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란에게는 지금 그럴 듯한 추측이 생겼다.
시모나라는 백작 자신이 야심이 있든지 아니면 뒤 어두운 곳에 숨어 호시탐탐 호박왕의 세력을 노리든지 간에 그는 반드시 한 번 만나봐야 했다. 주불의가 말했듯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서 그는 두 개의 옵션을 준비해야 했다. 그는 대극장 앞에 서서 이것저것 생각하다 해련이 그에게 준 표를 품에 넣고 다른 표를 한 장 꺼냈다.
티수의 연극은 예로부터 유명했다. 한때는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고 영웅을 노래하던 가무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귀족들의 한가할 때의 오락 활동이 되었으며 엄숙한 축사와 기도 역시 변화무쌍한 이야기와 포복절도할 연기가 되었다. 그리고 대극장은 구몽성에서 가장 호화로운 공연 장소로, 자연히 관중의 사랑을 받았다.
방정란이 입장권을 내자 문 앞을 지키던 직원의 본래 자세히 살펴보던 눈빛이 바로 공손해졌다. 그는 꼬마 아이를 불러 방정란을 복도 반대편 무대 쪽의 객석으로 안내했고, 도착한 곳이 무대 위쪽의 박스석이었다. 박스석에 앉을 수 있는 이들은 자연히 아래쪽의 일반 관중하고는 차이가 있었는데, 차와 간식거리가 준비된 것은 물론 박스석 입구마다 언제든 불러 심부름을 시킬 수 있는 하인이 있었다. 방정란이 오늘 만날 상대는 진작부터 박스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등 뒤의 움직임을 듣고 급히 일어났다. "정란."
"내가 늦지 않았지?"
"아니야." 진유옥은 웃으며 품에서 동전 한두 개를 안내를 한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상대의 얼굴에는 곧 웃음꽃이 피더니 급히 절을 하고 문을 닫았다. "그날 내가 준 주소에 가봤어?"
"물론 가봤지." 방정란은 난간 쪽으로 다가갔고 연극은 아직 시작되지 않아 박스 아래의 관중들은 아직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있었다. "공이 좀 들었지만, 다행히 얻은 게 좀 있었어."
"그가 정말 비의의 행방을 알고 있어?"
"그런 셈이지. 그가 내게 준 단서는 이미 팔 년 전 옛 일이라 더욱 정확한 정보는 스스로 조사해야 해. 얼마 후에 윤해에 한 번 다녀와야 할지 몰라. 내가 돌아오는 때가 바로 우리가 동주로 돌아갈 때야."
"정말?" 진유옥은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
방정란은 진유옥의 말에 대강 대답하며 시선은 줄곧 아래쪽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좌석을 세었고 마침내 어느 자리를 찾아낸 뒤 눈빛이 굳어졌다.
해련이었다.
청년의 평소 관리하기 귀찮아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카락은 지금 머리 뒤로 얌전히 빗질을 했고, 몸에 걸친 셔츠는 요노르 부인에게서 받은 새 옷이었다. 그의 옷장 속에는 정장이 없어서 외투는 아마 오브라이언에게서 빌린 것 같아 보였는데, 팔이 몸에 맞지 않게 넓었고 소매의 지워지지 않은 잉크 자국은 손목에서 뻗어나온 작은 꼬리 같았다. 꼬마 해적은 한 번도 이렇게 정식적이며 고급스러운 곳에 와본 적이 없는 듯 온 몸이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는 어렵사리 표를 든 채 자기 자리를 찾고서도 주저하며 앉지 않았고, 좌우를 살펴보는 것이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방정란은 몰래 한숨을 쉬었고 몸을 돌리고 나서야 진유옥이 의심스럽게 그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정란? 몇 번이나 불렀는데 못 들었어?"
"미안해, 아래가 좀 시끄러워서 정신이 팔렸네." 방정란이 말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진유옥 역시 그를 따라 아래를 살폈으나 안타깝게도 무엇이 방정란을 정신이 팔리게 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맞은 편 박스에 주의하라고."
"맞은편?" 방정란은 시선을 위로 옮겼고 자신의 정면의 박스석 안쪽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젊은 여자 아이들 몇 명이 가운데 앉은 화려한 복장의 여성을 둘러싸고 재잘재잘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데 거리가 너무 멀고 얇은 커튼이 칸막이가 되어 그들의 외모를 알아볼 수 없었다. "저 아가씨들은 누구야?"
"저 아가씨들이 누구인지는 알 필요 없어, 가운데 앉은 사람이 누군지 알면 돼." 진유옥이 설명했다. "남경의 풍속은 동주와 달라서 왕후가 낳은 아기 아니면 성인이 되기 전에는 황궁에서 살 수 없어. 지금 옥좌에 앉아 있는 호박왕도 성인이 되기 전에는 구몽성 백 리 밖의 만림성에서 살았지. 티수 전 국왕 수헐은 슬하에 자식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벨른쉬고 국왕과 어느 정부의 사생아인데 공개석상에 내놓지 못해서 태어난 뒤 구몽성 밖으로 보내 농부가 기르게 했어. 벌써 시골에서 머문지 17년이지. 다른 하나는 국왕과 황후의 딸이고,롱롱龙容이라고 해. 바로 가운데 앉은 아가씨야."
