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주방장은 돌아가 항구에서 짐꾼으로 일하는 남편에게 내일 아침 밥을 준비해줘야 하기 때문에 그릇을 정리하고 나가려던 찰나 해련 일행 두 명을 마주쳤다. 여인은 그들에게 인사를 할 때 저도 모르게 놀랐다. "머리가 왜 그래요?"
"괜찮습니다, 방금 방에 불이 없어서 어둠 속을 더듬다 부딪혔어요." 방정란은 눈을 뜨고 헛소리를 하는 것이 가장 능했다. 분명 문 옆 낮은 캐비닛의 촛대가 있고 창 밖에도 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기다 해련은 그보다 머리 반 개가 작아서 까치발을 하지 않으면 두사람은 이마와 콧대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자작 댁 주방장은 거친 사람이라 그리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조심하라고 한 뒤에야 걸음을 떼었고, 갑자기 고개를 돌려 웃더니 한 마디 물었다. "맞아. 해련, 잘 지내는 아가씨가 있어?"
"뭐?" 해련은 멈칫했다.
"만약 없다면 틈 내서 우리 집 아란을 만나볼래? 그 애도 마침 나이가 찼거든. 내가 허풍 떠는 게 아니라, 내 외모를 보면 우리 딸도 분명 부족하지 않다는 걸 알 거야. 그 애는 손재주도 좋고 어망도 잘 짜고 직물도 만들 수 있어. 내 음식 솜씨도 다 물려줬지. 너도 나이도 어리고 일도 잘 하고 외모도 괜찮으니 앞으로 한 쌍이 되어 아이도 낳으면 그 날들이……."
주방장이 점점 말이 많아지며 미래의 손자 이름까지 다 지을 것 같자, 해련은 급히 그녀의 망상을 제지했다. "괜찮아, 당분간 그럴 생각이 없어요."
"꼭 결혼하라는 것도 아니고, 먼저 만나봐도……"
"정말 괜찮은데……." 해련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그는 생각하다 갑자기 옆에서 즐겁게 지켜보던 방정란을 가리켰다. "만약 사위를 찾는 거라면 이 사람을 고려해 봐요."
"이쪽?" 주방장은 동그란 작은 눈을 들어 방정란을 바라보았다. 상대 역시 기세를 따라 우아하게 여인을 향해 인사를 했고 주방장은 놀라 손을 흔들었다. "안 돼요, 안 돼. 어떻게 저한테 예를 취하세요. 외모나 옷매무새를 보면 나리의 귀한 손님이시고 앞으로는 금으로 된 집에 사실 텐데 우리 집이 어디 비하겠어요, 안 되죠."
방정란은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고 해련이 팔꿈치로 그를 찔렀다.
주방장은 해련을 설득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앞으로 어떤 아가씨에게 이런 복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감탄하곤 주방에 과일이 더 있으니 자작 부부가 식후에 드실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한 뒤 자신의 작은 천가방을 끌어안고 종종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보아하니 사람들이 널 좋아하나봐." 방정란이 말했다.
"됐어, 그녀가 만약 내가 뭐 해먹고 사는지 알면 아마 놀라서 일어나지도 못할걸." 해련은 입술을 삐죽였다. 그는 한 손으로 팔을 받치고 다른 손은 뒤쪽을 가리키며 눈썹을 치켜 떴다. "가시죠. 귀, 한, 손, 님."
식당과 거실은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있고 복도 안쪽에는 자작의 친구가 선물한 그림 몇 폭이 걸려 있어 방정란은 지나갈 때 저도 모르게 몇 번 살펴 보았다. 몇 폭은 기법이 초라하여 바깥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을 것이었고 몇 폭은 언뜻 보아도 가치가 남다를 명가의 대작이었다. 자작은 귀한 것과 값싼 것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구리 액자에 그림을 장식했고 그 아래에는 목패로 몇 년 몇 월에 누가 준 것인지 기록하여 붙여 두었다. 방정란은 손을 뻗어 액자를 만졌는데 그 위에는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음 속으로 감탄하며 요노르의 사람됨을 깨닫게 되었다.
두 사람은 복도를 가로질러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지나치게 소박할 뿐 아니라 식탁 위에 놓인 닭고기 수프 외에도 모두 평범한 음식들이었다. 평소 부부는 한 끼에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고기 절임을 먹는데, 만약 오늘 손님이 오는 것이 아니었다면 닭고기 수프를 마실 수 있는 나날 역시 세 달에 한 번 있는 신면일 때였을 것이다. 이때 집 안에 두 벌 밖에 없는 은그릇은 해련과 방정란의 앞에 놓여 있었고 노부부는 구리 그릇을 썼다. 해련은 몇 차례 양보했지만 노부인이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며 나무라고 난 뒤에야 어쩔 수 없이 투항했다.
