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해련이 새 무기를 시험해 본 날 저녁, 페크나는 사람들에게 내일 사귀만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소식을 선포했다. 사람들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손에는 술병을 들고 얼굴의 기름때도 깨끗이 닦지 않은 채로 황혼 속 허리가 꼿꼿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제군들, 우리는 이 섬에서 이미 충분히 오래 머물렀다, 모이인들이 사귀만에 터를 잡고 마을을 지을 정도로 말이야."
"모이인들이 사귀만을 꿀꺽하려는 걸 알고 있었군, 난 당신이 사귀만을 그놈들에게 바치고 꼬리를 말고 이 망할 곳을 새 집으로 삼으려는 줄 알았죠!" 누군가 소리쳤다. 여요호의 선원이었는데 그들은 상위와 위아래 없이 지내는 것에 익숙하여 상위만을 선장으로 인정했고, 페크나라는 바다의 패자에 대해서는 경외라기보다는 기탄하여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는 복종의 자세를 보였다.
페크나는 그 사람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 역시 사귀만의 다른 형제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그들은 이 삼 개월 동안 이곳을 떠나 카키리만을 가거나, 창랑만에 가거나, 팔르파도에 가든…… 어디든 갈 수 있었지. 그들은 여전히 자유로웠다, 갈매기보다도 더 말이야. 물론 어떤 이들은 남아서 모이인들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목에 밧줄을 거는 것을 선택하여 기꺼이 앞잡이가 되기를 원하기도 했지—— 그들은 모이인들이 그들을 해안으로 데려가 전신의 비린내를 씻겨내고 다시 농부와 장인이 되게 할 거라 여겼다. 때문에 기꺼이 귀족의 채찍질과 윗사람의 욕을 견디고, 엉덩이를 흔들며 멍멍 짖고 식탁에서 던지는 뼛조각 한두 개를 기다리는 거야. 그들은 틀렸다! 해적의 목에 걸리는 밧줄은 한 가지 뿐이다, 바로 올가미 말이야!"
사람들 사이에서 놀란 비명이 들렸다. 그들은 당황하여 서로를 마주보았고 여요호의 사람들마저 저도 모르게 목을 만졌다.
페크나는 술병을 한 병 빼앗아 다 마시곤, 빈 병을 바닥으로 힘껏 던졌다. 깨진 조각들이 불더미 속으로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일었다. "아직도 대륙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바다를 가로지를 자격도, 해신의 축복을 받을 자격도 없다! 말해봐라, 너희 역시 목에 밧줄을 걸고 싶으냐!"
"싫어!"
"싫습니다!"
"그 모이인들과 모이인들에게 투항하는 겁쟁이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지?"
"물고기 밥으로 던져 줍시다!"
"모든, 모이들에게 짓밟혔던 모든 곳을," 페크나는 소리쳤다. "나는 화포로 한 번 씻어낼 것이다, 지면 위에 새로이 풀이 자라나 깨끗한 사귀만으로 변할 때까지 말이다! 오늘 밤, 이 단두주를 마시고 내일, 사귀만은 완전히 해신호의 것이 될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환호가 터졌고 그 온도는 화염보다도 뜨거웠다. 여요호의 본래 의문을 품고 있던 해적들도 알코올과 분위기에 감염되어 함께 주먹을 들었고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망명자……." 그것도 선동을 당한 망명자다. 방정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대강대강 다른 사람들처럼 팔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렀으나 시선은 되려 모닥불 앞을 맴돌았고 곧 멀지 않은 곳의 해련의 시선과 마주쳤다—— 상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손을 들고 있었으나 눈동자에는 열광의 기색이 전혀 없었다. 방정란은 한숨을 돌렸다.
이 광희는 자정까지 계속되었다. 단두주는 뒷심이 세서 대부분의 해적들은 이미 여기저기 바닥으로 쓰러져 있었고 일부분은 둘러앉아 선원이 고향의 가요를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해련은 멀리서 노랫소리를 듣고 있다가 옆에서 술에 취한 상위에게 말했다. "당신 정말 페크나를 도와줄 거야?"
"나는 그의 부하야."
"그의 의도가 사귀만을 몰살하는 거라는 걸 알잖아."
"그래." 상위는 술을 한 입 마시고 중얼거렸다. "터트리든, 도살하든."
"나한테 멍청한 척 하지 마." 해련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힘을 주어 상위의 어깨를 젖혀 상대가 자신을 마주보게 했고, 남자의 둥근 얼굴을 두드려 선장이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했다. "당신이 요 며칠 우울한 건 아크 남매가 아직 섬에 있어서 그런 거야? 곤희 쪽에서 걔네를 데리고 있을 거야."
"아니야."
해련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야?"
"내 말 뜻은……." 남자의 얼굴에는 짙은 붉은 색의 불빛에 비추어져 조금 우스웠다. 그 역시 웃기 시작했다. "곤희 자신도 보장하기 어렵다는 거지!"
"쉿, 조용히." 해련은 선장의 입을 가렸다. "왜 자기도 보장하기 힘들어?"
"몰라, 모르겠다……." 상위는 언제고 취해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내가 그날 페크나를 찾으러 갔다가, 어쩌다 들었, 들었단 말이야…… 그와 그림자가 말하길 곤희가 사실은 무슨 독전갈 쪽 사람이라 그가 이 사람들과 협력하면서도 상대를 없애버리려 했다고, 그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독전갈 호박?" 해련이 물었다.
