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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도액渡厄

제3장 - 초혼招魂 2

 

이 마을은 매우 가난해 보였는데 진흙길 위에 잡초가 길게 자랐고 울타리 벽은 대부분이 무너져 뒤쪽의 음산한 초가집과 기와집이 보였다. 그들은 몇 군데 집의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집집마다 사립문을 꼭 닫아걸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유부춘이 말했다. "진 소협, 저희도 진작 해봤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유난히 낯을 가리는 것 같았어요."

"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어?" 백리결명이 물었다.

"다 안에서 문을 걸었어요. 자연히 나갈 때 건 문이 아니었죠."

"내 말은," 백리결명은 웃었다. "안에 사는 게 사람인 줄 어떻게 알았어? 한낮에 외출하지 않는 건 당연히 햇빛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그랬다. 어떻게 산 사람이 악귀의 귀역 안에서 살 수 있을까? 누군가는 다리가 풀려 메추리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백리결명은 또 한동안 말을 잃었는데 이 애송이들과 한참을 종알대고 나서야 어렵사리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뚱뚱이 오누이는 고소 유 씨 집안에서 온 이들이고, 발을 절뚝거리는 토끼는 그들의 사촌 여동생이다. 키가 크고 마른 남자 둘은 유군 원씨의 자제로 백리결명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일단 원대袁大, 원이袁二로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눈썹이 길고 눈이 가느다란 난쟁이가 있었는데 월군 강 씨 집안 출신으로 이름은 강선이었다. 그러나 백리결명은 그를 강 난쟁이라고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이 높은 집안의 자제들은 평소 어머니의 품에 기대어 옷을 향기롭 게 하고 얼굴에 분이나 바를 줄 알지 검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귀를 보기도 전인데 벌써 놀라서 간이 떨어져 나갔다. 그에 비하자면 아가씨들 두 명이 오히려 간담이 있는 편이었다. 비록 얼굴은 하얗게 질렸으나.

됐다, 어쨌든 살아있는 생명이나 데려갈 수 있으면 데려가야 한다. 백리결명은 어쩔 수가 없었다.

원대가 물었다. "이제 어떡하죠? 우리 어디 가서 쉴까요?"

"앞에 객잔이 있어요." 발을 삐끗한 꼬마토끼가 입을 열었다. "빈 방이 있을지도 몰라요."

이 구석진 산촌에 재수 없는 사람이 그들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방은 대부분 비어있을 것이다. 백리결명은 고개를 끄덕이고 객잔을 향해 설렁설렁 걸어갔다. 사람들은 바짝 그의 뒤를 쫓았는데 그의 몸에 붙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하는 모양새였다.

객잔 역시 빗장이 걸려 있었고 백리결명은 발로 걷어차 열었다. 다들 그의 뒤에 붙어 안으로 들어갔는데 안은 먼지가 가득하여 기침이 나왔다. 어두컴컴한 객당 안, 어두컴컴한 빛에도 흐릿하게 탁자와 의자의 윤곽이 보여 무척 음산했다. 정면에는 칠이 벗겨진 신상이 놓여 있어 웃는 듯 아닌 듯하여 괴이했다. 남은 촛불에서 촛농이 흘러 탁자 가득하여, 얼핏 보았을 때는 피 같았다. 징이 신대 위에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녹이 슬어 있었다.

유청추는 화당에 불을 붙였고 토끼 아가씨는 탁자 옆에 앉아 몸을 숙이고 발목을 비볐으며 마지막으로 들어온 두 사람이 문을 닫았다. 막 문짝을 밀자 곧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기듯이 백리결명의 곁으로 다가왔다.

"귀가 있어요!" 강선이 소리쳤다.

사람들은 겁에 질렸고 장검이 잇달아 검집에서 나왔다. 백리결명이 고개를 돌려 보니 시체 한 줄이 문짝 뒤에 꼿꼿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모든 강시들은 얼굴이 창백하고 머리 위에는 짚으로 엮은 삿갓을 쓰고 있었는데 챙에 노란 부적이 늘어뜨려져 있었다. 백리결명은 웃고 말았다. "오기도 잘 왔네, 여기는 송장 객잔이야."

