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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해중작海中爵

해중작 - 31. 소어

37.

 

해련은 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후회했다.

 

그가 백조구에 드나드는 횟수는 적지 않았으나, 모두 자유로운 고니처럼 나다녔고 두려운 것도 신경 쓰는 것도 없었다. 지금은 봉황 무리에 참새가 스며든 것이라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해련은 억지로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눈을 너무 빠르게 깜빡거리지 않으려 했고 자신이 너무 진흙구에서 온 진흙처럼 행동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줄곧 칼을 잡아 굳은살이 배긴 손가락이 광택이 매끄러운 비단 방석에 닿았을 때 청년의 얇은 눈꺼풀은 저도 모르게 떨렸다.

그는 자신이 용모를 단정히 하고 몸의 핏자국을 닦고 좋은 옷을 입어도 여전히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방금 그의 곁을 지나치던 모든 나리부인들의 시선은 있는 듯 없는 듯 그에게 꽂혔고 조심스레 그와 반 척의 거리를 벌렸다. 흡사 그가 전염병을 앓고 있는 환자이며 화려한 옷을 입은 도둑인 것 같았다.

만약 방정란이 온다면, 적어도 나는…….

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고 처음으로 그 교활한 미소를 품은 얼굴이 보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아무 것도 찾지 못했고 시선 닿는 곳은 전부 여전히 갈색 머리와 푸른 눈동자, 복잡한 무늬의 셔츠와 화려한 보석이 오색찬란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럴 만 했다, 당시 그 녀석은 시간이 있으면 올 거라고 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지금 그는 자신은 알아듣지 못하는 일들로 바빠 이 초대는 진작 잊어버렸을 수도 있었다. 해련은 자조하며 생각했고, 입매는 자신도 깨닫지 못한 사이 실망의 곡선을 그렸다.

그는 오늘 오후에야 백 리 밖의 성웅성에서 돌아왔고, 오는 내내 어지러울 정도로 뒤흔들려 마차라는 물건에 대한 그의 혐오감은 한층 더 깊어졌다. 집에 도착한 뒤 침만 삼키고 옷을 갈아입은 채 대극장으로 달려왔는데, 지금 어렵사리 자리에 앉아 한숨을 쉬니 저도 모르게 졸음이 몰려왔다.

그는 이마를 받치고 무대를 바라보았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흰 옷을 입은 사람 두 명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것만이 보였고 드문드문한 가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금 소리는 선명했으나 너무 느려서 해련은 연이어 하품을 했다.

적어도 오브라이언이 쓴 그 막까지는 버티고, 다 보면 가자. 해련은 한숨을 쉬고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으며 정신을 집중하여 계속 공연을 지켜보았다.

지금까지도, 해련의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

 

"호박왕이 즉위한 뒤 아바르는 그의 조카딸이 몸이 좋지 않아 요양해야 한다고 하며 그녀를 동쪽의 수지정으로 보냈어. 말이 요양이지 사실은 연금과 다르지 않아. 최근 2년이나 되어서야 롱롱이 나이가 차고 계속 얌전해서 겨우 가끔씩 나가 연극을 보거나 신명궁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된 거지.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경우는 드물어. 나도 이번에 꽤 공을 들여서야 그녀가 오늘 여기 연극을 보러 온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진유옥은 잠시 멈추다 말했다. "정란, 난 잠시 후 막간에 왕녀 전하를 뵐 생각이야."

방정란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진유옥이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속으로는 사실 그다지 찬성하지 않았는데, 이런 외족 혼인 방식이 너무 세속적이며 전형적이며 몇백 년 전의 옛 사람들이나 이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유옥이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자 차마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거기다 그저 인사를 하는 것뿐이니 허실을 떠보는 것으로 여길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방정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같이 갈까?"

"넌 당연히 나하고 같이 가야지." 진유옥의 입매는 부드럽고 무해했다. "내가 이렇게 담이 작은데, 혼자 갔다가 맞은편 박스석에 가기도 전에 다리가 풀릴까 염려스러워."

진작 주불의에게서 진유옥의 영광스러운 흔적을 들었던 방정란은 이 말을 그저 웃고 넘겼다.

 

※※※

 

"아어? 왜 또 멍하니 있어?"

이름을 불린 소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본래도 나이가 별로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 몸집도 작았던 탓에 더욱 말라 보였고 거의 몸에 걸친 노란빛의 예쁜 긴 치마를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여자 아이는 먹빛 눈을 깜빡이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낮에 본 책을 회상하고 있었어……."

그녀의 동료들은 키득키득 웃었다. "넌 정말 꼬마 책벌레구나." 조금 더 큰 금발 소녀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책이 어디 사람만큼 보기 좋니, 차라리 이번 주연을 봐봐. 내가 바깥 사람들에게 듣기로 온 도시를 뒤흔드는 미남이래!"