방정란의 낯빛이 변했다. "이전에 듣기로는 저 롱롱 왕녀가 어렸을 적 납치 당한 적이 있다던데?"
"너도 들어봤어?" 진유옥은 놀라지 않았다. "롱롱 왕녀 전하는 열두 살 때 비적에게 납치를 당했는데, 호박왕이 사람을 데려와 비적을 일망타진하여 구해냈지. 하지만 꼬마 소녀는 그때 상처를 입고 크게 놀라서 풀이 살랑 흔들리는 바람에도 병이 들게 됐어. 이런 체질인 사람이니 자연스레 황태자가 될 수는 없었어. 벨룬쉬는 그때 겨우 아홉 살이었고 시골에서 글도 제대로 모르니 후계자의 왕관은 이리저리 돌다 아바르의 발치에 떨어졌어."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멈추더니 방정란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정란, 이 이야기 어떻게 생각해?"
방정란은 진유옥이 예상했던 것처럼 그에게 감탄하며 맞장구치지 않고 곧장 추궁했다. "롱롱 왕녀가 납치된 건 몇 월 일이야?"
진유옥은 혀를 차더니 생각했다. "초겨울일걸."
초겨울…….
——"그 겨울날 밤에 내 개가 갑자기 문 밖을 향해서 계속 짖는 거야. 난 그 녀석의 이름을 불렀지. '루터, 루터, 왜 짖어?' "
퍼즐 조각이 맞아 들어갔다.
방정란은 다시 물었다. "그 납치범들은 누구야?"
"그건……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어. 아마 왕실에 함구령이 내렸을 거야." 진유옥은 살짝 곤혹스러워했다. "그런 걸 왜 물어봐?"
"내 성격 알잖아, 어떤 이야기든 파고드는 걸 좋아하지. 예전에 마마도 내 질문에 말이 막혔지." 방정란은 자연스레 웃었다. "그럼 아바르가 어디서 꼬마 아가씨를 찾았는지도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건 호박왕이 말했어, 티수 근교의 우두암이래. 그쪽은 황량하고 인가가 드물어 감옥이 하나 지어져 있는데, 다들 재수가 없다고 생각해. 납치범들이 그쪽으로 도망친 것도 그럴만 하지."
우두암의 감옥…….
—— "그 아가씨는 가슴에 구멍이 하나 났어. 다른 죽은 사람들도 목이 부러지지 않으면 팔이 없어졌지. 내가 우두암에서 범인을 처단하는 걸 적잖이 본 게 아니었다면 진작 기절했을 거야……."
두 번째 조각 역시 맞아 들어갔다.
월 초 거지와의 대화가 다시금 방정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남몰래 분석했고 팔 년 전 왕녀 납치 사건이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졌다.
——동주 자객 한 떼가 티수의 왕세자를 납치했고, 도망치다 우두암에 이르렀을 때 호박왕과 부하인 독전갈호박에게 붙잡혔다. 쌍방의 혈전 뒤 동주인은 전멸했고 아바르는 자신의 조카를 왕궁으로 데려오는 것에 성공했다. 고작 열두 살이던 왕녀는 크게 놀라 몸이 허약해졌고 수헐은 갑작스레 중병에 걸렸으며 이때는 왕위 후계자로 아바르를 지정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아니, 아니다.
남자는 입술을 오므렸다.
만약 다시 생각해 본다면? 호박왕 같은 고집이 세고 난폭한 폭군이 정말로 자신의 계승 순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계집애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겠는가?
가령…… 아바르야말로 납치범이고, 그 동주 자객들은 사실 그녀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만약 이것이 본래는 거친 쿠데타였고 도중에 끝이 나고 나서야 억지로 "깊은 형제의 정"으로 결론이 난 것이었다면? 국왕 수헐의 갑작스러운 중병은 정말로 "중병"이었을까?
어찌 되었든 당시 아바르는 바라는 것을 이루지 않았던가?
방정란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등 뒤에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전멸한 동주 자객이 분명 상미기의 제자들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스승을 따라 동주에서 남경까지, 줄곧 어둠 속에서 활동했으나 팔 년 전 가장 정상에 자지하고 있던 남국의 자객들과의 교전 중 이렇게 처참한 결과를 얻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방정란은 다시 정면의 박스석을 바라보았다. 공연이 곧 시작할 무렵이라, 자리 위에 걸렸던 커튼 역시 올라갔고 왕녀의 곁을 둘러싸고 있던 여자 아이들도 웃음을 거두고 얌전하게 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스무 살이 된 롱롱이 가운데 단정하게 앉아 있었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이목구비는 또렷이 보이지 않았으나 유독 창백한 작은 얼굴만이 어두운 홀에서 작고 둥근 달처럼 보였다. 드레스 위를 장식한 다이아는 초승달처럼 반짝 빛났고 그녀는 조용히 그곳에 앉아 있었을 뿐이나 누구도 극장에 이렇듯 고귀한 존재를 무시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지금은 퍼즐의 한 조각만이 모자랐다.
아바르가 어린 왕녀를 놓아줄 수 있게 하려거든 상미기는 분명 무언가를 가지고 상대와 거래했을 것이다. 이런 물건은 반드시 충분히 귀하며, 충분히 중요해야 사람들이 말하는 "미친 절름발이"가 여자 아이 하나의목숨을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물건.
무대에서 은은하게 악기 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방정란은 그에 따라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천기고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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