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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도액渡厄

도액 제1장 - 서장

하늘이 피를 끼얹은 것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검푸른 숲이 타오르고 있으며 도처에 분수와 같은 금홍빛 용암이 백 척 가까이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용암은 강물처럼 흐르며 산에 깊은 흉터를 남겼다. 절벽 아래에는 수많은 굴뚝이 튀어나온 것 같았고 뜨거운 회흑색 연무가 하늘로 향하며 핏빛 하늘을 핥았다. 공기 중에는 타는 냄새가 가득하여 코를 자극했다. 본래 선기가 자욱하던 포진산抱尘山은 지금 순간 마치 수라연옥과 같았다.
사심미는 방 안에 서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이는 그의 사존의 귀역鬼域이 포진산 전체를 뒤덮은 것이다. 귀역 안에서 악귀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그의 사존은 포진산의 구조를 바꾸었는데 대지는 갈라지고 뜨거운 용암이 지면을 뚫고 나왔다. 선문 제자 역시 돌진하고 있었다. 수많은 수사들이 산 아래에서 정상으로 향했고 검광은 뱀과 같았으며 화염과 용암 속에서 빠른 속도로 돌격해왔다. 각 집안의 가주들은 산 아래 사방에서 법진을 펼쳐 폭우를 불러와 결계를 침식시켜 사존의 귀역을 깨트리려 했다.
“사존……." 사심미는 자신의 갈라진 목소리를 들었다.
"작별 인사를 할 때다, 심미."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 속에서 키가 큰 남자가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눌렀다. 손바닥은 예전과 같이 따스하여 사심미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거짓말이겠지, 이렇게 따스한 사존이 어떻게 귀괴일까? 그에게는 분명 이름과 신분이 있다. 그의 이름은 백리결명百里决明으로 포진산의 단약장로이며 대종사 무도无渡의 사제다. 그는 농담을 할 줄 알고, 밥을 할 줄 알며 산 아래의 거리에서 불을 뿜는 공연을 했고 마늘을 넣은 대력환을 만들어 주점에서 팔다가 쫓겨 제자를 붙들고 도망쳤다.
이런 사내가 어떻게 추악한 귀괴일 수 있을까?
그러나 사실이 그러했다. 사존은 마시지 않고 먹지 않았으며 더욱이 늙지 않았다. 그는 사존의 도법이 깊어 이미 화경을 넘었기 때문이라 여겼으나 사실은 사존이 귀괴이기 때문이었다. 사존은 진작 죽었고, 죽은 이는 먹고 마실 필요가 없으며, 죽은 이는 늙지 않는 것이다.
"많은 일들은 네게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들이 하는 말이 맞아, 나는 분명 귀괴이고 시체에 붙어 사는 악귀다." 백리결명은 고개를 숙여 칼을 뽑았고 흐르는 도광이 어둑한 작은 방 안에 번쩍였다. "내 육신이 오랜 세월 썩지 않으며 정상인과 다르지 않은 것은 내 가슴의 육판연심六瓣莲心 때문이야. 산 아래의 저 개도둑들의 절반은 아마 그것 때문에 온 걸 거다."
"육판연심?" 사심미가 물었다.
"그래, 연화심. 나 같은 죽은 사람을 썩지 않게 해 주지. 저 개도둑들은 그걸 먹으면 반로환동 한다고 여기고 있어." 백리결명은 입매를 비틀며 웃다가 홀연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절반은, 아마 널 찾아 왔을 테지."
사심미는 눈을 떨어트렸고 눈물이 속눈썹에서 떨어졌다.
"너는 도중 사 씨의 독녀이고 팔자가 순음하여 선천적인 노정炉鼎이다. 요 몇 년 간 그 많은 개도둑들이 가증스럽게 너와 혼인을 하겠다 했지만 다 노자가 쫓아냈지. 네가 그 개돼지들의 손에 떨어지면 좋은 꼴을 볼 수가 없어." 백리결명은 칼집을 버리고 검지를 깨물더니 사심미의 이마를 찍자 손가락 끝의 핏빛이 빛났다. "그러니, 스승이 네 몸 속에 악귀의 저주를 남기마. 앞으로 네 사부인 나를 제외하고 널 건드리는 놈은 죽고 널 모욕하는 놈 역시 죽을 거다. 다만, 네 인연도 아마 여기까지겠지."