따지고 보면 해련이 이 노부부와 알게 된 지 삼 년이었지만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두 사람을 존경하고 배려했으나 늘 고의적으로 그들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마치 백조구의 사람이 발에 진흙을 묻히지 않는 것처럼, 그는 신명궁 사람들과 같은 태양 아래에서 목욕을 하지만 해련은 그와 요노르 부부가 같은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해련은 이 한 끼가 무슨 맛인지도 알 수 없어 가시 방석에 앉은 것 같았으나 그의 맞은편에 앉은 누군가는 달랐다.
젊은 해적은 닭고기를 한 입에 삼키고 입을 다문 채 방정란과 자작의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남경의 시가에서부터 동주의 문장, 더 나아가 북막에서 서륙까지 새로운 항로가 열린 것, 이 년 전 판스이의 하비 장군이 가양 고지에서 참패한 것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다는 건, 자네는 판수이의 패인이 연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정보의 속도에서 졌습니다."
"오?"
"……정보의 전달 속도는 중요합니다, 만약 하비가 하루 전에 상대의 증원 소식이 마방산이 아닌 협곡에서 왔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전투의 승자는 누가 될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분명 자작과 방정란 모두 남경말을 하는데, 해련은 그들의 모든 어휘가 한 군데 모이니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알아듣지 못하니 아예 듣는 게 귀찮아져서 몸을 일으켜 벽 옆 단지에서 닭고기 수프를 떴다. 해련이 단지의 뚜껑을 열자 자작의 칭찬과 방정란의 겸손한 웃음소리가 김 속에서 자욱하게 피어올라 선명하게 해련의 귓속으로 전해 들어왔다. 그는 국자를 내려놓고 손등에 튄 수프 두 방울을 핥았다. 진작 붓기가 빠진 이마가 갑자기 바늘로 찌른 듯 아팠다.
그래, 방정란과 자신 역시 같은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청년이 자리에 돌아오자, 방정란은 그를 보더니 갑자기 물었다. "그러고 보니, 해련과 자작님은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련은 자작과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자작은 가볍게 기침을 했다. "그가 일찍이 나와 안사람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네."
"목숨을 구해요?"
"맞아요." 부인이 말을 받았다. "몇 년 전 우리가 교외의 강도에게 납치를 당한 일이 있었는데 손님도 우리 집의 상황을 봤겠지만 몸값을 전혀 낼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다행히 하늘이 보우하셔서 우리가 도적의 소굴에서 도망쳐 나왔고, 추격당하고 있을 때 우리와 아는 사이도 아니었던 해련이 그들에게 잘못된 길을 알려주어 살아날 수 있었지요."
이 말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었다. 이 일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온 인사라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말이었고, 설령 그 사람들이 질문을 할 때 극본 속에는 해련의 자리가 없었고 지금 살짝 더한다 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진정으로 자작 부부가 이렇게 거짓말을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입양한 아가씨를 보호하고 싶을 뿐 아니라 해련도 보호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방정란은 주불의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웃었다. "분명 큰 은혜군요."
노부인이 물었다. "손님은요? 티수에 왜 왔지요?"
"저는 잔금을 받으러 왔습니다." 방정란은 이렇게 대답했다.
해련은 눈꺼풀을 들어 그를 힐끗 쳐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방정란은 듣지 못한 체 했다. 그 이후, 그는 갑자기 심오하고 복잡한 전쟁, 학술과 정치 이야기를 그만두고 자신이 동주에 있을 때 보았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내는 본래 언변이 좋아서 만인이 참여한 시정의 집회든 예전에 어떤 친구와 함께 갔던 여행이든 어떤 작은 일도 흥미롭게 말을 할 수 있어 부부가 참지 못하고 웃게 만들었다. 본래 접객을 하던 정찬의 분위기가 먼 길에서 돌아온 아이와 부모의 저녁 식사처럼 편안해졌다.
방정란이 어느 해 자신이 가을 사냥하던 시절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시선은 변하지 않고 맞은편의 해련의 얼굴로 향해 있었다. 꼬마 해적의 입꼬리는 여전히 기분 나쁜 듯 다물려 아래를 향하고 있었는데 눈동자는 이야기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 그를 배반했다. 그는 방정란이 또 멈추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고 눈가의 그 칼자국이 따라서 움직였다. "뜸 들이지 마, 뒤에 어떻게 됐는데?"
"그 뒤에는……." 방정란은 어조를 끌었다. "그 뒤에는 우리가 그 해동청을 찾으러 갔다가 머리를 꿰뚫은 화살에 내 표식이 있는 것을 봤고 내가 일등을 했지."
"쳇, 운이 좋았을 뿐이야."
상대는 분명 결과를 듣고 눈동자가 밝아졌는데도 입으로는 틱틱댔다. 방정란은 이것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운이 좋지, 그것 역시 내 실력이야."
식사를 마치고 자작은 옆 집에 가 마차를 하나 빌렸다. 방정란은 나서서 부인의 설거지를 도왔고 해련은 남는 사람이 되어 배를 하나 갉아먹으며 문가에 기대어 방정란이 재빠르게 그릇과 접시를 찬장에 넣는 것을 보았다. "나는 방 천위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줄도 모르는 도련님인줄 알았네."