"송장 객잔요?" 강선은 눈을 크게 떴다. "여기 사는 게 전부 시체라는 말입니까?"

"아니요." 토끼 아가씨는 그를 위로했다. "여긴 간시장赶尸匠이 쉬었다 가는 곳이에요. 산 사람들은 가난하니 외지에서 일을 하다 이향에서 죽으면 친척들이 간시장에게 부탁하여 그들을 고향으로 데려오는 거죠. 산길은 험하고 비를 만나면 움직이기 어려우니 그들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곳을 준비하는데 이걸 송장 객잔이라고 해요."

이 아가씨의 목소리는 봄날 가느다란 빗줄기처럼 부드러워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여 사람들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유청추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오늘 밤 정말 이 강시들과 한곳에 묵어야 하는 거야?"

"헛소리." 백리결명은 언짢은 듯 말했다. "아니면 너희더러 문이라도 지키라고 할까?"

그가 탁자 위의 징을 들고 채로 치자 모든 강시들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탁한 눈을 뜨고 삼처럼 마른 팔을 번쩍 들었다. 원이는 대담하게 검을 들고 강시의 눈앞에서 흔들었으나 강시는 나무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유부춘은 기이해하며 말했다. "진 소협은 역시 고인이십니다, 시체도 부리다니요."

토끼 아가씨는 옅게 웃으며 설명했다. "저건 간시장이 쓰는 음라阴锣예요, 집으로 돌아가는 행시行尸들은 그 명령을 듣죠. 그들은 원한으로 행시가 된 게 아니라 성정이 온순하여 만약 사촌 오라버니가 징을 친다면 그들이 말을 들을 거예요."

사람들은 그녀가 식견이 높다고 칭찬하며 기쁘게 그녀의 곁을 둘러쌋다. 유청추는 이 아가씨가 유난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혀를 찼다. "잘난 척 하기는."

토끼 아가씨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백리결명은 문을 열라고 시키곤 다시 한 번 징을 쳤고, 모든 행시들은 질서정연하게 몸을 돌리더니 하나하나 메뚜기처럼 문턱을 뛰어 넘었다. 원 씨 형제는 황급히 문을 닫고 잠금을 걸었다. 백리결명은 기지개를 펴고 기역자 모양의 계산대 위에 누워 졸았다. 젊은이들은 잠들지 못하고 화당을 둘러 싸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악귀의 도행은 생전의 수행과 상관이 높아요. 이치대로라면 이 산골짜기에 도행이 높은 악귀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 선배들이 깨끗하게 정리했어야 맞고요. 어떻게 그물을 벗어난 물고기가 있을까요? 괜히 저희만 고생하게." 원대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새로 맞이한 첩이 아직도 날 기다리고 있는데."

"난 여태껏 살면서 귀역을 만들 수 있는 악귀를 본 적이 없어요." 강선이 말했다. "듣기로는 지금까지 가장 큰 귀역은 포진산 백리결명의 귀역이래요. 그는 산 전체를 용암 지옥으로 만들었고 사방 이십 묘의 땅과 산 아래 백성들의 밭이 모두 불바다가 되었죠. 저희 둘째 숙부가 토벌에 참여했었는데 땅 밑에서 뿜어져 나온 용암에 한쪽 다리가 탔어요. 지금 포진산은 아직도 초토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죠."

시끄러워 죽겠네. 백리결명은 짜증스레 몸을 돌린 뒤 얼굴을 가리고 잠을 취했다.

"그 말은 틀렸어요. 가장 큰 귀역은 포진산이 아닙니다." 원이는 화당 속에 숯을 넣었다. "귀모鬼母의 황천귀국黄泉鬼国이죠. 듣자 하니 그 귀역은 인간 세상에 있지 않아 종적을 찾기 어렵다고 해요. 하지만 가는 사람은 있어도 돌아오는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녀 아래의 태자 악동恶童은 당시에 대종사 무독과 일전했고 대종사에게 봉인됐죠. 지금까지도 대종사가 그를 어디에 봉인했는지 아는 사람은 없어요. 이 귀동자는 보기에 어린 아이에 불과하지만 무시무시한 대 악귀예요. 악동의 귀역은 또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군요."