"인연은 필요 없어요." 사심미는 울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존이 사셨으면 좋겠어요."
"바보 같은 아이야." 백리결명은 그의 머리를 두드렸다. "나는 진작부터 죽었다. 죽은 지 너무 오래되어 나 자신조차도 나이를 알지 못해. 산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거북이도 나만큼 나이가 많지 않을 거다. 종주며 장로며 하는 것들도 나와 비하자면 손주 뻘이지. 넌 올해 겨우 열넷이고 아직 어리니 앞으로 할 일이 많아. 다만 기억해야 한다, 천하의 사내는 모두 개돼지야. 만약 누군가 네게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겠다며 평생을 약속하며 의심치 말라 한다면, 귀신의 말이 그것보다는 진실할 거라는 걸 알아야 한다."
사심미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사존은 아마 그 자신도 사내라는 것을 잊은 듯했다.
백리결명은 진지하게 말했다. "금릉 연화교 북쪽의 첫 번째  저택이다, 기억했느냐? 입구가 세 개인 큰 집이지, 장소도 좋고 밖으로 나가면 바로 시장이야. 그곳은 본래 스승이 널 위해 모은 혼수야. 토지문서는 저택 밖의 버드나무 뿌리 아래에 묻어두었다. 여자 아이는 손에 돈을 쥐고 있어야 든든한 법이야."
지금이 어떤 때인데 아직도 이런 헛소리를 하는가. 사심미는 목이 메었다. 하지만 이게 그의 사존이었다. 교만하고 자만스러우며 입만 열면 헛소리에 영원히 믿을 수가 없는 이. 이 사내는 아직 그의 제자가 여자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첫 번째 무리의 선문 제자들이 화염의 장벽을 뚫고 산을 올랐다. 사심미는 그들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백리결명은 찾고 있었고 검은 밤을 가르는 검광은 은빛 제비처럼 희었다. 백리결명은 그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칼을 들고 오래된 사립문을 밀어젖혔다. 번쩍이는 불빛이 금빛 모래처럼 좁은 방 안으로 쏟아졌고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은 타오르는 것 같았다.
"가야한다, 제자야."
그는 걸음을 내딛으며 칼을 휘둘렀고 홀로 산 정상에 오른 산문 제자들과 맞섰다. 무형의 기운이 그의 몸에서 펼쳐졌고 반딧불처럼 그를 향해 날아오던 부적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빛을 잃더니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는 몸을 돌렸고 걸음을 내딛으며 칼을 내질렀다. 칼날은 그의 손바닥의 열에 달아올라 무지개처럼 붉게 빛났다. 수사들은 끊임없이 덮쳐왔고 그가 토끼를 쥐듯 수사의 머리카락을 잡아 뜨거운 칼날로 목을 베자 선홍빛 핏방울이 굽은 달처럼 튀었다. 이 순간이 되어서야 사심미는 진정으로 깨달았다. 거리에서 입으로 화룡을 뿜던 사내는, 가짜 약을 팔다 쫓기던 사내는 진정한 악살이었다. 그에게 있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동물을 잡는 것과 같았다.
"뒷산으로 가라. 겁내지 마, 내 귀역은 널 다치게 하지 않아. 고개 돌리지 마라. 나는 더욱 보지 말고." 백리결명은 눈동자는 점차 핏빛으로 변했다. 악귀의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칼을 휘두르며 말했다. "기억해라, 내가 널 위협하고, 널 속이고, 널 억지로 내 제자로 만든 거야. 앞으로는 너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미워하고 혐오하며 타기해야 한다. 너는 사람이고 나는 귀이니 너와 나는 생과 사로 갈 길이 달라!"
