 저주했으며, 심지어 죽었었다. 그러나 자신이 숨이 막혀가던 질식에서 벗어난 그 순간, 그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혹은, 이 곤혹스러움과 울음, 고통과 저주와 사망이 한순간에 모두 뒤섞여 새로운 생각으로 융합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복수." 줄곧 조용히 방정란의 말을 듣던 노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방정란은 가부를 말하지 않고 미소지었다.

"자네의 나라에 복수하려는 것인가, 젊은이." 요노르의 목소리는 엄격할 정도로 낮았다.

"아닙니다." 방정란은 고개를 저었다. "절 너무 나쁜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복수가 아니라면 복수보다 더 심한 일이겠지."

이번에 방정란은 부인하지 않았다.

자작은 오랫동안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 캄캄하고 평온한 눈동자에서 동주인의 마음속 가장 탐욕스러운 욕구를 읽어내려는 것 같았다.

소리 없는 긴 대치 속, 마침내 요노르 자작이 곧은 허리를 느슨하게 풀었다. 노인은 길게 한숨을 쉰 뒤 등을 기댔고 한 손으로 콧대를 세게 문질렀다. "자네는 내 가족이 아니니 나는 자네의 행동을 평가할 입장이 안 되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자네에게 자신을 구속할 수 있는 물건, 도덕, 가족의 정, 연인간의 정 같은 것이 있길 바라네……. 설령 한 가지라도 자신을 완전히 심연에 빠트리지 않도록."

"있습니다." 방정란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럼 됐네."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비둘기들은 둥지로 돌아가 쉬었으며 아래층의 요노르 부인은 남편을 불러 식사하도록 했다. 방정란은 떠나려 했고 그는 이번에 비의에 대해서 묻지 못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자신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경험을 오늘 처음 만난 이국 자작에게 말했을 때 그의 마음 속은 조금도 저항이 느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유쾌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치 신이 대중을 이해하고 스승이 학생을 이해하며 아버지가 아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설령 상대가 그의 행동에 찬성하지는 않더라도 방정란은 노인이 그를 이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방정란이 상대방에게 작별을 고하고 서재 문을 열자 요노르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갑자기 입을 열었다. "윤해 16도에 해적이 있다고 하네."

동주인은 고개를 돌렸다.

"페크나费科纳라고 하지. 그의 수중에 배가 많고 사람이 많기 때문에 세력 범위가 가장 큰 해적이지. 안타깝게도 이 해적 각하는 늘 공해 범위 안에서만 활동하고 한 번도 티수 영역 내로 들어오지 않았어.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해군이 어떻게 그가 자유로이 활개치도록 두겠나." 요노르 자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는 약탈함을 지휘하여 판수이, 만리, 다추안을 습격했는데…… 위풍당당한 모습은 마치 장군 같다더군."

방정란은 노인이 첫 번째 말을 꺼냈을 때 호흡이 가빠졌다. "만약 그가 정말 장군이라면요?"

상대의 주름이 펴지며, 처음으로 방정란의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

"……감사합니다." 방정란은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말했다. "감사합니다."

"뭐가 고마워, 나는 단지 자네에게 소문을 말하고 있을 뿐이야." 요노르는 촛대를 들고 말했다. "가지, 젊은이. 자네도 우리 요리사의 솜씨를 맛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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