무독의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한순간 침묵했다. 그는 인간 세상의 유일한 대종사였고 포진산의 장교였으며 수많은 악귀를 봉인하고 천만의 망령을 제도했다. 가장 알려져 있는 것은 삼백 년 전의 일전이었는데, 그가 귀국 태자 악동과 악동의 귀도인 구사액九死厄을 봉인한 일이었다. 듣기로는 사람 하나와 귀신 하나가 사방이 어두워지고 해와 달이 빛을 잃을 때까지 싸웠다고 한다. 재미있는 점은 악동이 봉인 된 이후 민간 백성에게 문신门神이 되었다는 점이다. 길가를 걷다 보면 어디서든 문짝에 붙은 삼두육비에 귀도를 휘두르며 눈살을 찌푸린 붉은 머리카락의 동자를 볼 수 있다. 백성들은 사악함을 멸하고 귀를 피하는 것에는 자연히 가장 악한 귀와 가장 흉악한 살을 써야 갈 곳 없는 그 소귀들을 놀라 도망가게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누가 무독이 자신의 사제를 숨기고 이 귀괴로 하여금 장장 오십 년 간 단약장로로 선문의 존경을 받고 백가의 공양을 받게 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다만 무독은 십사 년 전 이미 수명이 다하여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의 잘못을 추궁하려 해도 할 곳이 없다.

"흥, 이런 잡귀는 언제고 다들 등을 돌리게 되어 있어." 유청추는 곁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더니 차갑게 웃었다. "사심미, 당시에 네 귀사부를 네가 직접 죽인 거 아니야?"

백리결명은 번쩍 눈을 떴다.

"둘째야, 사촌 여동생의 가슴 아픈 일은 더 이상 언급하지 마." 유부춘은 원망스레 말했다. "사촌 여동생이 그때 백리결명의 아래에 그리 오랜 시간을 머물렀으니, 분명히 매일 괴롭힘 당했을 거야."

"그래요, 어디서든 괴롭힘을 당했겠지. 멍청이들 같으니, 얘는 전부 꾸며낸 건데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네." 유청추는 경멸스레 말했다.

사심미는 조용히 무릎을 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틈엔가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 사심미가 고개를 드니, 백리결명이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사내는 키가 크고 허리가 좁으며 다리는 길고 곧아 봄날 대나무처럼 늘씬했다. 지금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허리를 구부려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고, 사심미는 조금 멈칫했다.

"네가 사심미야?" 백리결명은 눈썹을 높게 치켜 떴다. "오중 사 씨의 외동딸, 백리결명의 제자, 사심미?"

"……저예요." 사심미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백리결명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제자가 어떻게 이 꼴이 되었을까? 이것은 그가 상상했던 비바람을 부리고 하늘을 꿰뚫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이 계집아이를 자세히 살피지 않았는데 지금 상세히 살펴보니 먼 산과 같은 긴 눈썹이며 흑백이 분명한 눈동자에 불빛이 약동하는 것이 그녀 자신의 분명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만약 심미가 자랐다면 분명 이런 모습일 것이다.

"왜 이래?" 유청추가 물었다.

"아니……." 백리결명은 복잡한 표정이었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다들 그를 바라보고 있으며 눈빛 하나하나가 의심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안 된다, 이 멍청이들에게 그와 심미의 관계를 들켜서는 안 된다. 그는 어색하게 헛기침하며 말했다. "오랫동안 사 씨 집안의 심미가 선녀처럼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진추명은 줄곧 눈이 높기로 유명하여, 이런 말이 나오니 다들 그가 조롱의 말을 입에 담을 것이라 여겼다. 여자아이들 사이에도 강호는 있어, 사심미가 유 씨 집안에 온 이후로 유청추는 도처에서 그녀의 외모에 눌려왔기 때문에 지금 마침내 사심미를 눈에 차지 않아 하는 사람이 나타나자 그녀의 마음은 얼마간 편안해졌다. "지금 보니 그 정도는 아니다, 그거지?"

백리결명은 그녀를 보더니 말했다. "지금 보니 정말 오지게 예쁘구나."

유청추는 가슴에 악이 차올라 하마터면 목이 메어 죽을 뻔했다.