사심미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고 몸을 떨며 고두했다.
"가라!" 백리결명은 으르렁거리며 검은 밤을 단칼에 베어냈다.
사심미는 고개를 돌리고 뒷산을 향해 뛰었다. 치맛자락이 나무덤불에 찢겨 너덜거렸다. 그의 등 뒤에서는 금홍색 불빛이 뿜어져 나왔고 화염이 모든 검광을 집어삼켰다. 그는 그의 사존이 어떤 술법을 썼는지 알 수 없었으나 다만 등 뒤의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태울 듯 거세다는 것만 느껴졌다.
그는 울며 산 아래를 향해 내달렸다. 칠흑 같은 밤은 도처에 차리한 용암으로 밝게 빛나 마치 온 사방이 붉게 빛나는 선혈 같았다. 그러나 모든 용암은 그의 발치를 피하고, 모든 찌는 듯한 열기는 그의 몸을 피하여 그는 사존이 그의 걸음걸음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등 뒤에서는 줄곧 한쌍의 눈이 그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는 경서에서 귀역이 충분히 강하다면 악귀는 없는 곳이 없다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사존이 그의 뒷모습을 주시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사존, 사존. 그는 눈물이 샘솟듯 쏟아졌다.
머리 위에서 우레와 같은 큰 소리가 울렸다. 흡사 천둥이 산 정상에 떨어진 것 같았다. 사심미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산 정상의 구름층이 검푸르게 변하며 핏빛과 같은 붉은 색이 섞여 있었다. 그곳에서 방금 폭발이 일어났고 도처의 초목은 불길에 휩싸여 검게 타들어갔다. 귀역의 결계가 갑작스레 깨지며 화살과 같은 폭우가 그 틈으로 내리쳤다. 바람에 날리던 연이 끊어진 것처럼 줄곧 어둠 속에서 그를 주시하던 시선이 사라진 듯했다. 사심미는 이것이 무것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악귀가 토벌되어야지만, 귀역은 깨진다.
"사존!" 사심미는 크게 소리쳤다.
그 순간 머릿속은 텅 비고 가슴에 격통이 일어 흡사 피가 뚝뚝 흐르는 심장을 꺼낸 듯했다. 그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울며 소리치고 산 위로 기어 올라갔다. 용암은 그쳤고 뜨겁게 흐르던 진흙은 비에 씻겨 끈적하고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 도처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이는 빗물이 초토에 닿아 증발한 짙은 물안개였다.
그는 마침내 산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수사들의 타버린 잘린 사지가 도처에 널려 있고 부러진 검은 토막난 뼈처럼 비스듬하게 지면에 꽂혀 있었다. 그와 사존이 살던 작은 나무집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그들이 함께 심었던 약초뜰은 초토가 되어 있었다. 가운데는 검게 탄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는데 두 무릎을 지면에 꿇고 오른손의 칼에 기대어 있었다. 사심미는 비틀거리며 걸어가 무릎을 꿇고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조각난 얼굴을 어루만졌다.
백리결명은 술법을 수사를 태워죽이고 동시에 그 자신을 멸했다. 그의 두 눈동자는 고온으로 녹아 두 개의 새카만 구멍이 되어 있었다. 몸의 절반은 이미 검은 숯이 되었고 빗물이 그의 뜨거운 몸 위에 내려앉을 때마다 흰 연기가 피어 올랐다.
백리결명은 입술을 움직여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 녀석…… 왜 말을 안 들어?"
"안 갈래요." 사심미는 이 완전히 모습이 망가진 괴물을 끌어안으며 울먹였다. "사존하고 같이 죽을래요."
"바보 같은 아이야, 털도 다 나지 않은 녀석이 사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무슨 죽음을 입에 올려?" 백리결명은 미소지었고 타버린 얼굴은 비틀려 보기 힘들었다. "울지 마라, 열네 살이나 되었으면서 어떻게 아직도 이렇게 울보야? 됐다, 너는 여자아이니 몇 년을 더 봐주마. 네가 열여덟이 되면 더는 훌쩍거리면 안 돼."