"넌 나에 대해 오해가 커." 방정란은 그를 향해 웃었다. "너야말로 왜 와서 도와주지 않는 거지?"
"해련은 오후에 도와줬어요. 오늘 닭이 바로 저 아이가 잡은 걸요." 부인은 말했다. "오늘 여러분이 나와 영감님과 같이 식사를 해 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만약 방 선생님이 구몽성에 머무른다면 자주 오도록 해요."
"물론이죠." 방정란이 승낙했다.
34.
말은 늙은 말이었고 마차는 화물차였으며 앞쪽의 나무판은 자리로 삼고 뒤쪽의 객차에는 본래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는데 지금은 비어 있어 바퀴를 단 조잡한 나무 상자 같았다. 방정란은 익숙하게 고삐를 쥐고 해련을 불러 옆에 앉혔다. 해련은 주저하며 꿈지럭꿈지럭 방정란의 곁에 앉았다. 두 사람은 자작 부부를 향해 인사를 했고 마차는 흔들흔들 삐걱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방정란은 처음엔 상대가 자신과 같이 앉기 싫어서 사지가 뻣뻣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잠시 이동하고 나서야 상대의 시선이 줄곧 그 늙은 말에 꽂혀 있고 몸이 어느 때고 떨어질 것처럼 뻣뻣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이 비루한 가축이 무슨 흉악한 괴수라도 되는 듯했다.
"말이 겁나?" 그가 물었다.
"나는……." 해련은 침을 삼키며 좌우를 돌아보았다. "너 속도를 낮추는 게 좋겠어, 구몽성에는 명문 규정이 있어서 거리에서 마차를 달리면 감옥에 가. 적어도 한 달."
방정란은 실소했다. "이런 늙은 말은 내가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가 없겠지." 지금 두 사람의 움직이는 속도는 걷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만약 해련이 이걸로도 긴장한다면 꼬마 해적이 이전에 이 위에서 무슨 손해를 보았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달리는 마차에 치인 적 있어?"
"그럴 뻔했지." 해련이 말을 고쳤다.
아이, 너무 상투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방정란은 마음 속으로 고개를 흔들고 한숨을 쉬었으나 조금의 죄책감도 없었다. 그는 부드럽게 제안했다. "아니면 뒤로 가서 앉아, 말을 보지 않으면 안 무섭겠지."
이 제안은 괜찮았다. 해련은 바로 대사면이라도 받은 것처럼 한숨을 쉬고 차판을 붙잡고 차 칸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에서 등을 맞대는 것으로 바뀌었다.
해련은 제대로 앉은 뒤 팔꿈치로 방정란의 등을 건드렸다. "너 아까 영감님한테 무슨 일 이야기를 했어? 지금 말해."
"그래." 방정란은 살짝 뒤로 고개를 돌렸고 상대도 마침 그를 보고 있어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을 때 그가 말을 이었다. "네가 죽여야 할 사람은 페크나라고 해."
끝 음이 입술에서 나오기도 전 그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두 눈동자가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누구라고?!"
"페크나." 방정란은 반복했다. "못 한다고 하지는 않겠지?"
"나더러 페크나를 죽이라고?" 해련 역시 말을 반복했다.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농담이야, 그가 누구인지 알아?"
"알아. 자작이 그가 윤해에서 가장 강한 해적이라고 했어." 방정란이 말했다. "그가 겁나?"
해련은 냉소했다. "나는 바다에서 한 번도 누굴 무서워 한 적 없어."
방정란은 눈썹을 치켜떴다. "그러면 왜 손을 쓰기 싫어하지?"
"어려우니까, 거기다 수지가 맞지 않아. 페크나는 행적이 묘연할 뿐 아니라 곁에 있는 선대와 동료 역시 보통은 아니야. 네가 나더러 그런 사람을 죽이라고 한다면 지금 혼자 말을 빼앗아 황궁으로 가 호박왕을 죽이라는 것만 못해." 해련의 눈빛이 서늘했다. "거기다 페크나를 적으로 돌리는 건 사귀만의 대부분 해적을 적으로 돌리는 거야."
"그렇군." 방정란은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물었다. "모든 해적이 그의 말을 들어?"
해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독벌호만 해도 오랜 기간 페크나의 선대를 약탈하겠다는 꿈을 꿨었고 두 번은 정말로 호랑이 아가리에서 이빨을 뽑았으니 다른 해적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바다에는 법률이 없고 도덕은 더욱 따지지 않는다. 결국 화약과 곡도 뿐이었다.
"그러면 됐어." 방정란은 웃기 시작했다. 그는 늙은 말을 몰아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지났다. 바퀴가 흔들리며 좌석 아래의 목판은 언제라도 박살이 날 것 같았다. 침을 삼키면 혀가 끊어질 것 같은 구간이 지난 뒤 남자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때가 되면 너와 같이 사귀만에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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