말을 마치고 백리결명은 무심코 고개를 숙였고, 사심미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며 눈썹 끝에 웃음기가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이렇게 웃으니 세상 천지가 다 밝아진 것 같았다. 이 아이는 분명 너무 예쁘게 생겼다. 백리결명조차도 멈칫하며 고개를 돌리니, 주변의 사내들이 다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는 것이 하나하나 다 백치 같았다. 이 개돼지들 같으니, 그의 제자의 미색에 침을 흘리고 있다. 백리결명은 그들에게 싸대기를 갈겨주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었다.

막 사심미가 무슨 말인가 하려 할 때, 바깥 거리에서 갑자기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울음 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음습하여 듣고 있으면 뒷목이 서늘해졌다.

"누가 울고 있는데, 귀라도 본 거 아닌가!" 원이가 멍하니 일어났다. "우리 가서 구해줍시다!"

"구하긴 뭘 구해, 한밤중에 엉엉 울고 있으니 그녀 자신이 바로 귀다!" 백리결명이 손을 흔들자 불빛이 꺼지며 객당 안에 암흑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 입 다물어!"

아무도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귀를 쫑긋 세운 채 그 울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울음소리는 갈수록 가까워졌고, 그들의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울음 소리 외에도 무거운 것이 끌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드륵드륵하여 마치 그 여귀가 어떤 것을 끌고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한 소리는 어떤 좋지 않은 것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가령—— 시체 같은 것을.

울음소리는 문가에 이르더니 뚝 그쳤다. 그들은 계단 위로 끄는 소리가 이어지는 것을 들었고, 뒤이어 문을 지키던 강시들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모든 이들은 몸을 굳히고 조용히 검을 눌렀다.

강시의 울부짖는 소리는 갈수록 약해지고, 백리결명은 작게 좋지 않다고 중얼거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여귀는 도행이 좀 있네. 서둘러라, 장소를 찾아서 숨어서 몸을 가리도록 해."

모든 이들은 조용히 움직이더니 허리를 굽혀 숨을 곳을 찾았다. 원 씨 집안 형제는 대나무 광주리로 자신을 덮었고 유부춘은 몰래 대들보에 올랐는데, 막 기둥에 오르자 어둠 속에서 문득 허공에 떠 있는 발을 보았다. 가슴이 덜컹하여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한 그가 덜덜 떨며 고개를 들자, 바싹 마른 시체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를 직시하고 있었다. 유부춘은 조심스레 시체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는데, 그것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심미도 숨으려 하였는데, 손목이 갑자기 누군가에게 잡혔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을 따라 계산대 뒤로 숨었다.

막 몸을 숙이고 앉자마자 문짝이 센 힘으로 부딪혀 열렸다. 사심미는 계산대 나무판의 틈으로 밖을 바라보았고 강시 앞의 문짝에 큰 구멍이 생겼고 흰 팔뚝이 그곳에서 거두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느 검은 그림자가 바깥에서 움직이고 있었는데 분명 그 여괴였다. 주변은 조용하고 여귀는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간 걸까? 누군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내미려 했다. 그러다 진추명도 움직임이 없는 것을 떠올리고 꾹 참았다.

오직 사심미만이 귀괴가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눈이 점차 어둠에 적응하자 그는 구멍 바깥에 흰 눈이 음습하게 객당 쪽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곁에 있는 사람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고 그는 고개를 돌려 백리결명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호흡이 들릴 정도로 가까웠다.

"무서우냐?" 백리결명은 그들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눈을 내리 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문이 정말이지 이 아이를 망쳐버렸다. 백리결명은 한스러워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녀의 사부가 바로 귀이고, 그것도 악귀 중의 악귀인데 뭘 겁내는가! 됐다, 그녀가 그의 제자인 것을 어찌 하겠는가? 백리결명은 초조하게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사심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혹 어린 표정을 지었다.

"소매를 잡게 해주마." 백리결명은 눈길도 주지 않고 퉁명스레 말했다. "소매를 잡고 있으면 안 무서워."

사심미는 멍하니 백리결명의 뻗은 손을 바라보다, 잠시 후 조심스레 그의 소매를 쥐었다.

"응, 안 무서워요." 그녀가 웃자 보조개에 빛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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