"울 거예요!" 사심미는 크게 소리쳤다.
"토지 문서 파 내는 거 잊지 마라. 수련하는 것도 잊으면 안 돼. 열심히 수련하지 않으면 스승이 꿈에 나와 네 볼기짝을 때려줄 테다." 백리결명은 가쁘게 웃으며 손을 뻗어 그를 밀쳤다. "그놈들이 올라올 거야, 어서 가라."
사심미는 고개를 저으며 곧 죽어도 손을 놓지 않았다.
"아이…… 이 녀석…… 어쩌면 이렇게 철이 없어?"
사심미는 그의 귓가의 긴 한숨소리를 들었다. 그를 꼭 쥐고 있던 손이 움직이더니, 사심미는 문득 다리 위가 축축한 것을 느꼈다. 사심미가 어리둥절 고개를 숙여 보니 백리결명의 가슴에 비수가 꽂혀 있으며 끈적한 혈액이 칼자루를 타고 뚝뚝 그의 다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왜……."
그가 다 묻기도 전에, 백리결명은 목구멍에서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나왔다. "망할 짐승아, 네가 네 손으로 스승을 시해하다니!"
사내는 한 손으로 그를 밀쳤고 그는 쓰러져 누군가의 품에 안겼다. 분분한 사람 그림자가 흰 비둘기떼처럼 곁에서 쏟아져 나왔다. 두 번째 선문 수사들 무리가 마침내 정상에 오른 것이다. 철과 같은 무거운 비의 장막이 그와 백리결명의 사이를 가로지르고 그는 누군가 백리결명을 걷어차는 것을 보았다. 검게 탄 마른 몸은 그대로 쓰러지고 온 바닥에 칠흑같은 물보라가 튀었다. 사심미는 눈물을 흘리며 무력하게 손을 뻗어 그 망가진 그림자를 흐릿하게 쥐었다.
"사심미가 대의멸친했다! 악귀를 토벌했다!"
"어서, 그의 혼백을 봉인하고 연화심을 꺼내라!"
"심미 낭자, 심미 낭자, 괜찮소!"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귓가에서 소리를 쳤고 일사분란한 목소리가 귀를 가득 메웠으나 사심미는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 그는 그저 차가운 빗속에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내와 수사들이 검을 쥐고 피가 뚝뚝 흐르는 그의 가슴을 찢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철로 주조한 조각상처럼 고집스레 그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백리결명의 찢어진 입술이 움직이며 무슨 말인가 한 것 같았다.
이 평생 가장 긴 고요 속, 그는 문득 깨달았다. 사존은 이렇게 말했다.
제자야, 작별이구나.

고소姑苏의 3월은 평소보다 비가 잦았다.
사심미는 악몽에서 깨어나 침상의 발을 걷고 옷을 걸친 뒤 화장함 앞에 앉았다.  시선은 월동창을 넘어 맞은편 기와 위로 부슬부슬 떨어지는 빗방울에 닿았다. 그는 또다시 팔 년 전의 그 큰 비를 떠올렸다. 그 사내는 진흙 속에 쓰러졌고 귀역은 조금씩 사라지며 검게 탄 그림자는 그에게서 멀리멀리 멀어졌다.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사존은 늘 그를 데리고 산 아래 시장에서 돈을 벌었는데 그에게 혼수를 준비해줘야 한다며 그를 태양빛이 들지 않는 다른 집 기와 아래에 세워 놓고 그의 발치에 돌로 원을 그린 뒤 한 걸음도 벗어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 후 사거리에서 자리를 폈는데 고개를 들면 입으로 붉은 빛 찬란한 큰 화룡을 뿜어내었다.