"맞아, 맞아!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다!" 상위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해련은 되려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하다, 구몽성 전체가 독전갈 호박은 아바르의 측근이며 국왕의 검이라는 것을 안다. 페크나로 말하자면, 해련은 저번에 산 동굴에서 그 역시 마찬가지로 아바르가 윤해에 깔아 둔 암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국왕의 두 세력이 하나는 바다에 있고 하나는 뭍에 있으며 서로 갈등하고 있다고?
해련은 틈을 봐서 이 일을 방정란에게 알리고 이 동주 여우가 그를 도와 분석하게 해야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맞은편의 상위는 주절주절 말을 이어갔다. "내가 페크나의 뜻을 미루어보아선, 곤희 사람들까지 아예 윤해에 묻어버릴 생각인 거야. 그 여자는 침몰선의 고아들을 적잖이 받아들였는데, 그 아이들은 다 죄 없는 이들이잖냐! 싸움질은, 무섭지 않아. 여요호도 무섭지 않지, 다만 나더러 아이들을 향해 대포를 쏘라고 한다면, 이 몸은 못 한다 이 말이야!"
"목소리 좀 줄여, 좀 줄여." 해련은 남자의 어깨를 누르며 애써 위로했다. "어쨌든 방법이 있을 거야. 여기서 사귀만까지는 십여 일이 걸리니 우리가 어서 방법을 생각해야 해. 예를 들어 곤희에게 편지를 보내던가, 아니면 페크나의 계획을 저지하던가. 우리의 목표는 모이인들을 쫓아내는 거지, 아니야? 그렇게 하루 종일 풀이 죽어 있으면 내 선장 같지가 않아."
남자의 혼탁한 눈동자에 마침내 한 가닥 빛이 드러났다. "맞아." 그는 힘껏 침을 삼켰다. "기껏해야…… 기껏해야 그와 척을 지면 될 일이야! 이 몸은 안 할 거다! 이 몸의 여요호 역시 우습게 보지 못해!"
"목소리 좀 낮춰." 해련은 술주정뱅이를 마주하여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상위를 부축하여 여요호의 선장실로 데려갔고, 막 돌아와 쉬려 하는데 문득 상대의 선장 외투가 해변에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해련은 한숨을 쉬고 어쩔 수 없이 다시 되돌아갔다.
사람들은 거의 흩어졌고 선원들만 몇 남아 모닥불을 끄고 있었다. 해련은 상위의 옷을 찾아냈고, 그가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채 두 발자국도 걷기 전에 문득 누군가 그를 불러 세웠다.
"어이."
"날 부르는 거야?" 해련은 고개를 돌렸다. 페크나와 그의 일등항해사 그림자였다.
"그래, 너 말이다." 해적 장군은 해련을 직시했다. "방금 일이 있어 늦어지는 바람에 너와 한 잔 하는 걸 잊었군."
"선장님의 술을 못 마셨다니, 너무 손해가 크군요." 해련은 하하 웃었다. "사귀만을 얻으면 선장님이 제게 술을 한 상자 보내주셔야 합니다."
"사귀만을 얻으면 술 한 상자 뿐 아니라 보물 한 상자 역시 여요호의 에이스인 네가 가져야지." 페크나가 말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 역시 동주인인가?"
상위는 이전에 해련에게 페크나를 조심하라고 일깨워 준 적이 있었고 방금 페크나의 선동 역시 해련의 마음에 파란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청년은 줄곧 이 사람에게 얼마간 경계심을 품고 있었으나 자신의 모습은 가장할 필요가 없어 대답했다. "맞습니다, 왜요?"
상대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을 줄곧 해련의 얼굴에 멈추어 있어 마치 청년의 이목구비에서 어떠한 흔적이라도 찾아내려는 것 같았다. 그 시선은 해련을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다. "페크나 선장님, 만약 별 다른 일이 없으시다면 저는……."
"너는 네 아버지와 많이 닮았구나."
순간 청년의 안색이 급변했다. 이러자 무슨 경고, 조심 같은 것들이 이 말 한 마디에 종잇조각이 되어 날아갔다. 그는 쏜살같이 달려가 상대의 옷깃을 움켜쥐려 했다. "——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
그림자는 재빨리 총을 들어 해련의 걸음을 막으려 했고 페크나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총을 거두어 들이라는 표시를 했다. "네가 섬에 있는 동안 나는 줄곧 몰래 너를 지켜봐 왔다. 지금 보니 넌 역시 내 지인의 아이야."
해련은 다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자신이 방금 추태를 부렸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상대는 그저 한 마디 떠보았을 뿐인데 자신이 이렇듯 가볍게 걸려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마음 속으로 자신의 행위를 후회했지만 목구멍과 입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뇌의 지휘를 거부하며 계속 떨리는 음절을 이어나갔다. "그럴 리 없어. 당신이…… 당신이 내가 아는 사람의 아이라고 한다면,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알고 있어야 해."
"내가 어째서 모르겠나?" 페크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항렬을 따지자면 나를 비 삼촌이라고 불러야 할 거다. 예전에 태연이 있을 때 포대기에 감싸인 널 본 적도 있지."
해변 반대편에 있던 방정란이 꼬마 해적의 내심의 격렬한 동요를 감지한 듯 급히 몸을 일으켰다. "해련?"
"너는 미기未机와 아멱阿觅의 아이, 상해련商海连이지."
페크나, 아니, 비의费祎는 만족스럽게 청년의 움츠러든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미소를 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얇은 입술이 굳은 호선을 그렸고, 그는 해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면 내 배에 올라서 자세히 이야기 하자, 해련. 네 부친께서 남겨 준 물건이 있다. 나는 그걸 직접 네게 돌려주는 편이 적합하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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