아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앞만 보며 눈을 깜빡이더니 실망스레 입술을 삐죽였다. "됐어. 난 그래도 우리 오빠가 제일 잘생긴 것 같아."

"넌 늘 네 오빠 이야기를 하는데 왜 우리가 본 적이 없을까?"

"오빠라는 건 요노르 자작의 아들을 말하는 거야? 똑똑하게는 생겼던 걸로 기억하는데 잘생긴…… 건 아니던데."

"아니면 다음에 데려와서 만나게 해줄래?"

"저번에 네가 글루 언니에게 깃을 달아달라고 한 셔츠가 설마 네 오빠에게 준 거야?"

소녀들은 호기심에 재잘거리며 물었지만, 여자 아이는 되려 치맛자락을 꼭 쥐었다. "오빠는 아마…… 날 원하지 않는 것 같아."

"어떻게 그래?" 아가씨들은 놀랐다. 그녀들은 마지막으로 수지정에 온 동주 여자 아이가 요노르 부부가 길가에서 주워온 양녀라는 것을 알았고 처음에는 그녀를 경계하며 경시했으나 삼 년 간 아침저녁으로 지내오니 여자아이의 얌전하고 철 든 태도는 그 경계와 경시를 가볍게 흘려보내게 했다. 꼬마 아가씨의 눈가가 붉어진 것을 보자 다들 다급히 위로했다. "아어가 이렇게 착한데, 어떻게 널 원하지 않겠어."

"네가 가서 네 오빠를 데려와, 우리가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같이 너 대신 혼내줄게!"

"그만, 그만." 어느 목소리가 사람들 뒤에서 들려왔다. 줄곧 말을 하지 않았던 왕녀 롱롱이 따스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렵게 나와 노는데, 너희 아어를 울게 하면 안 돼. 미남을 보고 싶다면 잠시 뒤에 두 명을 볼 수 있을 거야?"

"예?"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롱롱은 방금 박스석의 하인에게서 받은 쪽지를 들고 있었다. "남굉의 진왕 진유옥과 그의 친구가 이따가 인사하러 온다는구나."

"진유옥?"

"그 말이죠." 누군가는 크게 실망했다. "전 별로예요. 이전에 집안 연회에서 그 이족 황자를 보았는데 생긴 건 예쁘장하지만 비실비실해서 얼굴이 아무리 잘생겨도 표정에서 낭비가 되더라고요. 전 그래도 폴로 같은 소년 군관이 좋아요. 잘생기고 남자답잖아요. 안타깝게도 이 몇 년 국경으로 파견을 나가서 그렇지, 그게 아니면 그의 연인이 되고 싶은 아가씨가 온 거리를 채울 거예요."

"아어와 같은 동주 사람이네." 아까 그 금발 소녀가 아어의 귓가에서 작게 말했다.

"응…… 구몽성에는 동주인이 많아." 아어는 곧 올 두 사람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고, 무대의 잘생긴 미남 배우에도 관심이 없어 대충 대답했다.

금발 소녀는 그녀가 이렇듯 가라앉아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재미있는 것을 찾아주려 했다. 소녀의 시선은 관중석을 한 바퀴 돌았고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 어떻게 대극장에서 자는 사람이 있지. 거기다 저렇게 깊이 잠들다니, 방금 그 열렬한 박수도 그를 깨우지 못했나?"

"……사실 나도 대극장에서 자고 싶어." 아어가 중얼거렸다.

"어…… 잠깐, 저 사람이 입은 셔츠가 왜 이렇게 눈에 익지?" 소녀는 아어의 팔을 밀었다. "봐봐, 눈에 익지 않니?"

"무슨 셔츠가 눈에 익어……." 아어는 어쩔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언뜻 보자 여자 아이는 거의 의자에서 뛰쳐올랐다. "저건——"

사람들은 깜짝 놀랏다. "너 왜 그래?"

소녀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그녀는 급히 한 걸음 내딛어 난간을 붙잡고 몇 차례나 확인한 뒤 얼른 몸을 돌여 롱롱에게 예를 표했다. "전하, 제가 오늘 다른 사람들과 따로 수지정으로 돌아가도 될까요?"

롱롱은 먼저 놀라더니, 그 후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지정은 감옥이 아니고 나도 네 간수가 아니야. 가야 되면 가, 평안하게 돌아오기만 하면 돼."

"감사합니다!" 아어는 왕녀 전하를 향해 환히 웃곤 치맛자락을 들고 잰걸음으로 박스석을 나섰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급히 떠났고 하마터면 인사를 하러 온 귀한 손님 두 명과 부딪힐 뻔했다. 여자 아이는 고개도 들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을 웅얼거리며 두 명을 돌아 아래로 내려갔고, 두 사람은 그녀를 오래 응시했다.

"이 아가씨의 눈매가……." 방정란은 연상되는 것이 있었고 그가 고개를 돌려 다시 보려 했을 때 진유옥이 그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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