그 시절 그는 얌전히 쪼그리고 앉아 그의 사부가 어쩌면 이렇게 가난하며 믿음직스럽지 못한가 생각했다. 도사는 귀신을 잡아 돈을 버는 것이 정도인데 그의 사부는 술법으로 불을 뿜는 공연을 한다. 하늘 천지 그 하나만이 재수가 없어 가난하고 멍청하며 성질머리도 나쁜 사부를 모신 것인가.
후에야 그는 그의 사부가 악귀이나 하늘 천지 가장 좋은 사부임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 더는 아무도 그의 혼수를 준비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불을 뿜을 사람이 없다.
그는 비를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있었다.
"아가씨." 등 뒤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외숙모를 따르는 시녀가 주렴 밖에 서서 작은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부인께서 곤산의 귀신들을 대부분 다 소탕하여 도행이 높지 못한 소귀들만 몇 남아 있으니 아가씨와 도련님들더러 가서 수련의 기회로 삼으라 하십니다. 아가씨께서도 평소 조용히 부에만 계시니 함께 가셔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시겠어요?"
안이 조용하여 시녀가 막 고개를 내밀려 할 때, 문득 주렴히 자르르 흔들리며 키가 큰 아가씨가 안에서 나왔다. 시녀는 그녀를 바라보며 넋을 놓고 말았다. 몇 번을 보더라도 사심미의 자태와 모습에는 감탄을 금하기가 어렵다.

시녀는 이 아가씨를 잘 알고 있었다. 부 안의 많은 아가씨들 중 그녀가 제일 아름다웠는데 피부는 하얗고 깨끗하여 섬세하게 다듬은 옥과 같았고 말없이 웃을 때 드러난 가지런한 흰 이는 조용한 미인초 같았다. 그녀는 집안의 큰 아가씨처럼 교만하고 성미가 급하지 않았고 다른 집 귀한 규수처럼 거만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줄곧 따스한 목소리로 속삭여 마치 고소의 3월의 부드러운 빗줄기 같았다. 만약 굳이 단점을 찾아내고자 한다면, 아마도 키가 너무 커서 대공자마저도 그녀와 키가 엇비슷했다는 점일 것이다.

안타까운 아가씨다. 시녀는 마음 속으로 참지 못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도 하필이면 사 씨 집안은 온 집안이 횡사하였고 자신은 악귀에게 붙잡혀 제자가 되었다. 그녀는 팔 년 전의 그 소탕을 기억하고 있었다. 각 선문 집안에서 움직여 포진산을 삼일 밤낮을 둘러쌌고 사심미가 대의멸친하여 악귀가 방비하지 못한 틈을 타 비수를 그의 가슴에 찔러 넣은 것이다.

좋은 사람은 좋은 보답을 얻지 못하고, 아가씨의 몸에는 저주가 남아 그 이후로는 혼인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쩌면 저주의 탓인지 아가씨는 몸이 좋지 못하여 툭하면 피를 토했다. 검의 길에도 재능이 없어 팔 년을 헛되이 보내었으니 검을 잡을 줄이나 아는 정도다. 기댈 가문도 없고 수행이 뒷받침되지도 않는데 예쁜 얼굴만 한 장 있을 뿐이라 귀한 집 규수들의 공동의 적이 되었다. 요 몇 년 간 그녀는 생활이 고생스러웠는데 마치 길가의 잡초처럼 여기저기서 괴롭힘을 당했다. 다행히도 아가씨의 외숙모—— 유 가의 큰 부인이 자비를 베풀어 이 가련한 아이를 거두어 들이며 그녀 몸의 저주가 풀리면 그녀와 대공자를 혼인시키겠다고 했다.

시녀는 그녀를 안타까워하여 눈빛은 얼마간 부드러워졌다. "아가씨께서 그저 노는 것으로 여기시면 됩니다. 대공자도 가는 걸요."

"그래." 사심미는 미소지었다. 여전히 그 흠 잡을 곳 하나 없는 자상한 미소였다. "그러면 오라버니와 언니들에게 폐를 끼치도록 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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